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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밤에 나 홀로

클라우디오 아라우가 연주한 쇼팽의 ‘녹턴’ 음반.

클라우디오 아라우가 연주한 쇼팽의 ‘녹턴’ 음반.

가을 달빛이 차다. 일어나 창문을 닫는다. 습관적으로 오디오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며칠 전 잠시 듣다 잊어버리고 꺼내지 않았던 음반이 중간부터 흘러나온다. 오디오의 불빛이 근래 들어 부쩍 차가워진 실내공기를 데운다. 번잡했던 마음이 조금은 내려앉는다. 피아노가 연주하는 음표들 사이로 가을밤이 흐른다. 쇼팽의 녹턴이다.

WITH 樂: 쇼팽 ‘녹턴’

 
녹턴(Nocturne)은 번역어로 ‘야상곡(夜想曲)’ 이다. 특정한 형식이나 장르라기보다 ‘밤에 즐겨 연주되는 음악이나 밤의 정서를 가진 곡’ 정도의 의미다. 원래 밤에는 조용한 음악들이 귀에 더 잘 들어온다. 그중에서 녹턴은 밤의 꽃, 밤의 여왕이다. 그런 차원에서 녹턴은 공연장에서 듣는 것보다 늦은 밤 혼자 듣는 게 더 낫다. 요즘 유행하는 혼밥, 혼술에 빗대어 정의하자면 내게 녹턴은 ‘홀로 듣는 밤 음악’이다. 
 
이처럼 밤에 듣기 좋은 달달한 피아노 독주 모음곡을 처음 만든 사람은 쇼팽은 아니었다. 한 세대 위 아일랜드 작곡가 존 필드가 녹턴의 아버지다. 그 전까지 피아노 소품들은 무곡 일부를 제외하고는 주로 소나타, 론도, 변주처럼 음악 형식으로 존재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존 필드는 이를 피아노로 연주하는 가사 없는 노래 스타일로 바꾼다. 나중에 ‘무언가’나 ‘서정 모음곡’이라고 일컬어지는 것들의 출발인 셈이다. 
 
당연히 오른손의 중심 멜로디는 시적이며 감상적이고 또한 명료하다. 왼손은 분산화음을 통해 노래를 돋보이게 하는 반주에 충실하다. 쇼팽은 존 필드의 아이디어를 가져와서 모두 21곡의 야상곡을 만들었다. 쇼팽이 큰 성공을 거두게 되자 ‘쇼팽=녹턴’의 공식이 생겨버렸다. 그 덕에 존 필드라는 이름은 한동안 음악가들 사이에서도 잊혀졌다. 만약 존 필드가 살아있었다면 쇼팽에 대해 살리에르의 비애를 품었음직하다. 
 
녹턴 중 가장 유명한 곡이자 내가 가장 처음 알게 된 쇼팽의 음악은 녹턴 작품 9-2다. 클래식을 몰라도 들어보면 “어, 나 이 곡 알아”할 만한 곡이다. 초등학생이던 1980년대 초반 방영된 ‘요술공주 밍키’라는 만화영화를 보고 이 곡을 알게 되었다. 40~50대는 이 만화영화를 기억할 것이다.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요술공주 밍키’가 소년들을 설레게 한 이유는 그 당시 초등학교 소년들은 전부 안다. 호기심 많은 사춘기 소년들의 이야기니 더 이상 궁금해 하지 않으시길. 
 
영화에서 “요술공주 밍키! 밍키, 밍키!”하는 메인 주제가 외에 유난히 기억에 남는 곡이 바로 쇼팽의 녹턴 작품 9-2였다. 유령이 된 할아버지가 오래 전 자신을 외로움에서 구해준 어린 소녀를 만나고 다시 하늘나라로 가는 장면에서 나온 곡이다. 만화영화 스토리와 결합된 애잔한 멜로디에 감동한 나는 한동안 이 노래의 제목을 찾느라 고생했었다. 
 
쇼팽의 녹턴은 웬만큼 알려진 피아니스트라면 한번 쯤 녹음했다. 다들 수준급 음반을 남겼다. 나는 요즘처럼 서늘해지는 가을밤이 되면 클라우디오 아라우가 연주하는 따뜻한 녹턴을 찾게 된다. 그는 칠레 출신으로 국내에서 그렇게 인기가 많은 연주자는 아니다. 하지만 세기의 거장답게 자기만의 독특한 색깔이 있어 다른 연주자들보다 소리결이 묵직하고 두껍다. 그의 쇼팽 연주를 듣고 있으면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그림이 생각난다. 그의 연주는 피아노로 그려낸 고흐의 그림 같다. 지나치게 어둡지 않고 중후하며 몽환적이다. 그가 즐겨 쓰는 뵈젠도르퍼 피아노의 품격 있는 소리가 고흐의 그림처럼 부드럽게 밤을 감싼다. 
 
녹턴 작품 9-2는 애상적이고 우아한 멜로디가 반복되어 기억하기 쉽다. 중간에 작은 변형을 거치는 아름다운 멜로디는 뒤로 갈수록 더 많은 장식음과 격정을 싣는다. 아라우의 연주는 유약한 쇼팽과는 거리가 있어서 좋다. 그는 템포를 미묘하게 조절하여 자신의 개성을 드러낸다. 가장 많이 추천받는 아르투르 루빈슈타인의 연주와 비교하면 차이가 드러난다. 피아노톤 자체부터 루빈슈타인이 밝다면 아라우는 어둡다. 음을 밀고 당기는 표현에 있어서도 루빈슈타인이 중요한 포인트에서 수줍게 드러낸다면 아라우는 훨씬 더 과감하다. 들어갈 듯 말 듯 늦추는 감각이나 특정 음표에 힘을 실어 예상보다 강조하는 방식들은 이질적이지만 독특한 매력이 있다. 수채화처럼 투명한 느낌은 아니지만 속내를 감춘 밤의 정서와 잘 어울린다. 
 
밤이 길어졌다. 밤은 성찰의 시간이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밤을 밤답게 쓰지 못한다. 늦은 밤까지 거리의 네온사인은 번쩍이고, 자정이 가까워지는 시간에도 학원차들의 불빛은 도로를 메운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을이 문득 사라지기 전에 나만의 녹턴과 더불어 조금은 고즈넉한 시간을 가져본다고 얼마나 더디 가겠는가. 
 
 
글 엄상준 TV PD 90empero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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