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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이러려고 대통령 됐나” … 구속 연장되자 재판 거부

국정농단 사건 주요인물 지금은
2016년 10월 24일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JTBC가 최순실씨 소유의 태블릿PC를 보도하면서였다. 태블릿PC 안에는 대통령의 연설문 44개가 들어 있었다. 박근혜 정부의 통일정책과 철학이 담긴 2014년 독일 드레스덴 연설문도 그중 하나였다. 드레스덴 연설문은 외부에 공개되기 하루 전 최씨에게 전달됐다. 최씨가 받아 본 이후 연설문이 수정된 흔적도 나왔다.
 
태블릿PC에는 2013년 8월 6일 대통령 국무회의 발언 자료도 이틀 전 날짜로 저장돼 있었다. 태블릿PC에 저장된 문건의 작성자 아이디는 ‘narelo’. 아이디 주인은 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정호성 대통령 부속비서관이었다. 다음 날인 10월 25일. 박 대통령은 “최순실씨에게 일부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는 내용을 포함한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대통령의 입에서 ‘최순실’이란 이름이 공개적으로 처음 등장하는 장면이었다. ‘비선’의 존재가 수면 위로 드러나자 민심이 들끓기 시작했다.
 
“모이자. 분노하자.”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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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9일, 시민 2만 명이 처음으로 촛불을 들고 광화문으로 나왔다. 촛불집회 이틀 뒤인 10월 31일. 최씨가 검찰에 출석했다. 기자들 앞에 선 최씨는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11월 4일 두 번째 사과성명을 냈다. 사과성명엔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이 됐나”라는 말도 담겼다.
 
권력 농단 사건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당시의 권력 실세들이 줄줄이 검찰로 향했다. 11월 6일 검찰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을 최씨와 함께 대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직권남용) 등으로, 정호성 전 비서관은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등으로 구속했다. 정 전 비서관은 2013~2016년 최씨에게 ‘대통령 말씀 자료’는 물론 장·차관급 인선 자료 등 공무상 비밀 문건 47건을 유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11월 12일. 서울 도심은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촛불로 뒤덮였다. 이날 촛불집회에 참가 시민 수가 처음으로 100만 명(주최 측 추산)을 넘었다. 시민들은 청와대 100m 앞까지 행진하며 ‘탄핵’을 외쳤다.
 
12월 9일. 마침내 국회가 대통령 탄핵안을 의결했다. ‘찬성 234표, 반대 56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힘만으론 불가능했을 수치였다. 촛불 민심에 놀란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에서 탄핵 찬성 의원들이 가세한 결과였다.
 
대통령 탄핵안의 국회 의결로 박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됐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한걸음도 옮기지 않고 긴 칩거에 들어갔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절차가 시작됐다. 동시에 박 대통령 탄핵 이후 역대 최대 규모인 150명으로 구성된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출범해 수사를 본격화했다.
 
2017년 1월 1일.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가진 신년 인사회에서 “저를 도와줬던 분들은 뇌물 하나 받은 것 없이 일을 한 것”이라며 ‘사과 모드’에서 입장을 바꿨다.
 
그간 박영수 특검은 최씨를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 등을 받은 것과 관련해 뇌물수수와 강요 혐의로 기소했다. 최씨는 딸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입학과 학사비리에 대한 업무방해 혐의로 별도의 재판도 받았다. 그런 최씨는 지난 1월 특검에 조사를 받으러 출두하면서 “억울하다”고 고함을 쳤다. 이를 본 한 청소아주머니가 “염병하네”라고 맞고함을 친 건 당시의 민심을 반영했다는 말을 들었다.
 
박 대통령의 전면 부인 속에 국론도 둘로 나뉘기 시작했다. 한쪽에선 촛불집회가, 다른 쪽에선 “특검 해체”를 주장하는 태극기집회가 열렸다. 그 속에서 3월 6일 박영수 특검팀은 “박 대통령이 최순실과 공모해 부정청탁의 대가로 뇌물을 받았다”고 박 대통령의 뇌물 수수 혐의를 확인했다.
 
그리고 3월 10일. 박 대통령의 신분이 이날 ‘박 전 대통령’으로 바뀌었다. 헌법재판소가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탄핵안을 인용했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읽은 결정문의 결론이었다.
 
“피청구인의 위헌·위법 행위는 대의민주제 원리와 법치주의 정신을 훼손했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박 대통령 탄핵은 태블릿PC가 공개된 지 138일 만이었다.
 
태블릿PC 공개→비선 실세 최순실의 수면 위 부상→국정 농단 사건에 분노한 촛불집회→탄핵으로 이어진 정국 흐름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끝내 박 전 대통령 사법처리로 이어졌다. 청와대에서 나와 삼성동 자택에서 머물던 박 전 대통령은 3월 21일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해 조사를 받았고 31일 구속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에게 18개 혐의를 적용했다.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시 대기업에 출연금 강제모금 ▶삼성·롯데·SK 관련한 제3자 뇌물 수수 및 요구 ▶ 공무상 비밀 누설 ▶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리 등이었다. 최순실씨에게 경제적 이익을 주기 위한 뇌물 수수·요구 액수는 592억원으로 특정했다.
 
5월 24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이 시작됐다. 박 전 대통령은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최씨에 대해선 6월 23일 딸 입학 비리와 관련해 유죄가 인정됐다. 서울중앙지법은 이날 최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최씨는 재단 강제모금과 뇌물 사건 등에 대해 박 전 대통령과 공범으로 현재까지 계속 재판을 받고 있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대한 재판과 수사도 진행형이다. 검찰은 4월 17일 우 전 수석을 국정 농단 의혹의 진상 은폐에 가담하고 정부 인사에 부당하게 개입한 것으로 결론짓고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우 전 수석은 혐의사실을 모두 부인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재판은 6개월간 계속돼 왔다. 그 사이 발가락 부상으로 외부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지만 10월 16일 법원은 검찰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 연장 신청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재판정에서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은 저에게서 마침표가 찍어지길 바란다”고 말하면서 재판을 거부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이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는 가운데 24일로 JTBC의 태블릿PC 보도 1년을 맞았다. 지난 1년은 한마디로 ‘소용돌이의 1년’이었다.
 
박성훈 기자 park.seo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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