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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로봇에도 마음, 있다고 생각하면 보인다

신과 개와 인간의 마음 표지

신과 개와 인간의 마음 표지

신과 개와 인간의 마음
대니얼 웨그너·커트 그레이 지음

마음이 없는 존재로 여겨질 때
무시하거나 파괴할 수 있고
사고팔수 있는 소유물로 전락

최호영 옮김, 추수밭
 
휴일에 공원에 나가보면 풀밭에 뛰어노는 개들의 다양한 표정을 볼 수 있다. 그 곳의 개들은 바람을 쐬고 풀냄새를 맡으며 한껏 신바람이 나 있는 듯하다. 그럼 문득 궁금해진다. 개들에게도 마음이 있을까? 고양이, 침팬지, 돌고래, 코끼리 등은 어떨까?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태아, 오랜 기간 식물인간 상태로 있는 사람은 또 어떨까? 이에 대해 학자들 사이에서도 “명쾌한 해답은 눈에 띄지 않는다.” 한때 심리학자들은 ‘동물은 생각하는가?’를 놓고 두 진영으로 나뉘었다고 한다. 당시에 한 그룹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입장이었고, 나머지 학자들은 “잠깐만, 내 개는 어떻지?”라며 모호한 입장을 취했다.
 
어쨌든 마음의 존재는 중요하다. 마음이 있는 존재에게는 존중, 책임, 도덕적 지위 등이 주어지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것’들은 무시하거나 파괴할 수 있는 대상 혹은 사고팔 수 있는 소유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마음의 정체를 따지기 위해 동물의 마음부터 기계의 마음, 집단의 마음 등 “중요하면서도 또한 놀라울 정도로 그 해석이 모호”한 마음의 세계로 깊숙이 파고들어 간다.
 
중세에는 돼지나 닭 등이 재판을 받기도 했다. 당시 불의의 사건에 대해 비난할 대상이 필요할 때 쓰인 방식이다. 외로움은 우리를 부추겨 기계에도 마음이 있다고 상상하게 한다.

중세에는 돼지나 닭 등이 재판을 받기도 했다. 당시 불의의 사건에 대해 비난할 대상이 필요할 때 쓰인 방식이다. 외로움은 우리를 부추겨 기계에도 마음이 있다고 상상하게 한다.

동물이 마음을 가졌는지 헤아리기는 매우 어렵다.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마음이 있다’고 여기는 기준도 모호하다. 동물이 움직이는 속도나 귀여운지 여부가 영향을 끼친다. 『마음의 진화』를 쓴 철학자 대니얼 데닛은, 사람 자신과 동일한 수준에서 사물이 움직여야 비로소 그 사물이 감정과 의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잠자리나 바퀴벌레보다 개나 고양이 같이 인간과 비슷한 속도로 움직이는 동물에게만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설령 인간과 비슷한 속도로 움직이더라도 충분히 귀엽지 않거나, 우리가 ‘먹는’ 동물들이라면,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공장형 축산업 현장은 “동물의 마음을 무시하고 있는” 단적인 사례다. 이런 사례를 들며 저자들은 “우리가 마음을 지각하는 것은 이성보다는 감성의 문제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동물과 기계, 신은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우리는 인간 중심으로만 세상을 보고 해석하는 것은 아닐까. [사진 추수밭]

동물과 기계, 신은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우리는 인간 중심으로만 세상을 보고 해석하는 것은 아닐까. [사진 추수밭]

사회적 관계에서 수동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의 생각과 감정도 종종 무심한 대우를 받는다. 의사가 “환자를 경험하는 인간 존재라기보다 ‘고장난 기계’로 취급”하는 경우다. 우리와 그리 가깝지 않은 노숙자의 마음도 ‘없는’ 것으로 무시되곤 한다. 성적 대상이 된 사람은 “사람 자체로 보이지 않고 (욕구를 채워줄) 수단으로만 보인다.” 여성을 ‘대상화’한다는 것은 마음이 없는 존재로 대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장 극단적인 마음 부정의 형태는 ‘집단 학살’이다.
 
책은 다양하고 세세한 연구 사례를 들어 궁극적으로 “(신의 마음을 포함해) 마음은 지각의 문제”라고 말한다. 굉장히 완곡하게 주장했지만, 『호모 데우스』에서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편 진화론적인 주장과 겹치는 듯하다. 하라리는 “사피엔스(인류)가 돼지와 달리 영혼을 지니고 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고 썼다.
 
이 책에서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만물을 자기 중심으로만 보는” 우리 인간의 초상이다. 저자들은 “세계에 대한 (인류의) 지식이 편향될 수 있으며 특히 자기에 대한 지식이 가장 왜곡되었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영원히 하나의 관점”일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자기의 마음(즉 경험과 생각)에 갇혀 있는 한, 세계를 알고 참된 깨달음을 얻기 어려울 것이라는 경고다.
 
이은주 기자 jul 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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