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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만한 집안 아이만 사귀어라, 교실 내 ‘어울림 칸막이’ 높아졌다

잇단 초·중생 대상 범죄에 부모들 자구책
일러스트=강일구 ilgook@hanmail.net

일러스트=강일구 ilgook@hanmail.net

서울 길음동에 사는 주부 김지연(39)씨는 최근 아이의 학교 친구들에 대해 꼼꼼히 묻는 일이 많아졌다. 친구의 집이 어디인지, 부모님은 뭘 하시는 분인지는 기본. 아이 친구가 한부모 가정은 아닌지, 부부싸움이 잦은 것은 아닌지까지 우회적으로 묻곤 한다. 혹시라도 화목하지 않은 가정의 아이라면 가능한 한 멀리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김씨는 “스스로 ‘어린애한테 뭘 묻고 있나’란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아이 주변과 관련해서는 최대한 알아내려고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서울 염창동에 사는 주부 이예진(40)씨는 초등학생인 자신의 딸과 최근 몇 가지 약속을 했다. 우선 자신이 허락한 친구와만 놀기로 했다. 학교를 마친 다음에 다른 친구 집에도 가지 않는다. 혹시 가더라도 놀러가는 친구 엄마의 연락처와 주소 등을 받아놓는다. 아이가 친구 집에서 잠을 자는 ‘파자마 파티’ 등은 당분간 하지 않기로 했다.
 
견고해진 조기 배제 메커니즘
이른바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을 비롯해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사건·사고가 잇따라 벌어지면서 자구책을 찾는 가정이 늘고 있다. 대표적인 게 부모가 ‘믿을 만한 집’을 골라 아이들에게 교제토록 하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일찌감치 친구를 가려서 만나는 일종의 ‘조기 칸막이’가 생긴 셈이다. 과거엔 일부 부유층을 중심으로 벌어지던 현상이 이제는 중산층을 비롯한 일반 가정으로까지 번져나가는 양상이다. 부모 간 대면 관계가 없는 집의 아이와 자신의 자녀가 어울리는 것을 원치 않는 경우도 늘고 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면 관계가 없는 집에 내 아이를 서너 시간씩 맡기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커지면서 부모들은 아이 친구 집이 잘사는지 못사는지 같은 가정 환경을 넘어 그 집이 화목한지까지 따져봐야 하는 상황이 됐다”며 “각종 사건들로 자신과는 다른 이들을 피하려는 ‘배제 메커니즘’이 견고하게 자리 잡게 되면서 모든 아이가 두루 섞여 공부하는 조화로운 교실은 이제 환상이 됐다”고 말했다.
 
최근엔 부모들 간에 서로의 연락처를 교환하는 건 상식이 됐다. 5학년 딸아이를 둔 주부 김수현(41)씨는 이영학 사건 발생 이후 같은 반 아이들의 연락처와 주소를 엑셀 파일로 만들어 친한 학부모들과 공유했다. 김씨는 “연락처는 개인정보인 만큼 구하기 어려웠지만 스스로 전화번호와 주소 공개를 원한 집을 중심으로 학부모판 비상연락처를 만들게 됐다”며 “아무래도 연락처가 없는 집 애들과 우리 애를 놀리기는 좀 불편하다”고 말했다.
 
부모 간의 친소 여부가 자녀의 관계를 결정짓는 경향도 뚜렷해졌다. 한 예로 엄마들의 SNS 대화방(이하 카톡방)이 대표적이다. 마음이 맞는 학부모 4~5명 정도가 단체 카톡방을 만들어 수시로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대한 정보를 얻고 그와 관련한 대화를 나눈다. 다른 아이나 그 가정에 대해 물을 때도 이런 단톡방이 자주 활용된다. 아들을 서울 성북구의 한 사립학교에 보냈다는 강지영(37)씨는 “친한 엄마들을 통해 다른 아이들에 대한 정보를 얻는 편이다”라며 “요즘 사건이 너무 많다 보니 아이를 아무 집에나 보내기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아이 혼자 집 밖에 나가게 하는 일도 극히 드물어졌다. 친구 집이나 학원에 보낼 때에도 엄마들은 주변에서 대기한다. 강씨 역시 시간을 정해 아이를 친구 집에 보낸다. 엄마끼리 친한 경우엔 아예 엄마도 함께 아이 친구 집에 놀러가는 일이 잦다. 아이들이 놀러왔을 때 아빠들이 자리를 피해주는 건 일종의 ‘예의’가 됐다. 직장인 진성민(42)씨는 “초등학교 딸아이 친구들이 집에 놀러오면 왠지 불편한 기분이 들어 집 근처 커피숍 등에 피해 있게 된다”며 “집사람은 자연스레 섞이는 것 같은데 아빠들은 아무래도 스스로 조심하게 된다”고 말했다.
 
직장맘 아이들 소외 심화
아이 입장에서도 가급적 친구 집에 놀러가지 않는다. 만남 장소로는 키즈카페나 동물카페 등 제3의 장소가 인기를 얻고 있다. 역시 엄마와 아이가 동행한 형태가 일반적이다. 문제는 이처럼 외부에서 만나 아이를 놀리는 경우가 많다 보니 부모의 경제력이나 시간적 여건이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은 자연스레 소외된다는 점이다. 전업주부가 아닌 직장맘을 둔 아이도 상대적으로 모임 등에 덜 초대받게 된다. 4학년 아들을 둔 직장인 김수현(40)씨는 “금요일 오후 등에 일부러 다른 아이 엄마들을 만나서 내 소개를 한다. 가정이 특히 화목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전업주부인 엄마들이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지 조심스럽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한 초등학교 교사는 “교사 입장에서 편견을 갖지 않기 위해 가급적 아이의 여러 여건에 대해 파악하지 않으려 해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부모님이 이혼했는지, 동생이 있는지 등은 자연스레 알게 된다”며 “한번은 학부모 모임에서 형편이 어려운 가정 몇몇 곳에 대한 정보를 공유했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란 일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유의 ‘배제 메커니즘’은 초등학교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역시 비슷한 가정 형편의 학생들끼리 어울린다. 같은 학원에 다니는 친구끼리 더 친해지는 식으로 자연스레 자신과는 다른 배경의 아이를 배제한다. ‘그룹 과외’ 등도 이런 현상을 강화시킨다. 직장인 김영호(46)씨는 “어차피 비슷한 수준에서 사교육을 시킬 수 있는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것 아니냐. 비슷한 수준의 부담을 질 능력이 되는 사람들과 자주 볼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모들의 불안을 등에 업고 어린이 돌봄 서비스도 확대되는 추세다. 아이돌보미를 구할 땐 두 차례씩 면접을 보기도 한다. 과거엔 아이를 돌봐주는 ‘맘시팅’ 서비스가 대학생 보모를 중심으로 공부와 놀이를 합친 경우가 많았다면 최근에는 자녀 양육 경험이 있는 ‘엄마 맘시터’나 교육 경험 있는 이들로 구성된 ‘선생님 맘시터’ 등으로 다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돌봄 서비스 역시 ‘아이의 엄마가 아니다’라는 점에서 아이들의 교우 관계를 넓혀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
 
아이와 늘 함께 있기 어려운 직장맘을 위해 어린이의 위치를 수시로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도 인기다. 아이의 등·하교 정보와 현재 위치 확인이 가능한 ‘KT 등·하교 안심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이 서비스는 아이가 학교의 정문이나 후문을 통과하면 전용 단말기를 통해 등·하교 여부를 보호자에게 문자로 알려준다. 또 보호자가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매시간 단위로 아이의 이동 경로와 현재 위치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올 4월 출시된 이래 현재 가입자 수는 6000여 명에 달한다.
 
편협한 인간관계 우려도
어린이 안전을 부모가 적극적으로 챙기는 사회 분위기를 나무랄 순 없지만 이로 인해 아이들의 교우 관계나 경험 폭은 점점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안전하다’고 검증된 친구들 외에는 부모와 자녀 모두 교류를 꺼리는 탓이다. 한부모 가정이나 상대적으로 불우한 환경의 어린이와 청소년은 친구 사귀기가 더 어려워졌다. 이혼한 뒤 아이를 혼자 키우고 있다는 직장인 김미경(40·가명)씨는 “이혼 사실이 아이의 인간관계에까지 영향을 줄 것 같아 늘 조심하지만 같은 반 엄마들이 내 이혼 사실을 대강은 알고 있는 것 같아 신경이 많이 쓰인다”고 말했다.
 
구정우 교수는 “아이들이 정해진 범위를 넘어서 자유롭게 교제하고 이를 통해 자신과 배경이 다른 사람과도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이런 부분이 어릴 때부터 통제되면 왜곡된 사회화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며 “부모의 관점을 통한 일방적인 사회화 정도가 우려스러운 수준에 이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학내 인권 문제나 차별, 학교폭력 등이 줄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지만 이는 학생 개개인이 소속 계층에 따라 다른 계층의 학생과는 아예 섞이지 않기 때문”이라며 “학교 현장에서부터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무작정 아이의 대인관계를 좁혀가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아이들은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더 하고 싶어하는 심리가 있다”며 “아이에게 무작정 누구와는 놀지 말라는 식으로 관계를 단절시키기보다는 다양한 배경의 아이들을 집으로 초대해 놀게 해주는 등의 방식으로 인간관계를 넓혀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곽 교수는 또 “교실 현장에서도 조별 수업 등을 통해 서로 다른 배경의 아이들이 적절히 섞이도록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지만 근본적으로 사회계층 간 통합이 먼저 이뤄져야 교실 내 소외나 배타적인 분위기를 바꿀 수 있을 것이란 지적도 있다. 정광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사회계층 간 통합(social class mix)을 위해 부자와 가난한 사람 간 계층 격차가 크지 않은 스웨덴이나 핀란드 등 북유럽처럼 계층 간 격차를 해소하는 일부터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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