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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대 불태우는 장엄한 제의

내년 1월 리모델링에 들어가는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이 마지막 창극 무대를 올린다. 국립창극단의 대형 신작 ‘산불’(10월 25~29일까지)이다. 한국 현대 사실주의 희곡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차범석의 ‘산불’은 1962년 명동 시절 초연됐던 인연을 시작으로 지난 반세기 동안 국립극장을 무대 삼아 연극은 물론 오페라·뮤지컬 등으로 꾸준히 변주돼 왔다. 그러니 22개월의 공사 기간을 거쳐 2019년 재개관 예정인 해오름극장에 대한 고별의 의미로 우리 공연계의 기념비적인 작품 ‘산불’을 다시 지피는 것은 필연에 가깝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마지막 창극 ‘산불’

 
1973년 개관한 해오름극장은 북한과 치열한 체제 경쟁 상황에서 정치적인 의도를 품고 거대한 스케일로 지어졌다. 가로 30m x 세로 27m x 높이 11m에 이르는 국내 가장 큰 무대에 당시로서는 최첨단인 회전무대까지 갖췄다. 그런데 당시 극장 건축 기술이 미흡했던데다 가부키 극장인 일본 국립극장을 모델로 지어진 탓에 왜색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최근 들어 현대적인 공연들이 큰 무대보다 관객과의 친밀도가 높은 무대를 선호하게 되면서 이 ‘국내 최대 규모’ 무대는 홀대를 받아 왔다. 리모델링 후에는 한국형 공연예술 문화에 최적화된 밀도있는 공간으로 변모할 예정이다. 
 
하지만 거대한 무대가 차원이 다른 스펙터클을 구현하기에 이상적인 운동장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만큼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되는 마지막 창극 ‘산불’은 이 거대한 공간을 또 다른 주인공으로 삼았다. 6·25 전쟁의 이데올로기 대립 속에서도 꿈틀대는 인간의 본능으로 인한 비극을 대규모 스펙터클로 표현하기 위해 실제 대나무 1000그루와 폭격기 잔해 등 대형 세트가 아낌없이 투입된다. 이태섭 무대 디자이너는 “이런 무대에서 공연하는 마지막 창극이 될 터라 연출과 만나 공간부터 구상했다”고 밝혔다. 이성열 연출도 “음악극이니 사실주의를 벗어나 적극적으로 재해석하고 싶었는데, 과감한 무대미술 덕에 힘을 얻었다”고 했다. 
 
하여 거대한 해오름 무대는 그 자체로 전쟁과 역사의 소용돌이가 됐다. 기존 사실주의적 무대가 널찍한 마당을 사이에 둔 최씨와 양씨 집을 중심으로 펼쳐졌다면, 이번엔 점례와 사월, 규복이 사랑과 욕망을 나누는 공간인 대나무 숲이 나선형으로 돌아가는 중앙 회전무대를 차지했다. 마치 여인이 생명을 품는 자궁이나 둥지와도 같은 형상에 남근 모양의 비행기가 폭탄처럼 떨어져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든 모양새다. 비극의 소용돌이에 빠진 마을의 현재이자 전쟁의 처절한 폭력성까지 미술에 내포한 것이다.
 
연극 ‘벚꽃동산’ ‘과부들’ 등에서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 온 극단 백수광부 대표 이성열 연출의 첫 창극 도전이란 점도 주목된다. 그는 동시대적 공감대를 위해 이데올로기 대립보다 전쟁이라는 보편적 상황 속에서 인간 본연의 삶과 사랑에 대한 갈증에 방점을 찍었다. 원작에 없는 캐릭터인 죽은 자의 원혼, 까마귀떼 등을 코러스로 등장시켜 사실주의 희곡을 마치 그리스비극과도 같은 표현적인 음악극으로 재탄생시킨다.
 
2007년 안숙선 작창으로 전통적 버전의 창극이 제작된 적이 있는 만큼 음악적으로도 파격을 꾀한다. ‘부산행’ ‘곡성’ ‘암살’ 등 흥행 영화부터 무용·연극·국악 실험까지 하고 있는 전방위 작곡가 장영규의 첫 창극 도전이다. 특유의 구조주의적 접근법으로 시대적 배경인 1951년에 불렸던 지역의 토속민요와 판소리를 분절시키고 재조합하는 실험에 나섰다. 그는 “창극단만이 할 수 있는 음악으로 만들었지만 익숙하지 않을 뿐 난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무엇보다 이 무대의 백미는 엔딩의 산불 장면이 될 것 같다. 구시대의 유산으로서의 해오름극장을 떠나보내는 장엄한 제의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40여년간 우리 공연예술 변천사를 함께 목격해 온 이 기념비적 무대를 새로운 창극 ‘산불’이 어떤 표현으로 불태우고 한 시대를 마감할지, 두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볼 일이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국립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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