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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중의 사진, 그리고 거짓말] 회화주의 사진의 무한 상상력

예술성 시비 벗기 위해 회화의 문법 차용 … 솔라리제이션·다중노출 등 다양한 특수효과

[사진1] 보들레르, 1863, 카르자

[사진1] 보들레르, 1863, 카르자

'악의 꽃’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천재 시인 보들레르(1821~1867)는 사진을 혹평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현대 대중과 사진(1859)’이라는 글에서 산업의 결과물을 예술작품과 혼동한다며 “사진은 3류 화가들의 피난처”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는 초상 사진을 즐겼습니다. 당대 최고의 초상사진가인 나다르(1820~1910)와 에티엔 카르자(1828~1906)의 사진을 좋아했습니다.
 
[사진1]은 카르자가 찍은 보들레르의 초상입니다. 연촛점의 윤곽과 명암의 대비, 형형한 눈빛이 ‘저주받은 천재시인’의 이미지를 멋드러지게 표현합니다. 카르자의 대표작으로 초상사진의 백미로 꼽힙니다. 보들레르는 카르자가 인물의 정신과 내면을 읽고 이를 예술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리라 짐작됩니다.
 
사진은 3류 화가들의 피난처?
[사진2] 앵그르의 바이올린, 1924, 만 레이

[사진2] 앵그르의 바이올린, 1924, 만 레이

훗날 독일의 비평가 발터 벤야민(1892~1940)은 ‘기술 복제시대의 예술 작품’ 에서 보들레르의 사진관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혁명적 복제수단인 사진술이 등장하게 되자 예술은 위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사진에 대한 보들레르의 반감은 산업사회의 발전에 대한 것이자, 동시에 사진의 사실주의적 모사에 관한 반론이다.”
 
보들레르의 이중적인 사진관은 기술진보 시대에서 물질이 예술의 영역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는 철학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보들레르뿐만 아니라 당시의 예술가들은 사진이라는 새로운 예술 형식이 종래의 회화와 문학을 압살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파워엘리트들의 반감은 사진이 예술로 진입하는 데 걸림돌이 됐습니다. 사진은 끊임없이 예술성 시비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에 유행했던 픽토리얼리즘(Pictorialism)은 이러한 시대 분위기 속에서 탄생했습니다. ‘Pictorial~’은 ‘회화적’이라는 뜻입니다. 사진가들은 예술성 시비에서 벗어나기 위해 회화적인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그림을 흉내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스토리텔링을 위해 극적인 연출을 하거나 촬영과 인화 과정에서 인위적인 조작을 가해 사진을 그림처럼 보이게 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뽀샵질’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또 사진에 덧칠을 하거나 그림을 그려 넣기도 했습니다.
 
화가이자 사진가인 만 레이(Man Ray, 1890~1977)는 ‘솔라리제이션(solarization)’ 사진으로 유명합니다. 솔라리제이션은 촬영이나 인화 과정에서 필름을 빛에 노출시키면 음화(negative)와 양화(positive)가 뒤섞여 나타나고 윤곽선이 도드라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회화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사진의 특수효과입니다. 그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딴 ‘레이요그램(rayogram)’ 을 창안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인화지에 피사체를 올려놓고 직접 빛을 비추어 사진을 만드는 방식입니다. 또 화가 출신답게 사진에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었습니다.
 
[사진2]는 그의 대표작인 ‘앵그르의 바이올린, 1924’입니다. 여성의 누드사진에 바이올린을 상징하는 ‘f홀’을 그려 넣은 것입니다. 누드모델이자 연인인 키키의 뒷태에서 바이올린을 떠올린 것입니다. 놀라운 상상력입니다. 이 작품으로 만 레이는 ‘사진을 그리는 사진가’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사진과 회화의 경계 이미 사라져
[사진3] 벚꽃, 2016, 이성희

[사진3] 벚꽃, 2016, 이성희

재미있는 것은 이 시기에 탄생한 사진의 특수효과는 실수로 얻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솔라리제이션은 촬영 도중에 카메라 뚜껑이 열리거나, 암실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필름이 빛에 노출돼 나타나는 현상에서 시작됐습니다. 또 ‘다중노출(multiple exposure)’은 필름을 잘못 끼우거나 카메라 결함으로 필름이 제대로 감기지 않은 데서 비롯됐습니다. 다중노출은 한 장의 필름에 여러 개의 이미지를 겹쳐 찍는 것을 뜻합니다. 환상적이고 회화적인 분위기의 사진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영화의 ‘오버랩’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솔라리제이션이나 다중노출 등 특수효과는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꾸준한 훈련과 경험이 있어야 사전 시각화가 가능합니다.
 
사진가 이성희는 풍경을 다중노출로 촬영해 몽환적인 분위기를 냅니다. [사진3]은 벚꽃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며 찍은 것입니다. 원을 그리듯 프레임을 바꿔가며 겹쳐 찍었습니다. 동그란 벚꽃이 알의 형상을 만듭니다. 원이 만들어내는 울림이 있습니다. 봄의 추상, 생명의 메타포입니다.
 
픽토리얼리즘은 사진 고유의 특성과 문법을 무시하고 회화를 흉내 낸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진과 회화의 경계가 사라진 시대입니다. 다양한 형식으로 작가의 내면을 표현하는 현대예술에서 사진과 회화의 차이를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회화주의 사진의 다양한 표현기법이 현대예술의 탄생에 밑거름이 된 것은 분명합니다.
 
※ 필자는 중앙일보 사진부장을 역임했다. 현재 아주특별한사진교실의 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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