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VR 그뤠잇! … 헤드셋 쓰니 내가 바로 주인공

나이토 카오루 감독의 ‘박사님과 만유인력의 사과’(2017)

나이토 카오루 감독의 ‘박사님과 만유인력의 사과’(2017)

김진아 감독의 ‘동두천’(2017)

김진아 감독의 ‘동두천’(2017)

조나단 코룸·그래엄 로버츠 감독의 ‘언더 더 크랙드 스카이’(2017)

조나단 코룸·그래엄 로버츠 감독의 ‘언더 더 크랙드 스카이’(2017)

마치 꿈속 같다. 눈을 뜨니, 경기도 동두천 외국인 관광특구 한복판에 내가 앉아 있다. 옆에선 미군 병사들이 노점에서 샌드위치를 사 먹고 있고, 뒤를 돌아보니 짧은 원피스를 입은 여성이 또각또각 구둣소리를 내며 걸어간다. 어두워지니 이젠 좁은 골목길. 전봇대 바로 옆, 밀폐된 곳에 갇힌 듯 답답하다. 갑자기 앞쪽에서 아까 그 여성이 내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다가온다. 으스스한 표정. 피해야 하는 데 움직일 수 없다. 으악, 비명이 튀어나온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의 미래를 보다

 
올해 베니스영화제에서 최우수 VR(Virtual Reality·가상현실) 스토리상을 수상한 김진아 감독의 영화 ‘동두천’(2017)이다. 겉모습은 VR용 헤드셋을 쓰고 버둥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의 나는 동두천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현장을 목격하는 중이다. 극장에 앉아 스크린을 볼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몰입감이다.
 
12일에서 21일까지 열린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최근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 VR 영화 기술과 국내외 화제작 36편을 소개하는 특별 프로그램 ‘VR 시네마 in BIFF’를 마련했다. 미래의 영화는 어떤 모습일까. 국내 최초로 마련된 VR 영화 전용 상영관에 중앙SUNDAY S매거진이 다녀왔다. 

 
제롬 블라케 감독의 ‘얼터레이션’(2017)

제롬 블라케 감독의 ‘얼터레이션’(2017)

지난 16일 부산 해운대 ‘영화의 전당’ 1층에 마련된 VR 영화 전용 상영관 ‘VR 씨어터’에는 관람객들의 기나긴 줄이 펼쳐져 있었다. 극장 안쪽에선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펼쳐지는 중이다. 두꺼운 검정 고글을 쓴 관객 20여 명이 작은 의자에 앉아 각자 영화를 감상하고 있다. 누군가는 의자를 계속 빙빙 돌리고, 누군가는 “어어~”하며 의자를 뒤로 밀어낸다. 뭔가를 만지려는 듯 손을 쑥 내미는 사람도 있다.
 
“자, 고글을 먼저 쓰고 헤드셋을 착용하세요. 준비가 끝나면 영화를 시작합니다.”
 
가장 먼저 프랑스 제롬 블라케 감독이 만든 ‘얼터레이션’을 골랐다. 올해 베니스·칸 등 주요 국제영화제에 초청 받았던 화제작이다. 꿈을 연구하는 실험에 자원한 남자가 꿈속 연인과 실제 연인 사이를 오가며 감정적 동요를 겪는다는 내용의 18분 짜리 실사 영화다. 시작은 널찍한 실내 수영장. 고개를 앞으로, 뒤로, 옆으로, 위아래까지 돌려보아도 모든 공간에 화면이 펼쳐진다. 물 소리가 나서 오른쪽을 보니 남자 주인공이 내게로 다가오고 있다. 오 마이 갓. 
 
프레임에서의 해방, 관람자가 선택하는 스토리
잉헤얀 리크하트 스켄트 감독의 ‘애쉬즈 투 애쉬즈’(2016)

잉헤얀 리크하트 스켄트 감독의 ‘애쉬즈 투 애쉬즈’(2016)

유진 정 감독의 ‘알루메뜨’(2016)

유진 정 감독의 ‘알루메뜨’(2016)

에릭 다넬 감독의 ‘아스테로이드!’(2017)

에릭 다넬 감독의 ‘아스테로이드!’(2017)

페이빈 장 감독의 ‘프리웨일’(2017)

페이빈 장 감독의 ‘프리웨일’(2017)

‘얼터레이션’을 비롯해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된 영화 대부분은 지난해와 올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동안 게임이나 어트랙션 시설 등에서 VR 기술이 활용됐지만, VR 영화 제작이 본격화된 건 최근 몇 년 사이다. 업계에서는 2016년을 ‘VR 원년(元年)’이라 부르기도 한다. 삼성의 ‘기어VR’, 오큘러스 VR의 ‘오큘러스 리프트’, HTC의 ‘바이브’,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VR’ 등 가상현실 체험용 HMD(Head mounted Display) 기기들이 대량 생산돼 일반에 판매되기 시작한 게 지난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디바이스가 대중화되면서 다양한 VR 실사 영화와 애니메이션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VR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공간을 꽉 채운 화면이다. 객석에서 프레임 안의 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관객이 직접 화면 안으로 들어간다. ‘360도 비디오’로 불리기도 하는데, 전문가용 360도 카메라와 일반 영화 촬영용 카메라가 제작에 폭넓게 활용되기 때문이다. 일반 카메라 4~6대를 원통으로 붙여 쓰거나, 한 대의 카메라로 앞·뒤·옆을 각각 촬영한 후 ‘스티칭’을 통해 360도 화면을 완성하기도 한다. 휴대폰 카메라로 파노라마 사진을 찍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감독의 선택에 따라 관람자는 3인칭 관찰자가 되기도 하고, 1인칭 등장 인물의 위치에 설 수도 있다. 등장 인물의 시선이 될 때 몰입감은 극대화 된다.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된 아담 코스코 감독의 ‘나이브즈’에는 남편의 외도를 의심한 아내가 상대 여성을 찾아가는 장면이 있다. 흥분해 칼로 그녀를 찌르려는 순간, 관객은 칼에 찔리는 여성의 시점에 선다. 나를 향해 다가오는 날카로운 칼 끝에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게 된다. 공포 영화나 광활한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영화, 자연을 다룬 다큐멘터리 등에 VR 기술이 많이 활용되는 이유다.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 화면’이라는 특성상 VR 영화는 관람하는 이의 의지가 중요하다. 가만히 앞만 보고 있으면 뒤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주변 인물을 놓치게 된다. 인도 영화 ‘예! 발레’는 발레리노를 꿈꾸는 소년들의 이야기인데, 두 소년이 관람객의 양쪽에서 춤을 춘다. 한 소년을 보고 있으면 다른 한 명은 볼 수 없다. 이번 부산영화제를 찾은 제롬 블라케 감독은 “사운드를 활용해 보는 이의 시선 이동을 유도하기도 하지만, 결론적으로 관람객들은 각자 보고 싶은 것을 본다”며 “영화를 본 후 각자 본 장면을 ‘콜라주’해야 영화를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는 점도 VR 영화의 묘미”라고 설명했다.
 
제작자가 세상을 창조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은 VR에 매우 적합한 장르다. 게임 형식을 접목한 애니메이션에서는 관객이 직접 움직여 영화 속을 돌아다니는 적극적 인터랙티브(interactive) 감상이 가능하다. 올해 베니스영화제에서 VR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펜로즈 스튜디오의 ‘아르덴즈 웨이크’는 이런 VR의 강점을 잘 활용한 작품이다. 선 채로 움직이며 화면 속 이곳저곳을 떠돌다 하늘에 떠 있는 배 안의 풍경이 궁금해져 얼굴을 창문에 쓱 들이밀어 봤다. 바오밥 스튜디오의 ‘아스테로이드!’는 지구를 침공한 외계인의 우주선으로 들어간 관람객이 직접 컨트롤러를 조정해 우주선 장치들의 기능을 확인해볼 수 있다.
 
VR과 인공지능의 결합, 주인공과 대화도 가능할까
부산 ‘영화의 전당’ 1층 ‘VR 씨어터’에서 VR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

부산 ‘영화의 전당’ 1층 ‘VR 씨어터’에서 VR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

유진 정 감독의 ‘아르덴즈 웨이크’(2017)

유진 정 감독의 ‘아르덴즈 웨이크’(2017)

구범석 감독의 ‘보화각’(2017)

구범석 감독의 ‘보화각’(2017)

에릭 다넬 감독의 ‘인베이전!’(2016)

에릭 다넬 감독의 ‘인베이전!’(2016)

이번 ‘VR 시네마 in BIFF’는 국내 VR 콘텐트 산업을 이끌고 있는 바른손이 KT·영화진흥위원회와 함께 준비했다. 바른손은 2014년부터 VR 분야에 투자해왔으며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와 상암동에서 VR 체험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VR·게임사업부문 박재하 팀장은 “이번 영화제에서 하루 900~1200명의 관객들이 VR 씨어터를 찾았다. VR 영화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던 자리”라며 “몇 년 내 VR 영화 전용 상영관 오픈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한계도 있다. 일단 디바이스가 너무 무겁다. 30분 이상 쓰고 있기가 힘들다. 게다가 긴 시간 영화를 보고 나면 멀미와 비슷한 어지러움과 불쾌감이 느껴진다. 대부분의 VR 영화가 5분에서 30분 안쪽으로 제작되는 이유다. 하지만 현재 VR에 쏠리는 할리우드와 실리콘밸리의 높은 관심을 감안하면 디바이스는 물론 콘텐트의 혁신도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VR과 AR(증강현실), AI(인공지능)의 결합도 뜨거운 화두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아트테크놀로지센터 이승무 소장은 “픽사가 내년에 발표하는 신작 ‘코코 VR’은 VR에 SNS 기능을 결합해 관객들이 가상 현실 속에서 소통할 수 있게 하는 ‘소셜 VR’”이라며 “VR 영화에 AI 기술이 접목되면 관람객이 영화 ‘반지의 제왕’ 속 원정대가 돼 샘이나 프로도와 대화를 나누며 전투에 참여하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했다. 영화와 게임의 구분, 감독과 관객의 역할 등 여러 경계가 사라진 스토리텔링의 등장이다. 이번 영화제에서 ‘아르덴즈 웨이크’ ‘알루메뜨’ 등을 선보인 유진 정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지금껏 없었던 아주 새로운 형태의 예술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실험은 이미 시작됐다.” 
 
 
부산 글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사진 부산국제영화제조직위원회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