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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투자가 참여하고 헤지 가능해져야 안정 찾을 것

[투자은행의 세계] 비트코인 투자의 미래
지난달 서울 여의도에 문을 연 코인원블록스. 세계 최초의 오프라인 가상화폐 거래소로 ATM을 통해 비트코인을 직접 사고팔 수 있다. [중앙포토]

지난달 서울 여의도에 문을 연 코인원블록스. 세계 최초의 오프라인 가상화폐 거래소로 ATM을 통해 비트코인을 직접 사고팔 수 있다. [중앙포토]

지난 13일 기준으로 시가총액이 940억 달러가 넘어 모건스탠리(890억 달러)는 물론 골드만삭스(930억 달러)보다 덩치가 큰 투자 자산이 있다. 가격이 워낙 가파르게 오르고 요동치는데 이를 설명할 논리가 부족하다 보니 투자 전문가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거품 경고장을 날리고 있다. 지난달 12일에는 월가 최대 은행 제이피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까지 그 행렬에 동참했다. 다이먼 회장은 “17세기 튤립 투기 때보다 더 많은 거품이 낀 사기”라고 강하게 비난하며 “제이피모건체이스의 직원이 이를 거래한다면 곧바로 해고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골드만삭스 회장 지원사격 업고
시가총액 급등, 940억 달러 넘어서
변동성 금의 9배 달해, 급등락 반복
통화 역할 하려면 가치 안정돼야

 
이쯤 되면 어렵지 않게 머릿속에 떠오를 이 자산은 바로 ‘비트코인(Bitcoin)’이다. 시가총액 기준 1700억 달러 규모로 커진 가상통화시장에서 55%의 점유율을 자랑하는 대표 주자다. 지난달 비트코인은 다이먼 회장의 날 선 비판은 물론 중국 정부의 규제 가능성 등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큰 조정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호시탐탐 시장 진입 기회를 노리던 기관투자자들이 매수에 나서고, 때마침 로이드 블랭크파인 골드만삭스 회장이 비트코인을 옹호하는 듯한 트윗을 날린 데 힘입어 반등에 성공했다. 이제는 6000달러 고지를 향해 달리는 중이다. 블랭크파인 회장이 지난 6월부터 직접 소통을 통해 골드만삭스의 ‘블랙박스’ 이미지를 떨쳐버리겠다며 시작한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이다 보니 파장이 더욱 컸다. 그는 “종이 화폐가 금을 대체할 때도 사람들은 의구심을 가졌다”며 간접적으로 다이먼 회장의 경고를 일축했고, 결과적으로 시장은 블랭크파인 회장의 손을 들어준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지난 7년간 연 평균 수익률 240% 넘어
비트코인의 정체성은 오랜 논란거리다. 이게 통화인지 아니면 수많은 투자 자산의 하나에 불과한지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법정 통화로 보려면 화폐 발행 국가의 공신력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비트코인의 배경에는 발행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다. 비트코인이 통화로서 충족되는 조건은 ‘교환의 매개수단’이라는 점이다. 아직까지는 전자상거래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되는 수준에 그치지만 물건이나 서비스를 사고 팔 때 통화 역할을 하고 있다. 결국 비트코인을 통화로 본다면 한 국가가 통제하고 정당성을 부여하는 중앙집권적 통화가 아니라 온전히 시장 참가자들에 의해 통화 지위를 인정받고 가치가 결정되는 분권화된 통화인 셈이다. 국가 권력뿐만 아니라 금융 권력으로부터도 자유롭다. 개인 간 직접 지불·결제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금융의 중개 기능을 유명무실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업계에서 비트코인에 주목하는 이유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투자 수익률과 변동성에 있다. 2010년 1달러 근처에도 미치지 못하던 비트코인은 이제 6000달러를 넘보고 있다. 지난 7년간 연 평균 수익률이 240%를 넘는다. 올해만 놓고 봐도 전문가들의 연이은 독설과 각국의 정부 차원 규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말 대비 500% 가까운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초 강세장에 올라타지 못하고 거품이 터지기를 기대하며 바라만 보던 사이 여기까지 와 버렸으니 속이 쓰릴 투자자들이 한 둘이 아닐 터다.
 
이렇게 경이로운 수익률은 그냥 쉽게 얻을 수 없는 법이다. 높은 투자 성과를 거두려면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게 트레이딩의 기본 원리이고, 비트코인도 예외가 아니다. 비트코인은 대표적 위험 척도인 ‘변동성의 끝판왕’이란 점이 이를 입증한다. 단기간에 가격이 10% 이상 오르거나 내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난 13일 기준 비트코인의 변동성(직전 30일간 일일 수익률의 표준편차)은 나름 변동성이 높다는 금의 9배, 브라질 헤알화의 13배에 달할 정도다.
 
비트코인을 향한 헤지펀드 등 기관투자자들의 관심이 증폭된 계기는 올해 4월 비트코인이 금을 추월하는 일종의 ‘골든크로스’가 나타나면서다. 그동안 비트코인의 효용성을 금과 비교하는 논쟁이 계속되면서 금값이 기술적 저항선 역할을 해왔으나, 이 선이 뚫리면서 응축된 에너지가 한꺼번에 폭발한 결과였다.
 
‘최악의 거품이 되겠지만 아직은 멀었다’
헤지펀드는 이미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트코인의 매력에 푹 빠진 대표적 헤지펀드 매니저로는 골드만삭스 FICC(채권·외환·상품) 트레이더 출신 마이클 노보그라츠가 손꼽힌다. 2015년 미국 자산운용사 포트리스의 사장을 마지막으로 월가를 떠났던 그는 은둔 생활을 접고 다시 돌아와 “비트코인은 곧 1만 달러까지 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시장 심리를 자극하고 나섰다. 2013년 비트코인이 200달러에도 미치지 못했던 시절부터 공개적으로 매수를 권고하며 개인적으로도 투자해 천문학적 수익을 거둔 그의 예측이기에 시장의 반응은 뜨거울 수밖에 없다. 올해부터는 가상통화에 투자하는 헤지 펀드를 설립하고, 그의 개인 돈에 고객 투자금까지 더해 본격적으로 트레이딩에 뛰어들었다. 그의 트레이딩 논리는 명료하다. ‘비트코인은 역대 최악의 거품이 되겠지만 아직은 멀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돈 벌 기회는 여전히 무궁무진하다는 얘기다. 이런 기관투자가들의 변화에 가장 민첩하게 대응하고 있는 투자은행은 골드만삭스다. 쇄도하는 고객의 리서치 요구에 부응해 지난 6월부터 기술적 분석 리포트를 내놓기 시작했다. 리서치를 공식적으로 책임지는 ‘글로벌 투자 리서치 사업부’가 아닌 ‘FICC 트레이딩 사업부’의 기술적 분석가 세바 자파리가 고객에게 비트코인 차트 분석을 보냈다. 골드만삭스는 리서치 사업부와는 별도로 트레이딩 데스크에서 주요 고객과 비정기적으로 트레이딩 아이디어를 공유하는데, 실제 고객 거래로 이어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을 정도로 영향력이 있다. 이번에 차트 분석부터 먼저 내놓은 건 비트코인의 특수성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인 투자 자산이라면 적정 가치 평가를 통해 목표가를 설정한 후 공식 투자 리포트를 내놓는 게 정석이지만, 비트코인은 수익 모델이 워낙 모호해 가치 산정이 어려워 일단 시장 심리를 보여주는 차트 분석으로 시동을 건 것이다.
 
골드만삭스의 비트코인 트레이딩 영업 개시가 임박했다는 뉴스도 나오고 있다. 공교롭게도 블랭크파인 회장의 트윗이 시장을 달군 날, FICC 트레이딩과 자기자본 투자(PI) 사업부에서 해당 영업을 검토 중이라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고객이 비트코인과 관련된 위험을 감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회사도 위험을 자발적으로 감수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과거 골드만삭스가 ‘브릭스(BRICs)’라는 플랜카드를 내걸고 이머징 국가의 위험 감수에 선도적으로 나섰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만약 실현된다면 골드만삭스가 부여하는 정당성을 등에 업은 비트코인 거래에 기관투자가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그동안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했던 과도한 변동성에 대한 우려는 한층 완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시카고옵션거래소 연내 선물 상장 추진
시카고상업거래소에서는 다양한 선물·옵션이 거래된다. [중앙포토]

시카고상업거래소에서는 다양한 선물·옵션이 거래된다. [중앙포토]

비트코인은 투자가 아닌 투기의 영역에 접어든 것은 맞아 보인다. 최근의 비트코인 가격 움직임은 뭔가 획기적인 호재가 나오던지 아니면 급박한 숏커버링(가격의 하락을 예상하고 공매도한 후 환매수하는 것)이 일어날 때 가능한 유형인데 실제로는 둘 다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비트코인 공매도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라 이런 가격 움직임을 초래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 밖에 90년대 말 소위 ‘닷컴’ 효과처럼, 요즘 미국에서 회사 이름이나 사업 내용에 비트코인의 흔적이 보이면 주가가 속등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점도 지나친 쏠림 현상을 대변한다.
 
과연 비트코인은 달러와 같이 진정한 기축통화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한 출발점은 ‘안정된 가격 움직임’이다. 지금 같은 널뛰기 장세를 탈피해 가격이 예측 가능한 수준에서 움직여야 사람들이 교환의 매개수단으로서 기꺼이 보유하고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격이 안정되려면 무엇보다 기관투자가가 활발히 참여해야 한다. 비록 분권화 된 자유시장을 표방하는 비트코인이지만 정부의 적절한 규제가 필요한 이유다. 규제는 비트코인의 제도적 불확실성을 감소시키고 정당성은 높임으로써 보다 많은 기관투자가들의 참여를 유도해 시장 참가 층을 두텁게 할 것이다.
 
다양한 파생상품도 시장 안정을 위해서 필수적이다. 파생상품으로 헤지(위험을 없애는 거래)가 가능해야 비트코인에 보다 편안하게 투자할 수 있다. 미국 시카고옵션거래소(CBOE)가 올해 4분기 ‘비트코인 선물’을 상장하려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일단 선물부터 상장되고 나면 선물을 기초 자산으로 삼은 상장지수펀드(ETF), 옵션 등 수많은 파생상품이 쏟아져 나와 기관투자가들의 구미를 자극하게 될 것이다. 이는 위에서 말한 규제와도 맥락을 같이 한다. 비트코인 파생상품이 거래될 시카고옵션거래소는 미국 금융 당국인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규제를 받기 때문이다.
 
 
최정혁 전 골드만삭스은행 서울 대표
경영학박사. 씨티은행, 크레디트 스위스, UBS에서 FICC(Fixed Income, Currenciesand Commodities, 채권·외환·상품) 트레이더로 일했다. 현재 대학에서 국제금융과 금융리스크를 강의하며 금융서비스산업의 국제화를 연구하고 있다. jungcho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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