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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집단의 원숭이가 더 건강한 이유

1990년 여름, 인도 다람살라에 있는 달라이 라마의 접견실에 10명의 서양인이 모였다. 티베트 불교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에게 교리를 배우러 온 걸까. 아니다. 이들은 심리학ㆍ생리학ㆍ행동의학 등 다양한 분야의 과학자들이었다. 마음의 본질을 연구하기 위한 학술단체, 이름하여 ‘마음과 생명 학회’의 정례 모임이었다. 개인적으로 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달라이 라마는 87년부터 이 모임을 시작했다. 매회 다른 주제로, 분야별 세계적인 석학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자리다. 지금까지 열리고 있다. 벌써 30회를 넘어섰다. 

『힐링 이모션』
저자: 달라이 라마ㆍ존 카밧진 외
옮긴이: 김선희
출판사: 판미동
가격: 1만6000원

 
책은 ‘감정과 건강’을 주제로 한 3차 대담에서 진행된 발표 내용과 대화를 담았다. 마음이 몸을 치유할 수 있는지, 두뇌와 면역계와 감정은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안락한 삶을 위해서는 어떤 감정이 보탬이 되는지 등의 이야기가 오갔다. 마음과 건강의 관계가 과학적 연구 대상으로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던 때였다. 
 
당시 대담에 참석했던 감성 지능(EQ) 제창자인 대니얼 골먼은 “고통스러운 감정이 건강을 악화시키고, 긍정적인 감정이 육체적 평안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당시 모임에서 보이려 했지만, 당시 내가 가진 논거는 대개 정황적인 것에 불과했다”며 “하지만 요즘 위스콘신 대학의 리처드 데이비드슨의 연구진이 고통스러운 감정을 품고 있으면 면역 기능이 약화한다는 사실을 실험으로써 밝혀내고 있다”고 소회를 밝혔다. 
 
대화의 시작은 ‘종교 없는 윤리학’에 관한 이야기다. 마음 과학을 논하기에 앞서 달라이 라마가 던지는 화두는 이렇다. “저는 종교적인 원리와 무관한 윤리 체계를 세우는 것이 가능한지 묻고 싶습니다. 신이나 다른 신비한 힘, 전생이나 업(業)을 받아들이지 않고, 단지 현재의 삶 위에서 미덕과 미덕이 아닌 것 사이에 경계를 긋거나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일이 가능할까요?”
 
서구사회에서는 종교적 원리를 대신해 합리주의적 입장을 내세웠다. 왜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면 안 되는 지 타당한 이유를 제시하는 식이다. 남에게 고통을 주지 않으려는 연민의 감정은 이 과정에서 중요하게 다뤄진다. 그리고 감정이 신체적 건강에 끼치는 영향으로 이야기는 이어진다. 분노·슬픔·불안 등 감정 상태에 따라 사례는 다양하다. 불안감의 경우 원숭이 실험을 예로 든다. 
 
수컷 다섯 마리를 우리에 가두고 매달 원숭이 두 마리를 바꿀 경우와 그대로 둔 경우를 살폈다. 위계질서를 정하기 위해 계속 싸운 집단에서는 동맥경화가 나타났고, 우두머리는 심한 심장병을 앓게 됐다. 바꾸지 않고 그대로 둔 다른 집단의 우두머리의 경우 동맥이 가장 건강했다. 싸우지 않는다는 조건에서는 우두머리가 되면 더 건강해진다는 결과가 흥미롭다. 결국 마음 상태가 몸에 영향을 끼치고, 몸의 건강을 위해 인간은 종교 없이도 윤리적일 수 있게 되는 걸까. 결론은 쉽게 나지 않는다.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과학과 종교의 이야기가 넓게 펼쳐질 뿐이다. 
 
티베트어에는 영어의 ‘감정(emotion)’에 해당하는 말이 없다. ‘자존감’ 또는 ‘자기혐오’라는 개념도 없다. 정치적으로 박해받은 티베트인 난민들은 다른 난민들과 달리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지 않는다고 한다. 반면에 많은 서양인이 낮은 자존감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는 이야기에 달라이 라마는 놀란다. 서구에서는 자존감의 치료를 위해 자신의 생각에 주의를 기울이는 법을 배우는 ‘마음 챙김 명상’을 한다. 달라이 라마는 이 역시도 모든 중생이 불성을 갖고 있다는 불교의 교리와 이어져 있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 마음의 본성이 더할 나위 없이 순수함을 알고, 비어 있음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을 때 자기 혐오와 같은 심리적 왜곡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사실 달라이 라마와 과학자들의 대화는 이미 여러 권의 책으로 나왔다. 기시감은 있지만, 27년 전의 선견지명을 확인하며 아직도 명쾌하게 풀리지 못한 ‘마음 과학’을 넓게 살피게 하는 책이다.
 
 
글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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