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고대훈의 시시각각] 박근혜의 옥중투쟁

고대훈 논설위원

고대훈 논설위원

박근혜 전 대통령(이하 존칭 생략)이 16일 법정에서 읽은 소회를 듣고는 조금 놀랐다. 서울구치소 독방에서 직접 쓴 글이라고 한다. 글은 박근혜 탄핵의 단초였다. JTBC가 지난해 10월 24일 대통령 연설문의 사전 유출과 최순실씨에 의한 수정·가필 사실을 폭로하고, 박근혜의 대국민 사과가 나오면서 불붙은 게 국정 농단 사건이다. 최순실에게 연설문을 봐달라고 했던 사람이기에 그의 필력과 사고력을 의심해 왔다. 그를 다시 보게 됐다. 이번 글은 830자 분량으로 길지 않지만 구성과 내용에서 단단했다. 배신과 고통-결백-무력감-재판부 불신-진실 확신-책임 통감으로 이어지는 논리는 자기 합리화이긴 해도 꽤 정연했다. 글 때문에 망한 그가 이제 글로 국민에게 호소하는 장면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정치적 구속’에 저항 모드 전환
재판 거부는 석방 염두 둔 포석

긴 침묵을 깬 그의 글은 ‘옥중 투쟁’을 알리는 출사표와 같았다. 그는 자신에 대한 재구속을 “법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이라고 규정하고 ‘재판 보이콧’을 선언했다. “오직 헌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을 할 것이라는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며 재판부를 비토했다. “재판부의 뜻에 맡기겠다”는 표현은 유죄든 무죄든, 죽이든 살리든 맘대로 해보라는 무언의 저항이다. 정치재판이라는 숙명적 한계를 절감한 듯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의 투쟁 모드 전환은 반격의 포석이다. 변호인단 철수와 재판 거부에는 그런 복선이 깔려 있다. “‘진실을 밝히려는 진정성 없는 재판에 기대할 게 없다. 이건 더 이상 아니다’고 하셨다.” 그의 변호인단 중 한 명은 전했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세월호 관련 캐비닛 문건을 흔든 뒤 법원의 추가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박근혜는 ‘정치적 구속’에 저항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재판 절차의 거부는 무서운 무기가 될 수 있다. 자신의 변호인단을 철수시켜 방어권을 포기한 그가 국선 변호인에게서 도움을 얻을 가능성은 없다. 법정에도 출석하지 않고 궐석(闕席)재판을 각오한 게 확실하다. 피고인 박근혜가 없는 상태에서 혐의들이 인정되고 재판은 일사천리로 끝날 수 있다. 변호인단에게서 이런 예상 시나리오를 듣고는 “20년이든 30년이든 중형을 때려도 개의치 않는다”고 했단다.
 
실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궐석재판에 법률상 하자는 없지만 국제적 망신이자 코미디가 될 것”이라고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설명한다. 사건 내용조차 파악이 안 된 국선 변호인, 검찰의 일방적인 독주, 판사의 성급한 유죄 단정이 현실화된다면 판결 불복 사태가 벌어질 게 뻔하다. 이를 피하기 위한 강제 구인도 여의치 않다. 독방에서 버티는 고령의 전직 여성 대통령이 끌려 나오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개인의 인권과 나라의 국격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세기의 재판’이라는 역사적 현장에서 당사자의 증언조차 없이 진술조서만 갖고 판결한다면 그건 도박에 가깝다. 정치보복의 희생양이라는 인상만 부각시켜 국내외의 비난을 살 것이다. 재판부가 그런 모험을 감당하기엔 벅차다. 이런 판세를 박근혜는 간파하고 있다.
 
박근혜는 더 멀리 내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불출석과 증언 거부로 차질을 빚게 된 1심 선고는 2차 구속기한이 끝나는 내년 4월 16일까지도 마무리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럴 경우 구금을 또 연장하기는 법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사실상 불가능하다. 자유의 몸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의 옥중투쟁은 고도의 전략이다. 풀어줄 수도, 가둬둘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뜨리는 승부수다. 그런 ‘박근혜 리스크’를 문재인 정부와 재판부에 던졌다. ‘정치인 박근혜는 아직 죽지 않았다’는 말이 실감난다.
 
고대훈 논설위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