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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헤밍웨이·도스토옙스키 … 천재 그리고 ‘환자’

당신도 혹시 … 정신질환 다시 보기
후기 인상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유독 노란색에 집착했다. 누런 밀짚모자를 즐겨 썼으며 불타오를 듯 선명한 색감의 해바라기 정물화를 자주 그렸다. 노란 저택에 머물면서 ‘옐로 하우스’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흔들리듯 불안한 붓 터치와 노란색에 대한 선호는 ‘측두엽 간질’의 증상일 가능성이 있다. 스스로의 귀를 잘라 여인에게 선물할 정도로 광인(狂人)이었던 그는 술과 마약 의존증이 있었다.

창조적일수록 욕망과 현실 괴리 커
강박·우울증·나르시시즘 겪어
한국인 우울증보다 울화병 시달려
하소연 들어주는 과정도 필요

 
미국의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일가는 4대가 우울증과 정신질환에 시달렸다. 헤밍웨이에게 사냥과 낚시 등을 가르쳐 줬던 의사 아버지는 1928년 엽총으로 자살했다. 헤밍웨이 자신도 말년으로 갈수록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 망상에 시달렸다. 아버지의 자살을 원망하면서 역설적이게도 아버지와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집에서 엽총으로 머리를 쏴 자살했다. 『노인과 바다』 『무기여 잘 있거라』 등 전투·싸움과 같은 남성적 소설을 남긴 것은 남성성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과 나르시시즘의 영향이 작용했다.
 
73세의 나이에 “늙고 추한 것을 견딜 수 없다”며 자살한 일본의 가와바타 야스나리(『설국』 작가)는 결벽증과 나르시시즘이 있었고, 도박벽과 우울증이 있었던 러시아 문호 도스토옙스키는 『죄와 벌』 등 거의 모든 작품에 자신의 살인 충동을 투영했다.
 
이병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전 한림대 교수)는 역사적 인물의 전기와 작품 등을 참고해 정신병리 증세를 추론했다. 그에 따르면 위대한 업적을 남긴 예술가와 역사적 인물들은 공통적으로 정신과적 문제를 겪었다. 과거 제대로 된 처방도, 약물 치료도 없던 시기 천재들이 보였던 행동들이 현대 의학의 시각에선 정신질환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전 교수는 비슷한 증상으로 찾아오는 환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들려주던 이야기를 엮어 『위대한 환자들의 정신병리』(2015년), 『자살의 역사』(2017년) 등의 저서를 냈다. 저서의 등장인물만 300명이 넘는다. 스스로 “강박적인 글쓰기”라고 부를 정도로 사례 수집을 해왔다. 올 초 대학병원을 퇴직하고 충북 음성의 정신과 전문 소망병원으로 옮긴 그를 지난 19일 만났다.
 
정신질환 하면 부정적 이미지가 강한데.
“정신건강은 생물학적 요인, 심리적 요인, 사회적인 요인 세 가지가 작용한다. 타고나기를 뇌 기능에 결함이 있거나 남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 남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예민하게 캐치하는 기질이 있다. 가정환경이 엉망이고 사회적으로도 인정받지 못하게 되면 정신질환이 올 수밖에 없었다. 과거 치료법도 없던 시절 예술가들은 실현될 수 없는 자신의 충동을 글로, 그림으로 표출했고 그것이 위대한 작품으로 남았다.”
 
창조적인 사람일수록 우울증에 잘 걸릴 수 있다는 말인가.
“무언가를 자꾸 끄적이고 쓰는 사람들은 자기에 대한 갈등을 해소하고자 하는 것이다. 창조적인 욕망이나 환상은 상대적으로 큰데 현실적으로 적절하게 해소되지 못하면 정신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선행 연구 중 예술가 가운데서도 시인(詩人)은 조사 대상의 70~80%가 우울증 전력이 있다는 연구가 있다. 자신이 추구하는 세계와 이상을 압축적으로 표현해야 하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한다. 일례로 ‘오감도’를 쓴 이상의 시 세계는 자아도취적이다. 독자들의 이해는 관심이 없다. 자신의 욕구 불만과 갈등을 해소하는 셀프 큐어(self cure)의 차원이다. 이상은 명석한 두뇌를 타고났지만 아버지는 손가락 일부가 없는 가난한 이발사였고 어머니는 고아 출신이었다. 태어나자마자 큰아버지 집에 맡겨졌는데 시에서도 분리불안의 흔적이 드러난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자살률이 사실상 1위인 국가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26.5명(OECD 평균 12명)이었다. 지난달 5일 국문학자 마광수 전 연세대 교수가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유명인의 자살도 끊이지 않고 있다. 반면 정신질환 치료에는 부정적 인식이 크다.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정신질환 관련으로 자살한 사람은 2만728명이었다. 중앙심리부검센터에 따르면 2015년 자살자 121명에 대해 심리적 부검을 진행한 결과 ‘우울증 미치료군(39명·32.2%)’이 경제 문제(29명·24.0%)로 인한 자살자보다 많았다.
 
한국은 왜 자살률이 높나.
“서양 의학에서 말하는 우울증과 한국의 우울증은 엄밀히 다르다. 서양인은 기독교 윤리에 바탕을 둔 죄의식이, 일본을 비롯한 동양은 수치심 때문에 우울증이 생긴다. 한국의 주된 정서는 한(恨)이다. 억울함·분노와 부당함에 대한 호소다. 우울증이라기보다는 울화병이다. IMF 이후 자살률이 늘었는데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고 가족이 해체되는 환경적 요인으로 인한 분노·적개심·억울함의 정서가 원인이 됐다. 서양 의학에서 말하는 우울증, 곡기를 끊을 정도의 무기력함은 세로토닌을 조절하는 항우울제 처방으로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 반면 울화병은 약 처방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주변 사람과 전문가가 소위 하소연을 들어주는 과정도 필요하다.”
 
우울증이라고 모두 자살하지는 않는다. 기질적 영향도 있나.
“자살 문제는 의사들도 풀기 어려운 과제다. 충동 조절이 잘 안 되고 나르시스틱한 사람에게 자살 충동이 생기면 남겨질 가족이나 주변 사람의 감정보다 자기 감정에 집중하기 때문에 성공 확률이 높다. 헤밍웨이 일가는 우울증의 집안 내력이 있어 보인다. 유전적으로 기질이 전달될 수 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두드러지는 정신과적 문제는 어떤 것이 있나. 극복하는 방법은.
“인터넷이 발달하고 대중매체 노출이 잦다 보니 충동 조절과 나르시시즘 문제가 있는 젊은 환자가 늘고 있다. 유치원에서 왕따를 당해 대인기피증이 온 5세 환자도 있었다. 적어도 병원을 찾는다는 건 긍정적 신호다. 자신에게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걸 인정해야 치유의 길이 생긴다. 한국인들은 워커홀릭(일 중독)이 많다. 강박적으로 업무 성과를 내지만 내면에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상대적으로 크거나, 마음속 깊이 열등감이 있다. 혹은 자신에 대한 과대망상이 작용할 수 있다. 자존심을 조금만 내려놓으면 된다. 전문가를 찾거나 자조 그룹(비슷한 사람들의 모임)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면 고통을 줄일 수 있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를 알게 되면 두려움이 덜해진다. 스스로의 잠재력을 믿고 용기를 내야 한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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