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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적 효용성 이미 상실 vs 북핵 억제 위해 여전히 유용

나토 사례로 본 전술핵 재배치의 정치학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북핵 폐기·전술핵 재배치 1000만인 서명운동본부’로부터 452만여 명의 서명패를 전달받고 있다. [연합뉴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북핵 폐기·전술핵 재배치 1000만인 서명운동본부’로부터 452만여 명의 서명패를 전달받고 있다. [연합뉴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회원들이 지난 18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전술핵 재배치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뉴스1]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회원들이 지난 18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전술핵 재배치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뉴스1]

리셴룽(李顯龍) 싱가포르 총리는 지난 20일 “(북핵) 상황이 이대로 흘러간다면 한국과 일본은 핵보유국에 근접하려 하거나 실제로 문턱을 넘을 수 있다”며 “이는 동북아시아에 (이전과는) 다른 전략과 안보 균형이 이뤄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23일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기에 앞서 CNBC 방송과 인터뷰를 하면서다.

한·미 “북핵만 인정” 반대 입장 불구
北 위협에 국민 불안감 높아져
홍준표 방미, 미 의원들 설득 나서
내년 지방선거 핵심 이슈 떠오를 듯

 
리 총리는 이어 “한국인들은 미국이 한반도에서 철수한 전술핵을 재배치하라고 요구해야 하는지, 아니면 뭔가를 스스로 개발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될 것”이라며 “이미 한국인의 60%는 핵 능력을 보유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5~7일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한국의 핵무기 보유에 대한 찬성 여론을 인용한 것이다.
 
주한미군 전술핵 재배치를 당론으로 채택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도 마침 23일부터 27일까지 워싱턴DC를 방문한다. 홍 대표는 방미에 앞서 지난 19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북핵이 마지막 단계에 와 있는 만큼 한국에 전술핵을 재배치해 북한과 추후 협상해야 한다”며 “이것이야말로 북한과 동등한 위치에 서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방미의 목적은 안보에 대한 한국 국민의 절박한 생각을 전하고 한국의 여론을 미국 의원들에게 전달하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안보 이슈가 최대 화두로 떠오른 상황에서 전술핵 재배치를 최우선 쟁점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힌 셈이다.  
 
“전술핵 재배치 필요” 응답 68%
이 같은 보수 야당의 움직임과 달리 한·미 양국 정부는 전술핵 재배치에 부정적이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지난 18일 한 강연에서 “전술핵 재배치는 유사시 동맹국에 핵 억지력을 제공한다는 미국의 핵우산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변경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어렵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조 장관은 구체적으로 전술핵 재배치에 부정적인 이유로 ▶북한의 핵 보유 인정 효과 ▶유사시 북한의 공격 타깃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때와 유사한 지역 주민의 거센 반발 등을 들었다.
 
하지만 전술핵 재배치 논란은 정부의 반대 입장에도 불구하고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현재로선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비핵화와 관련, 북한의 입장은 지난 16일(현지시간) 김인룡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차석 대사의 유엔 군축위원회 발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 차석대사는 이날 회의에서 “북한은 1970년대 이후 미국의 극심하고 직접적인 핵 위협을 받아온 세계에서 유일한 국가”라며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과 핵 위협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으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을 협상 테이블에 올리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도 북한의 비핵화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조 장관은 같은 강연에서 “냉정하게 볼 때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본다”고 말했다.
 
북한의 강한 핵 보유 의지는 한국 국민의 불안감을 극도로 자극할 수밖에 없다. 경제력이나 재래식 군사력의 월등한 우위에도 불구하고 이를 통해서는 북한의 핵 위협으로부터 확실하게 벗어날 수 없다는 우려 때문이다. 핵무기는 핵무기로만 억제할 수 있다는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 논리가 ‘북핵의 인질이 될 수는 없다’는 국민 정서와 맞물리면서 전술핵 재배치가 폭넓은 여론의 지지를 얻고 있는 모양새다. 실제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달 8~9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북핵 위협에 대응해 전술핵 재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전체 응답자의 68.2%였다.
 
동맹국 불안감 해소, 정치적 효과는 입증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전술핵무기의 경우 ▶전략 핵폭격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소위 ‘핵 삼원 체제(Nuclear Triad)’가 완성된 상황에서 이미 군사적 효용성을 상실했다고 보고 있다. 가상 적국의 코앞에 굳이 전술핵을 배치하지 않더라도 각종 전략핵무기를 통해 충분히 억지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확장 억제(extended deterrence)’ 강화를 통해 북한의 핵을 억지할 수 있다는 한·미 당국의 입장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배치된 전술핵무기의 역사를 보면 조금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다. 나토의 전술핵은 1950년대 소련의 핵 위협에 맞서 배치되기 시작해 71년엔 최대 7300기까지 늘어났다. 이후 한반도 비핵화선언으로 한국에서 전술핵이 철수됐던 91년 무렵 유럽에서도 3000기 이상이 한꺼번에 철수 또는 폐기된 뒤 지속적으로 줄어 현재는 5개국에 150~180개의 B-61 핵탄두가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의 유럽 전술핵 배치 당시 상황은 여러모로 한국의 현 상황과 유사하다. 우선 당시 전술핵 배치는 유럽 국가들의 독자적인 핵 보유 욕구를 막기 위해 이뤄졌다. 프랑스와 영국의 독자적인 핵무장은 막지 못했지만 전술핵의 나토 배치를 통해 미국은 서독 등 다른 유럽 국가들로의 핵무장 도미노를 막을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전술핵 재배치는 안보 위협을 느낀 한국의 독자적인 핵무장 요구를 막을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다.
 
전술핵 배치는 또 유럽 국가들이 소련의 핵무기 앞에서 겪었던 ‘방기의 공포(fear of abandonment)’를 해결할 수 있는 카드였다. “미국이 과연 소련 핵무기의 워싱턴 공격을 각오하면서까지 유럽을 지켜내려 하겠느냐”는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한 결정이기도 했다. 현재 한국에서도 “서울이 북한의 핵 공격을 받을 경우 미국이 과연 북한의 ICBM이 도달할 수 있는 미 서부 주요 도시에 대한 공격을 감수하면서까지 반격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존재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요약하면 전술핵 배치는 군사적 효용성보다는 정치적으로 동맹국의 불안감을 달래는, 이른바 ‘왕의 몸값(King’s Ransome)’이었다. 이는 주한미군의 평택기지 이전 결정 당시 주한미군 ‘인계철선(引繼鐵線) 논란’과 유사하다. 북한군의 주요 예상 남침로인 한강 이북 중서부 전선에 배치돼 있던 주한미군 2사단은 한반도 유사시 미군의 자동 개입을 보장하는 인계철선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한강 이남인 평택기지 이전에 대한 반발이 거셌다.
 
군사적 효용성이 매우 제한적인 상황에서 여전히 유럽 내에서 전술핵 잔류를 지지하는 근거로 향후 러시아와 핵 군축 과정에서 협상 카드로 활용될 수 있다는 논리도 한반도 상황과 유사하다. 북한이 공공연하게 미국과의 핵 군축 협상을 주장하는 상황에서 한반도 전술핵이 향후 협상 카드로 쓰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황일도 국립외교원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해외 주둔 미군 규모나 기여를 줄여나갈 것을 시사한 상황에서 주한미군의 물리적 규모나 재정적 기여를 줄이기 위한 수단으로 전술핵 재배치 카드를 대안으로 선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이어 “나토 사례를 볼 때 미군 전술핵이 국내에 재반입될 경우 그 의미는 확장 억제에 대한 미국 측의 정치적 의지를 상징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설명했다.
 
야 3당 전술핵 공조 성사될까
북핵 위협에 대한 한국의 심리적 불안감을 감안할 때 보수 야당의 전술핵 재배치 이슈화는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도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직후 치러진 지방선거에 이어 또다시 안보 이슈가 선거를 좌우할 핵심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여당이 전술핵 재배치에 강한 거부감을 보여왔다는 점에서 야당은 전술핵 재배치가 보수 표심을 집결시킬 최상의 카드 중 하나라고 보고 있다.
 
한국당은 이미 추석 연휴 전부터 국민서명운동에 나서는 등 본격적으로 전술핵 재배치 이슈화에 나섰다. 지난 2월 출범한 ’북핵 폐기·전술핵 재배치 1000만인 서명운동본부‘는 지난 16일 452만여 명의 서명을 받아 홍 대표에게 전달했다. 한국당 디지털정당위원회는 21일 미 워싱턴 한인회와 함께 백악관 홈페이지에서 한국 전술핵 재배치에 관한 청원 서명운동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홍 대표는 CNN 인터뷰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한·미 경제동맹이라면 전술핵 재배치로 한·미 핵동맹을 맺어야 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바른정당도 전술핵 재배치를 당론으로 정하진 않았지만 충분히 검토해볼 만하다는 입장이다. 바른정당은 지난 대선 때 미국의 핵 전력을 한·미 공동의 자산으로 삼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공약을 내놓기도 했다. 다음달 치러질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유승민 의원은 “우리도 나토식으로 미국과 전술핵을 공유해야 한다”며 “국방부는 대통령을 설득해 한·미 전술핵 공유를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정하라”고 촉구했다.
 
반면 바른정당과의 통합설이 불거진 국민의당은 지난 대선 때 한반도 비핵화를 사실상 당론으로 채택했다. 전술핵 재배치에 반대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김동철 원내대표 등 당 일각에서는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에 따른 특단의 조치 필요성을 언급하며 “나토식 핵 공유를 주장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차세현 기자 cha.se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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