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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한 대밖에 안 맞았어요" 어느 전공의 '운수 좋은 날'

 
[창간기획]민주주의는 생활이다 - ④ 
#픽턴 #fixed_intern
K씨는 2년 전 전북대병원 정형외과 레지던트로 들어가기 위해 반년 넘게 '투잡'을 뛰었다. 레지던트 채용 공고가 나기 전부터 전공의들의 논문 작성 보조, 워크숍 초대장 발송, 교수들의 해외 학회 일정 정리, 환자 드레싱 등 온갖 일을 도왔다. K씨는 약 100㎞ 거리의 광주광역시에 있는 다른 병원에서 인턴으로 일주일에 88시간씩 근무 중이었지만 선배들은 그를 '픽턴(fix+intern·레지던트 채용 예정자)'이라 부르며 수시로 불러내 일을 시켰다. 노력 덕인지 이듬해 전북대 정형외과 레지던트가 됐지만, K씨는 올해 수술방에서 전공의 선배에게 폭행을 당한 뒤 병원을 그만뒀다.
 
매년 가을이면 수련 병원에는 '픽턴'이 등장한다. 보통 12월쯤 신입 레지던트를 뽑고, 이듬해 3월부터 고용되는데, 정식 출근 전부터 불려 나와 일을 하는 의사를 '픽턴'이라고 부른다. 보통 업무 인수·인계를 핑계로 불러내는데, K씨처럼 선발 전부터 충성도를 증명하기 위해 직원처럼 일하는 경우도 흔하다. 아직 다른 병원, 다른 과 소관인 인턴들에게 드레싱, 수술 예정 환자 차트 정리 등 레지던트 업무뿐 아니라 새벽에 의국에 나와 선배들이 먹을 과일을 깎고 김밥을 사다 두는 등 불필요한 허드렛일까지 한다.
 
보건복지부는 24일 전북대병원 내 전공의에 대한 폭행, 입사 전 사전근무 지시 등을 확인하고 2년간 정형외과 레지던트 정원을 미책정 등 행정처분을 내린다고 밝혔다.
 
#예쁜후배_왜_때려요 #운수좋은날 #셀프치료
지난 3월 한양대병원 성형외과 2년 차 레지던트 두 명이 근무지를 무단 이탈했다. 병원에서 나온 A씨는 정신과 상담을 받으며 가족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성형외과 김모 교수의 폭행은 일상이었다. 빨리 대답을 안했다고 10분 동안 욕을 하며 뺨을 때린다든지, 감염병 환자를 드레싱하다 피묻은 손으로 뒷통수를 때리기까지 했다. 간호사에게 "오늘은 교수님한테 한 대밖에 안맞았어요"라고 말하며 웃는 전공의도 있었다. 동료 교수들은 침묵했다. 김교수가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수술방을 잡아오지 못했다는 이유로 수술방 복도에서 전공의 뺨을 때리는 걸 보고도 "살살해, 살살" 하며 지나갈 뿐이었다.
 
서울동부지검은 김 교수를 폭행, 모욕 혐의로 기소했다. 김 교수는 검찰 조사를 받으며 "전공의를 예쁘게 생각해서 목을 주물러준 것"이라 해명했다. 한양대병원은 김교수에게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내렸고 12월 초 복귀 예정이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유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3일 부산대 병원 A교수가 2014년~2015년에 전공의 11명을 폭행했다며 피해 사진과 함께 폭로했다. 이에 따르면 A교수는 정강이를 20차례 걷어차거나 수술기구로 때리는 등 상습적으로 전공의를 폭행했다. 상습적으로 머리를 맞은 전공의는 고막이 파열됐다. 다친 전공의들은 스스로 주사기로 피고름을 짜내고, 서로를 치료하며 버텨왔다.
 
더불어민주당 유은혜 의원은 부산대병원에서 지도교수가 전공의 11명을 온몸에 피멍이 들 정도로 2년간 상습폭행해 왔다고 23일 밝혔다. 사진은 유 의원이 공개한 피해 전공의 신체 모습.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유은혜 의원은 부산대병원에서 지도교수가 전공의 11명을 온몸에 피멍이 들 정도로 2년간 상습폭행해 왔다고 23일 밝혔다. 사진은 유 의원이 공개한 피해 전공의 신체 모습. [연합뉴스]

 
A교수는 지난해 진급해 권한이 더 막강해졌고, 전공의 11명은 불이익을 당할까봐 걱정돼 피해 사실에 대해 진술을 거부하고 있다.
 
#10명중에_1명은_맞는다 #교수도_밉고 #선배도_밉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와 대한전공의협회가 전공의 1768명에게 물었더니 10.8%가 교수나 상급 전공의에게 신체 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폭언은 더 비일비재하다. 교수와 상급 전공의에게 언어 폭력을 당했다는 응답자가 각각 32.8%, 34.1%였다. 
 
의료계에서는 흔히들 "능력있는 교수는 깐깐하다"고 말하지만 전공의들의 생각은 다르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안치현 회장(서울대병원 비뇨기과 레지던트 3년차)은 "폭압적인 교수 밑에서 일하는 전공의들은 벌벌 떠느라 환자 상태에 대한 상황 판단도 제대로 못내리고 서 있다. 오히려 같은 의사끼리 서로의 잘못을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 고쳐나가는 과정에서 배우고 발전한다"고 말한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여자전공의 #분위기파수꾼
서울 △△대학병원 2년 차 전공의 B씨는 지난해 레지던트 업무 인계장에서 "회진을 돌 때는 교수님 옆에 반드시 여자 전공의가 있어야 한다"는 내용을 보고 놀랐다. 선배들은 "남자 전공의가 옆에 있으면 회진 분위기가 안좋아진다"고 했다. '이게 무슨 변태같은 지침이지' 싶었지만 실제로 매일 회진을 돌 때마다 여자 전공의가 교수 옆자리를 지켰다. 익숙해지다 보니 A씨도 "이건 못하겠다"고 항의하는 후배를 보며 '유별나게 군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무서운 교수님'의 수술에 여자 인턴을 보조로 들여보내는 관행도 있다. 역시 "여자 인턴이 들어가야 수술방 분위기가 화기애애 해진다"는 이유에서다. 
 
강남의 한 대학병원에서는 지난달 산부인과 전공의 두 명이 사직서를 내면서 해당 과 교수가 러브샷을 강요하는 등 성추행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남은 전공의들이 재발 방지와 수련 폭력 근절을 요구하며 호소문을 냈지만, 교수와 면담 자리에서 "엣날에는 남자 교수님한테 뽀뽀하는게 로딩(윗사람들이 전공의에게 할당한 업무)이었다"는 말을 들었다.
  

#좁은바닥 #논문어쩌지 #참는다
전공의들이 겁내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논문 안 준다"는 협박이다. 전문의 자격을 따기 위해 쓰는 논문은 교수가 아닌 학회지가 승인 하지만, 과도한 업무량과 데이터의 제약 때문에 전공의 혼자 작성하는 일은 거의 없다. 대부분 교수가 주는 자료를 바탕으로 논문을 쓴다. 때문에 교수들은 전공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논문 자료를 주지 않고, 작성 과정에서도 코치도 해주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교수와 갈등이 생기면 다른 병원 재취업도 막힌다. 대학 병원 교수들은 대개 한두다리 건너면 아는 사이라 "걔가 문제가 있는 애다" "맞을만 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해두면 다른 병원에 재취업하기가 어렵다.
 
서울 소재 대학병원 C교수에게 '선배의 생각'을 물었다. "의사라고 다 기사에 나오는 교수들처럼 때리지 않는다. 단, 수술방에서만은 예외가 될 수 있다. 환자 생사가 갈리는 전쟁터다. 작은 실수로도 환자가 죽을 수 있어 교수에 따라 때리기도 하고 욕을 하는 것이고, 동료들도 '때리지는 말지 그랬어'라고 할 뿐이다. 수술방에서 실수를 강하게 질책하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는 "선배들은 회초리 때리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회가 변해 그런 것이 말이 안되는 일이 됐다는 것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곱게 귀하게 자라서 의대 들어온 젊은 친구들은 모욕감을 쉽게 느낀다"고 덧붙였다.
 
이현 기자 lee.hyun@joongang.co.kr  
일러스트=심정보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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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직장에서나 폭행·폭언·성추행이 문제가 되지만, '도제식'이란 의사 수련 과정의 특성 때문에 폭력의 수위가 높고, 피해자가 수련을 중도 포기하는 등 상황이 심각합니다.
솜방망이 징계로 끝난 경우 결국 피해자가 병원을 나가는 걸 많이 봤습니다. 부산대병원도 폭행 교수에 겨우 정직 3개월 징계로 그쳤죠. 병원이 엄벌을 내려야 합니다.
전공의 본인도 피해 사실을 적극 알리고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먼저 전공의협의회에 알리세요. 병원 내 단위 협의회를 통해서 공론화하고 병원이 징계위원회를 열게 하는 거죠. 
주위에서 고발을 격려해주는 분위기도 중요합니다. 동료가 망설일 때 "용기를 내" "잘 얘기했어"라고 지지해주세요. 수면 밑에 그냥 두면 악습은 반복됩니다.
-이용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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