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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환 통역관 23세 김병옥, 유럽 첫 춘향전 한국어 강의

[특별기획] ‘한국학 120주년’ 러시아 상트대학을 가다
한일병합 후 침체됐다 광복 후 활기, 1956년 청산별곡 등 『고전시가문학』 발간
 

러, 아관망명 이후 한국에 관심
한국어 교사 보내달라 요청
1917년까지 20년간 가르쳐
고전문학 등 한류의 원형 소개

김병옥이 사용한 한국어 교본에 실린 춘향전과 그의 서명(왼쪽). [사진 상트대]

김병옥이 사용한 한국어 교본에 실린 춘향전과 그의 서명(왼쪽). [사진 상트대]

지난 13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시를 가로질러 핀란드만으로 향하는 네바 강의 물결은 초겨울 매서운 바람만큼 거세게 넘실댔다. 300여 년 전 절대군주 표트르 대제가 세운 이 도시의 별칭은 ‘유럽으로 열린 창(窓)’이었다. 당시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낙후됐던 러시아는 네바 강을 거쳐 유입된 선진 문물을 적극 흡수한 결과 알렉산드르 푸시킨,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등 세계적 대문호를 배출한 문화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구글 지도를 통해 이 도시와 서울의 거리를 재 보면 6800㎞ 남짓으로 나온다.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경부고속도로(416㎞) 16개가 필요한 거리다. 언뜻 보면 한국과 관련 없어 보이는 곳이지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역사적 연결고리가 있다. 유럽으로 열렸던 이 도시의 창이 19세기 말부턴 한국으로도 열렸다는 점이다. 네바 강 하구 삼각주에 자리 잡은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이하 상트대)이 그 거점이었다. 1897년 당시 23세였던 조선인 통역관 김병옥은 이곳 동양학부에서 유럽권 최초의 공식적 한국어 강의를 시작했다.
 
현지에서 만난 세르게이 쿠르바노프 상트대 한국학과장은 “김병옥이 1897년부터 1917년까지 20년간 이곳에서 한국어 교사로 활동한 것은 공식 문서를 통해 확인된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국사 전공자인 그는 러시아 내 남아 있는 정부와 대학의 공식 문서, 신문 기사 등 1차 사료를 바탕으로 김병옥을 포함한 러시아 내 한국인들의 삶을 추적해 왔다. 유창한 한국말로 그는 설명을 이어갔다.
 
“1896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아관파천’(아관망명) 이후 러시아 내 한국에 대한 관심이 급속도로 커졌다. 러시아 정부는 니콜라이 2세 대관식 축하 명목으로 방문한 민영환 사절단에 한국어 교사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이듬해 5월 대한제국 공사관 업무가 개시됐을 때 다시 온 통역관 김병옥이 이곳에 남아 한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의 국적에 대해선 견해가 갈린다. 연해주에서 태어난 러시아계 한국인이라는 해석과 대한제국 국적을 가졌다는 의견이 반반이다. 확실한 건 그가 1899년에 52쪽짜리 한국어 문법 교재를 발간했고 1904년 마리아라는 이름의 러시아인과 결혼했다는 점이다. 1917년 이곳을 떠난 이후의 삶에 대해선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김병옥은 춘향전·토생전을 비롯한 한국 고전문학과 한국지리, 명성황후 시해사건 재판 기록 등 다양한 텍스트를 활용해 러시아 학생들을 가르쳤다. 단순히 언어를 가르치는 걸 넘어 한류의 원형이 되는 한국 문화 전반을 러시아에 소개한 것이다. 한국 고전문학 연구자인 아나스타시아 구리예바 상트대 교수는 “김병옥과 러시아 외교관들이 17~19세기 조선에 유통된 방대한 문서들을 수집했고 이를 중심으로 교육과 연구가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흥미로운 것은 김병옥이 가르친 춘향전이 당시 조선에서 통용되던 춘향전을 새롭게 각색한 판본이라는 점이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와 대학원생 제하나씨가 발표한 논문 ‘19세기 러시아에서 출판된 조선어독본 춘향전 내용 연구’에 따르면 당시 러시아판 춘향전은 교육용 교재로 부적절한 부분이 삭제된 판본이었다. 제씨는 “같은 시기 서울 지역에서 유통된 경판본 춘향전과 비교했더니 상당 부분 달랐다. 경판본에선 춘향이 변 사또의 수청을 거절하다 투옥됐을 때 월매가 찾아와 왜 수청을 거절했느냐고 춘향을 비난하는 대목이 나온다. 하지만 김병옥 판본에선 이 부분이 월매가 사또를 찾아가 춘향의 학식이 얼마나 풍부한데 수청을 들게 하느냐고 사또를 만류하는 장면으로 바뀐다. 표현에 있어서도 어려운 한자어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 써 준 부분이 눈에 띈다. 외국인을 위한 교과서 용도로 고쳐 썼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신문에 실린 고종 사진

러시아 신문에 실린 고종 사진

이범진 공사 인터뷰 기사에 실린 삽화

이범진 공사 인터뷰 기사에 실린 삽화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엔 한국 사람들이 상당수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쿠르바노프 교수가 국립도서관에서 찾은 신문 기사에 관련 보도가 나온다. 1904년 2월 15일에 발간된 페테르부르크 신문 3면에는 주러시아 초대 공사였던 이범진의 인터뷰 기사와 삽화가 나온다. 한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 인터뷰하면서 기자가 이 공사의 모습을 삽화로 그려 남겼다. 1907년 7월 9일 같은 신문 2면에는 ‘일본의 강요로 왕권을 포기한 대한제국 황제’라는 제목으로 고종의 사진이 실리기도 했다. 1911년 1월 22일자 신문에는 이범진 공사의 장례식을 보도한 기사도 실렸다. 그는 한일병합으로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자 항거하기 위해 자결했다. 쿠르바노프 교수는 “한인 공동체 이름으로 이 공사의 장례식에 화환을 보냈을 정도로 한국인이 많이 거주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14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이하 상트대) 한국학과가 있는 동양학부 건물을 찾았다. 1727~1730년 사이에 표트르 2세가 쓸 궁전 용도로 지어진 이 건물은 19세기 중반부터 대학 건물로 사용됐다. 120년 전 조선인 통역관 김병옥이 러시아인을 상대로 한국어 강의를 시작했던 것도 바로 이 건물에서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좁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닳고 닳은 돌계단이 강의실 앞까지 이어졌다. 매일 이 계단을 오르내리며 머나먼 타국에서 모국의 몰락을 지켜봐야 했던 김병옥은 1917년 이곳을 떠났다.
 
이후 상트대의 한국학 연구는 암흑기를 맞는다. 러시아 내에서 일본에 병합된 국가의 말과 글을 굳이 배울 필요가 있느냐는 회의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한국학은 일본어 전공자들이 배우는 부전공 또는 교양 과목 정도로 명맥을 이어나갔다. 다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광복 이후부터다. 일본어 전공자인 알렉산드르 홀로도비치가 1947년 상트대에서 한국어 교육을 맡으면서 한국학 연구는 활기를 띠었다. 독학으로 한국어를 배운 홀로도비치는  최초의 한·러 사전을 편찬했다. 1956년엔 고려가요·처용가·청산별곡·동동 등을 번역하고 이에 대한 해설을 담은 책 『한국고전시가문학』을 발간했다. 이후 제자인 아델라이다 트로체비치, 마리안나 니키티나 등 유능한 학자들이 연구를 이어받았다. 이들은 향가·삼국사기 등 한국의 고전문학을 연구하는 한편 번역에도 힘썼다. 장끼전·홍길동전·심청전·사씨남정기 등이 이들에 의해 러시아어로 번역됐다. 구운몽 등 인기 작품은 시중에 5만 부 이상 팔리기도 했다. 러시아 내 유일한 현역 한국 고전문학 연구자인 아나스타시아 구리예바 상트대 교수는 “원문 텍스트, 1차 사료를 읽고 특징을 분석해 언어와 문화를 배우는 학풍이 이 시기를 거치며 확립됐다”고 설명했다.
 
상트대는 지난 9월 시작된 학기부터 기존 동양언어 학부 내 동남아·한국어과, 극동국가 역사학과로 나뉘어 있던 한국 관련 강좌를 모두 모아 한국학과를 개설했다. 갈수록 중요성이 커지는 한·러 관계에 대비해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다. 교수 6명에 학생 수는 30여 명이다. 고려인인 최인나 교수가 전담하는 박경리의 토지 등 근현대 문학작품에 대한 강의도 개설됐다. 이 학과 3학년인 이바노바 이리나(22)는 “고교 시절 한국 대중문화에 관심 갖게 되면서 한국학을 전공으로 택했다. 현대차와 롯데 등 러시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서 일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같은 학년인 나시로바 엘비라(22)는 “최근 김애란 작가의 소설집 『침이 고인다』를 인상 깊게 읽었다. 작품을 통해 접하는 한국 문화에 매력을 느껴 전공으로 택했다”고 설명했다.
 
상트대는 한국학 교육 120주년을 맞아 지난 13~14일 ‘한국학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우윤근 주러시아 대사 내정자, 이규형 한러대화 조정위원장, 윤금진 한국국제교류재단 교류이사, 김현택 한국외대 부총장 등 한국 쪽 인사들과 니콜라이 크로파체프 상트대 총장 등 러시아 측 관계자 100여 명이 참석했다. 윤금진 국제교류재단 이사는 “유럽 문화권 최초로 한국어 교육을 시작한 상트대는 해외 한국학 연구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러시아)=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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