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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한’ 남성 호르몬이 머리 위 허전하게 한다

[김은기의 바이오토크] 탈모는 왜 생기나
서울 잠실 석촌호수 포장마차. 말싸움 도중 상대방이 머리를 쳤다. 가발이 벗겨졌다. 본인도 모르게 욱해서 칼로 찔렀다. 속칭 ‘가발 살인’이다. 채팅 상대방을 ‘대머리’라 불러 모욕죄로 기소됐다. ‘언어 살인’이다. 모두 살인적 탈모 스트레스가 원인이다.

남성 호르몬 테스토스테론
5a 환원효소에 의해 DHT로 변해
세포에 붙어 모발공장 문 닫게 해

모발 뽑히면 면역세포 달려와
성장 신호 보내는 게 정상인데
유전자와 스트레스 영향으로
세포끼리 소통 안 되면 문제 생겨

조선시대 내시 평균수명 70세
대머리 없고 왕보다 오래 살아

 
찰스 다윈(33세)의 벗어진 머리는 그 아들에게도 62% 유전된다.

찰스 다윈(33세)의 벗어진 머리는 그 아들에게도 62% 유전된다.

국내 성인 5명 중 1명이 탈모로 속병을 앓는다. 나이 탓이면 포기할 수 있다. 하지만 피부과를 찾는 탈모 환자 44%는 20~30대다. 결혼적령기에 앞머리가 휑해지는 남성 탈모, 윗머리가 엉성해지는 여성 탈모는 공포 그 자체다. 나이 들면 더해진다. 50대 남성 50%, 여성 25%가 탈모다. 모발은 사람을 젊게도, 늙게도 보이게 한다. 탈모에 세치·백모까지 더해지면 도통 살맛이 없어진다.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버텨 보지만 남 시선에 위축된다. 주위 친척 어르신이 대머리인 후손들은 장래 본인 모습에 잠을 설친다. 탈모가 유전일까. 발모 약을 먹으면 정력이 약해질까.
 
궁금한 만큼 미확인 민간요법도 다양하다. “검은 콩을 먹어라.” “물구나무서라.” 그 중 눈에 띄는 게 있다. “털은 뽑으면 더 난다.” 실제로 피부상처가 생기면 주위 줄기세포가 그곳을 보충한다. 하지만 직접 뽑아 본 사람들은 피부만 더 상한 경험이 많다. 왜 안 될까. 답이 나왔다. 2017년 5월 미 남부 캘리포니아 의대 팀은 유명학술지 ‘셀(Cell)’에 쥐 모발이 뽑히면 면역세포가 달려와 모발성장신호를 보낸다고 밝혔다. 그 결과 200개를 뽑았더니 더 넓은 범위에 1200개의 새로운 모발이 났다. 문제는 뽑는 방법이다. 직경 5㎜ 이하 범위로, 한 올 한 올 뽑아야만 한다. 그래야 모발성장신호가 주위에 전달된다. 핵심은 성장신호다. 세포 사이 소통이다. 이 소통이 흐트러지면 낭패다. 뒷머리는 무성한데 정수리는 훤해지게 된다. 모발 속으로 들어가 보자.
 
 
모발은 소통으로 성장
모발은 서로 소통한다. 각자가 아닌 몸 전체가 모발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지난 7월 캘리포니아대학에 따르면 막 태어난 쥐 모발은 배에서 시작해서 등으로 신호를 따라 물결처럼 퍼져 나간다. 완성된 온몸 털은 이제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다.
 
모발은 자라고 빠지기를 반복한다. 성장(3년), 퇴행(3주), 휴지(3달)를 일생 동안 반복한다. 사람 머리카락이 약 12만 개다. 이 숫자면 하루 100개 빠지는 건 정상이다. 어떻게 이 주기가 유지될까. 답은 피부 줄기세포와의 소통이다.
 
피부 줄기세포는 모발 옆구리에 붙어 있다. 모발은 생긴 모습이 대파를 닮았다. 뿌리는 세포들이 둘러싸고 있다. 여기서 모발(케라틴)을 만들어서 위로 계속 보낸다. 세포 중에는 검은 색소(멜라닌)를 만드는 놈들도 섞여 있다. 이놈들이 비실비실해지면 세치가, 죽어 나자빠지면 백모가 생긴다. 모발세포는 신호(호르몬, 사이토카인)로 자란다. 날 곳, 안 날 곳이 신호로 정해진다. 머리는 많이, 얼굴은 조금 난다. 턱수염은 남성이, 머리칼은 여성이 많다. 어릴 때 잘 유지되던 모발 사이 소통은 나이·유전자·스트레스에 따라 깨진다. 덕분에 앞머리가, 정수리가 훤해진다. 이른바 남성형 탈모의 시작이다. 남성형 탈모는 기원전 5000년에도 있었다.
 
 
대머리와 정력은 큰 상관 없어
히포크라테스·소크라테스·아리스토텔레스·카이사르는 모두 대머리다. 히포크라테스는 “내시는 대머리가 없다”고 했다. 의사다운 날카로운 관찰이다. 내시는 고환에서 만드는 테스토스테론이 없다. 남성호르몬 대표인 테스토스테론이 효소(5a 환원효소)에 의해 DHT(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로 변한다. 이놈이 탈모주범이다. DHT가 모발세포벽 수용체에 달라붙어 모발공장 문을 닫게 한다. 이마부터 시작되는 ‘M’자 형태 남성 탈모가 시작된다. 전체 테스토스테론의 5%만 DHT로 바뀐다. 따라서 대머리가 정력과는 큰 상관이 없다. 오히려 탈모 환자 중에는 낮은 테스토스테론을 가진 사람도 많다. 테스토스테론은 몸 전체에 큰 영향을 준다.
 
남성호르몬(테스토스테론)은 수명을 좌우한다. 조선시대 양반 평균수명이 53세다. 왕은 47세. 반면 내시는 무려 70세다. 테스토스테론은 성욕, 탈모뿐 아니라 수명, 건강과도 직결된다. 2016년 미 역학 학회지는 특정탈모 형태(앞과 정수리 동시탈모)면 전립선암이 많아진다고 보고했다. 탈모가 머리카락만 빠지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첨단과학이 그 깊은 속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2017년 2월 영국 에든버러대학 연구에 따르면 탈모 관련 유전자는 287개나 된다. 가장 중요한 ‘DHT 수용체’ 유전자는 X 염색체에 있다. 여성(XX 염색체 보유)은 하지만 테스토스테론 영향이 작아 남성형 탈모가 적다. 반면 아버지가 반짝이는 머리면 아들도 그리 될 가능성이 62.3%다. 남성호르몬 유전자보다 더 강력한 탈모 원인이 최근 밝혀졌다. 면역세포다. 지난 5월 저명학술지 셀에 따르면 피부에 면역세포(T 조절세포)가 없으면 모발성장이 전혀 안 된다. 게다가 이놈이 잘못되면 자기 털을 적으로 간주, 총질한다. 원형탈모가 자가면역 질환이란 이야기다. 한마디로 탈모는 생각보다 복잡하게 유전자가 얽혀 있다. 분명한 건 유전된다는 점이다. 적자생존 진화론을 창시한 다윈은 이미 30대에 머리가 훤해졌다. 대머리가 적자생존에 도움 될까.
 
 
남성형 탈모는 노숙함이 장점
국내 미혼여성 82%는 벗어진 남성을 싫어한다. 여성이 선택하지 않으면 그 유전자는 사라진다. 그렇게 불리하다면 왜 대머리는 사라지지 않았을까. 인간에게 털은 필수가 아니다. 인간조상은 하루 수십㎞ 동물을 추적했다. 뜨거운 아프리카 평원에서 장기간 걸을 때 발생하는 체열을 식혀야 했다. 맨살이라면 땀이 잘 날아가 시원하게 한다. 이런 이유로 몸·얼굴 털은 없어졌지만 필요 부분 털은 남았다. 자외선 막는 모발, 흐르는 땀 막는 눈썹, 마찰 막는 겨드랑이 모발은 남도록 진화했다. 그런데 일부 남성에게 변종이 생겨서 남성탈모가 생겼다. 이런 변종이 생겨도 이득이 없으면 사라져야 한다. 대머리는 진화에서 무슨 강점이 있는 걸까.
 
율 브리너, 숀 코네리, 브루스 윌리스, 제이슨 스타뎀, 드웨인 존슨 모두 할리우드 톱스타들이다. 모두 반짝이는 머리를 가지고 있다. 유전적 강점이 있을까. 침팬지는 어른이 되면 털이 가늘어지고 고릴라도 나이 들면서 사람처럼 앞머리가 훤해진다. 한마디로 나이든 티, 즉 노숙한 티가 난다. 노숙함이 유전적 강점일까. 플로리다대학 연구에 따르면 벗어진 머리일수록 성숙, 경험, 안정, 사교성이 높게 평가되었다. 숀 코네리는 강해 보이되 공격적으로는 안 보인다. 경제력은 남성선택의 1순위 조건이다. ‘대머리는 거지가 없다’는 속설이 있다. 실제로 국내 피부과를 찾은 남성탈모(대머리)환자들은 고학력, 고수입자가 상대적으로 많다. 민머리에게도 반짝이는 장점이 있다는 주장이다. 색맹, 왼손잡이는 전체 인구의 8%밖에 안 되지만 진화과정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색맹은 위장술을 쓰는 동물사냥에 유리하다. 왼손잡이는 오른손과의 격투에서 불의의 일격을 날린다. 남성탈모도 여성에게, 물론 모든 여성에게는 아니지만, 어필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는 이야기다. 노숙함이다.
 
 
민간요법은 치료기간만 놓칠 수 있어
영화배우 브루스 윌리스의 벗어진 머리. 강함과 노숙함의 상징이다. [AP=연합뉴스]

영화배우 브루스 윌리스의 벗어진 머리. 강함과 노숙함의 상징이다. [AP=연합뉴스]

노숙함이 대머리 장점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런 장점 때문에 일부러 브루스 윌리스의 대머리를 닮고 싶은 남성은 거의 없다. 우선 젊어 보이고 싶다. 그게 솔직한 심정이다. 탈모에 대응하는 방법은 약, 가발, 모발이식, 과감히 노출하기다. 탈모원인은 나이, 유전자, 건강, 스트레스다. 나이는 대비책이 없다. 건강, 스트레스 관리는 개인 몫이다.
 
약을 보자. 불확실한 민간요법은 오히려 치료시기를 놓칠 수 있다. 미 식품안정청(FDA) 인증 2가지 발모제가 있다. DHT 생산효소억제제(프로페시아)는 남성호르몬 작용제다. 정력 감소가 걱정되지만 임상결과는 우려할 수준이 아니다. ‘미녹시딜’은 모세혈관 확장 도포제다. 이런 약으로 대응하다가 심해지면 가발, 모발이식을 고려한다. 남은 방법은 과감히 내보이기다. 율 브리너는 영화 ‘왕과 나(1956, 미국)’에서 반짝이는 머리를 강렬히 각인시켰다. 배우로서 약점인 대머리를 승화시킨 셈이다. 어떤 방법으로 탈모에 대응할지는 순전히 개인 선택사항이다.
 
기원전 3500년 발모제는 꿀, 뱀, 악어기름으로 만들었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 들어간다. 반드시 태양신에게 기도해야 한다. 신만이 치료할 만큼 탈모치료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이제 첨단과학이 탈모에 도전하고 있다. 메마른 사막에 모발이 풍성하게 자라 ‘대머리 총각’의 한을 풀어 주기 바란다. 더불어 모발 뿌리 속에 숨어 있는 장수비결도 함께 캐내기 바란다.
 
 
김은기 인하대 교수 ekkim@inha.ac.kr
서울대 졸업. 미국 조지아공대 공학박사. 한국생물공학회장, 피부소재 국가연구실장(NRL), 창의재단 바이오 문화사업단장 역임. 인하대 바이오융합연구소(www.biocnc.com)를 통해 바이오테크놀로지(BT)를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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