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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대박친 브랜드···'도깨비' 저승사자 옷 만든 그사람

한국엔 매장 0 유럽에 50곳…'어둠의 디자이너' 유럽 성공기
 
영화 '미이라' 개봉에 맞춰 유니버셜 스튜디오와 협업한 강동준 디자이너. 장진영 기자

영화 '미이라' 개봉에 맞춰 유니버셜 스튜디오와 협업한 강동준 디자이너. 장진영 기자

선배 디자이너들은 한국에서 기반을 탄탄히 다진 후에야 해외에 진출했다. 1970년대 말 파리컬렉션에 첫 진출한 진태옥 디자이너부터 박항치·이신우·박춘무·심상보·이상봉을 거쳐 정구호와 강진영, 앤디앤뎁(김석원·윤원정), 그리고 송자인 등이 그랬다. 두터운 한국의 매니어층을 기반으로 힘을 얻어 해외로 눈을 돌렸다. 패션의 변방 아시아의 작은 나라 출신 디자이너로서 그게 자연스러웠다. 옷을 해외에 판매하는 것보다 컬렉션을 통해 ‘한국 디자이너’도 있다는 걸 알리는 게 더 중요한 사명이었다. 

해외진출 8년차 패션 디자이너 강동준
드라마 '도깨비' 저승사자 옷 만든 그 사람
이탈리아·영국 등 해외 편집숍 50여 곳 입점
유니버셜스튜디오과 협업하기도
한국선 출혈 경쟁과 MD의 매출 압박에 염증
'내 옷 좋아하는 시장' 찾아 해외에 집중
'하고 후회하자' 모토로 바닥부터 다시 시작

하지만 그는 달랐다. “살기 위해” 해외로 나갔다. 미국 파슨스 졸업 후 2008년 서울컬렉션에 데뷔하고 신세계·현대·롯데·갤러리아 등 주요 백화점에 모두 매장을 낼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2010년 갑자기 한국에서의 활동을 접고 해외로 뛰쳐나갔다. 자신의 영문 이름 ‘KANG.D’를 거꾸로 배열해 이름 지은 브랜드 ‘디그낙(D.GNAK)’을 전개하고 하고 있는 패션 디자이너 강동준(39) 얘기다.  
10월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디그낙 본사에서 만난 강동준 디자이너. 장진영 기자

10월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디그낙 본사에서 만난 강동준 디자이너. 장진영 기자

강동준 디자이너 해외 진출은 숫자만 놓고 봤을 때 일단 ‘성공적’이다. 이탈리아의 유명 편집매장 ‘안토니올리’를 비롯해 미국·캐나다·영국·프랑스·일본 등 각국의 50여 개의 편집매장이 그의 옷을 판매하고 있다. 그가 속한 영국 런던의 디자이너 쇼룸(디자이너와 바이어를 연결하는 중개회사) ‘투머로우’의 남성복 부문에서 ‘마르니’ ‘오에이엠씨(OAMC)’에 이어 세번째로 많은 매출을 올리고 있다. 

2016년엔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영화 ‘미이라’ 홍보 프로젝트 협업 디자이너로 뽑혀 2017년 6월 런던패션위크 당시 협업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당시 유니버셜 스튜디오는 디자이너 6명을 골랐는데, 아시아인으로는 유일했다. 
2017년 6월 런던패션위크에서 선보인 디그낙 컬렉션. [사진 디그낙]

2017년 6월 런던패션위크에서 선보인 디그낙 컬렉션. [사진 디그낙]

이런 해외에서의 활동에 비해 그동안 한국에서는 그의 옷을 쉽게 만날 수 없었다. ‘무신사’ ‘W컨셉트’ 등 디자이너 브랜드를 취급하는 일부 온라인 몰에서 판매하긴 하지만 '디그낙'이 아니라 국내 전용 캐주얼라인 ‘디 by 디그낙’ 뿐이다. 해외와 국내의 격차, 이유가 뭘까. 10월 13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에 있는 디그낙 사무실에서 직접 물었다.  
국내에서 온라인으로만 판매하는 이유는 뭔가.
내 활동 기반은 해외, 정확하게는 유럽이다. 친한 정구호 디자이너가 2015년 서울패션위크 총감독이 되면서 한국에서 컬렉션을 다시 했지만, 여전히 비즈니스 주무대는 유럽이다. 국내 온라인몰에서 옷을 파는 건 팬 보답 차원이다. 꽤 많은 사람들이 팬을 자처하며 소셜미디어(SNS)나 이메일을 통해 '한국에서도 판매해달라'는 의견을 보내왔다. 마침 서울패션위크에 서게 되면서 국내용 브랜드를 만들었다.  
유럽을 기반으로 하는 이유는.
그 사람들이 내 옷을 좋아한다. 그게 전부다.  
한국에서도 디 by 디그낙이 잘 되고 있는데.
아직 잘 된다고 말할 수준은 아니다. 손익분기점을 겨우 넘긴 수준이다. 아직 멀었다. 디그낙의 DNA를 한국 팬에게 보여준다는 생각으로 가볍게만든 것이라 사실 별 기대 없이 시작했다. 얼마나 팔리는 지 신경도 안 썼다. 그런데 2016년 드라마 ‘도깨비’에서 저승사자로 나온 이동욱씨가 스웨트셔츠를 입고 나오면서 갑자기 주문이 폭주하기 시작했고 여러 온라인몰에서 입점 제의가 쏟아졌다. 그 아이템을 1만 장이나 판 덕분에 따뜻한 겨울을 보냈다. 하하.  
드라마 '도깨비'에서 저승사자 역의 이동욱이 입고 나온 디 by 디그낙의 스웨트셔츠. [사진 방송 캡처]

드라마 '도깨비'에서 저승사자 역의 이동욱이 입고 나온 디 by 디그낙의 스웨트셔츠. [사진 방송 캡처]

2008년 서울컬렉션 데뷔 후 인기를 얻어 국내에도 꽤 많은 매장이 있었는데 굳이 활동을 접은 이유는.
이름만 알려졌지 사실 굉장히 힘들었다. 내 브랜드를 만든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옷’을 만들기위해서다. 그런데 백화점에 단독 매장이 생기고 여러 편집매장과 온라인몰에 입점하다보니 ‘팔아야 하는 옷’을 만들어야 하더라. 난 그 옷들이 마음에 안 들었고 판매도 생각만큼 안 됐다.  
하고 싶은 옷과 팔아야 하는 옷 사이의 갈등은 모든 브랜드의 고민 아닌가.
그렇긴하다. 하지만 난 처음부터 목적이 분명했다. ‘내가 좋아하는 옷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남들 눈엔 좋은 기회였을지 몰라도 그걸 못하니 즐겁지가 않았다. 디자이너간 제 살 깎아먹기 경쟁에다 백화점 MD의 매출 압박을 받다보니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나’라는 본질적인 고민을 하게 됐다.  
제 살 깎아먹기식 경쟁이라니.
우리가 8만8000원짜리 티셔츠를 내놓으면 다음날 바로 앞 매장에서 비슷한 티셔츠를 만들어 가격을 6만8000원으로 내려 팔았다. 가격경쟁을 하지 않을 수 없다보니 생산 원가를 맞출 수 없을 정도로 가격을 내린 적도 많다. 백화점 MD들도 거들었다. ‘앞 매장에서는 이런 소재의 옷이 잘 팔리던데 디그낙에는 없네요’라며 은근히 압박한다. 그 말을 듣고 내놓은 상품의 반응이 좋으면 다행이지만 반응이 없어도 MD들은 책임지지 않는다. 재고 부담은 내가 다 떠안아야 했다.  
강 디자이너가 유니버셜 스튜디오와의 협업으로 만든 2018 봄여름 컬렉션 의상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2017년 6월에 열린 런던패션위크의 디그낙 컬렉션 쇼에서도 소개했다. 장진영 기자

강 디자이너가 유니버셜 스튜디오와의 협업으로 만든 2018 봄여름 컬렉션 의상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2017년 6월에 열린 런던패션위크의 디그낙 컬렉션 쇼에서도 소개했다. 장진영 기자

2010 봄여름 디그낙 컬렉션 쇼 현장. 비오는 거리를 연출하기 위해 바닥에 물을 채운 런웨이 무대를 선보였다. [사진 디그낙]

2010 봄여름 디그낙 컬렉션 쇼 현장. 비오는 거리를 연출하기 위해 바닥에 물을 채운 런웨이 무대를 선보였다. [사진 디그낙]

해외에서는 그야말로 바닥부터 시작한 셈인데 두렵진 않았나.
내 삶의 모토가 ‘하고 후회하자’다. 무엇을 하든 후회는 남는다. 걱정하고 못하고 후회하느니 차라리 도전해보자란 생각이 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두렵지 않다. 오히려 일을 한창 진행 중일 때 두려움이 오더라. 이 방향이 맞는 건지, 잘 하고 있는 건지.  
인지도나 도움없이 해외에 진출했으니 많이 어려웠겠다.
말도 못한다. 지금은 젊은 디자이너들도 해외 시장을 주 무대로 많이들 활동하지만 내가 해외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때만해도 상황이 달랐다. 모든 것을 해외 매출에만 거는 디자이너는 없었다. ‘맨 땅에 해딩’이란 말이 딱 맞을 정도로 직접 몸으로 부딪히고 실패를 경험한 뒤에야 하나씩 방법을 알아갔다. 첫 해외 페어(수주박람회)는 여성복 페어였다. 프랑스 파리의 ‘후즈 넥스트’였는데 전시장에 가서 옷을 다 걸고 보니 내 옷만 남성복이더라. 스태프가 와서 ‘왜 여성복 페어에 왔냐’더라. 누가 알았나. 그가 ‘미국에서 하는 남성복 페어인 캡슐쇼에 나가는 게 좋겠다’고 알려줬다.  
여성복 페어에 나간 남성복이라니, 돈만 쓰고 망했겠다.
아니다. 놀랍게도 꽤 많은 양의 주문을 받았다. 독일의 큰 신발 유통업체가 많은 물량을 주문했다. 브라질의 편집매장에서는 옷을 사갔다. 첫 페어에서 주문받기가 쉽지 않은데 운이 좋았다. 그 당시 기분좋은 기억이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해외 시장을 개척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됐다.  
강동준 실장이 스스로 '내가 원하는 옷이 나왔다'고 평하는 2012년 FW 컬렉션. '찰리채플린'을 주제로 한 남성복을 선보였다. [사진 디그낙]

강동준 실장이 스스로 '내가 원하는 옷이 나왔다'고 평하는 2012년 FW 컬렉션. '찰리채플린'을 주제로 한 남성복을 선보였다. [사진 디그낙]

이후 어떻게 해외 시장에 안착했나.
페어를 통해서다. 오더를 하나도 못 받은 때도 있었지만 쇼룸 디렉터나 해외 컬렉션 관계자 눈에 드는 기회가 됐다. 런던패션위크 오프쇼(메인행사장 외의 장소에서 진행하는 쇼) 캐스팅디렉터의 제안으로 2010년 런던패션위크 오프쇼도 열였다. 그때 이탈리아 쇼룸 '아비스타'에 들어간 후 안정적으로 판매할 수 있었다. 몇년 후 영국 투모로우 쇼룸으로 옮겼다. 
한국 시장으로 돌아올 생각은 안 해봤나.
해외에서 패션 비즈니스를 하는 게 좋다. 한국에선 만들고 싶은 옷을 만들지 못했다. 내 생애 첫 컬렉션이었던 2008 서울컬렉션 때 관계자들로부터 ‘블랙 일색이라며 쇼에 서려면 컬러를 넣으라’는 주문을 받고 고민하다 컬러풀한 가방, 머플러 등 액세사리를 만들어 함께 내보냈다. 지금도 그 컬렉션은 쳐다보기도 싫을 정도로 마음에 안 든다. 이후에도 그런 상황은 반복됐다. 반면 해외 시장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옷만 만들 수 있다.   
해외에서 그게 가능한 이유가 뭘까, 
시장의 차이다. 내 옷을 좋아하는 시장이라는 얘기다. 당시 한국은 그런 시장이 아니었던거고. 게다가 유럽은 한국처럼 생산해놓고 나서 파는 방식이 아니라 샘플만 만들어서 주문을 받은 후에 그 양만큼만 생산에 들어가는 '오더 베이스' 방식 아닌가. 큰 사업비 없이도 브랜드를 전개할 수 있어 부담이 없었다. 내 옷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옷을 만드니 점점 신이 나서 옷도 잘 나왔다. 해외 바이어나 매체도 좋은 평가를 해줬다. 투모로우 쇼룸이 왜 나를 캐스팅했는가 봤더니 '독특한 남성복 브랜드'라고 하더라.  =
한국을 떠난 2010년과 2017년의 한국 패션 시장은 어떻게 달라졌나.
소비자의 취향이 다양해졌다. 2010년만해도 뭐가 유행이다 싶으면 다들 그것만 입었다. 주류가 아닌 디자인은 아예 팔리지 않았다. '다크웨어'를 표방하는 내 옷은 당시 니즈가 거의 없었다. 지금도 물론 주류는 아니지만 우리만의 색을 좋아하고 찾는 소비자가 꽤 많이 생겼다.   
앞으로의 계획은.
국내 비즈니스를 조금씩 확장할 생각이다. 우선 본사 건물 2층에 쇼룸을 갖춰 한국 고객이 직접 디그낙 옷을 볼 수 있게 할 거다. 쇼룸을 통해 반응을 살핀 후 한국 시장에서도 내 옷에 대한 니즈를 확인하면 그때 매장 등을 낼 수도 있다.  
해외 진출을 꿈꾸는 디자이너들에게 조언해준다면.
해외 페어나 전시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특히 최근엔 정부가 신진 디자이너를 위한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니 이를 활용하면 좋을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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