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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키스신으로 충격 준 ‘운명의 손’ 상영관

스카라극장(1935~2005)
영화의 계절이 따로 있을 리 없지만, 10월은 부산국제영화제의 달이다. 극장 근처에 가본지가 언젠지 기억도 안 나는 사람이더라도 영화에 대한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된다. 한국 영화의 전성기를 꼽으라면 다양한 의견이 나오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바로 지금 같다. 1000만 관객을 넘어섰다는 소식이 잊을만하면 들리는 시대라서다. 이런 한국 영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지역은 충무로다. 한때 충무로는 한국영화를 상징하는 고유명사였다.

정연석의 Back to the Seoul

 
1960~70년대만 해도 수많은 영화사가 몰려있던 동네. 동시에 한 해 수백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던 충무로의 신화는 이제 아득한 옛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명보극장·대한극장과 함께 충무로의 대표적인 극장이었던 스카라극장도 등록문화재 지정을 반대했던 건물주에 의해 2005년 기습적으로 철거되어 많은 사람을 안타깝게 했다. 1935년 약초극장이란 이름으로 등장해 수도극장으로, 다시 스카라극장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70년간 충무로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극장의 최후라기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장면이었다.
 
국내 최초의 키스신으로 당시의 ‘순진했던’ 사람들에게 정신적 충격을 주었던 영화 ‘운명의 손’과 너무나 길었던 러닝타임부터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교수 부인의 외도라는 자극적인 소재로 논쟁의 불씨가 됐던 ‘자유 부인’은 스카라극장의 필모그래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리스트다. 지금 스카라 극장 자리에는 아시아미디어타워라는 아파트형 공장이 들어서 있다.
 
 
정연석 : 건축가. 일러스트레이터. 도시와 건축에 대한 관심으로 스스로 도시 유목민을 자처한다. 드로잉으로 기록한 도시 이야기 『기억이 머무는 풍경』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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