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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으로] 난방하고 미세먼지 걸러주고, 집이 알아서 다 하네

인공지능 만나 진화하는 아파트
 
퇴근 후 차를 타고 아파트 단지에 진입하자 집 난방이 가동된다. 엘리베이터를 타니 내가 사는 층에서 문이 저절로 열린다. 굳이 층수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된다. 현관에 들어서며 “신나는 음악 틀어줘”라고 말하자 ‘프로듀스101 시즌2’ 주제곡인 ‘나야 나’가 흐른다. 피로를 풀 겸 꼭대기 층에 올라가 한강을 바라보며 수영을 즐기고 와인을 마신다.

음악 틀고 요리 레시피 보여주고
목소리로 집안 구석구석 조절

키 없이 스마트폰만으로 출입
초강력 필터로 초미세먼지 제거

최상층에 구름다리·수영장…
한강 등 경치 즐기며 휴식도

음성인식·친환경 기술 접목
강남 재건축 중심 첨단화 가속

 
공상 같지만 머지않은 현실이다. 아파트가 빠르게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1970~90년대 지어진 아파트는 ‘성냥갑’ 이미지가 강했다. 개성 없이 네모 반듯한 블록 모양의 아파트가 나란히 배치된 구조여서다. 주거 기능만을 극대화한 영향이다. 프랑스 지리학자인 발레리 줄레조는 2007년 출간한 『아파트 공화국』에서 당시 한국의 아파트를 “성냥갑 같은 커다란 직사각형의 콘크리트 구조물, 천편일률적인 도색에 차이라곤 ‘번호’가 전부인 구조물”로 묘사했다. 2세대 아파트가 등장한 건 2000년대 후반 들어서다. 아파트 평면이 다양해지고 수영장·독서실 같은 커뮤니티 시설을 갖추기 시작했다. 주차장을 지하에 두고 지상을 공원처럼 꾸미는 설계도 특징이었다.
 
요즘 설계되는 아파트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겉으로 보이는 단지 외관은 물론 각 가구의 내부에도 첨단 기술·공법이 들어간다. 서울 강남권 아파트가 이를 주도한다. 김동수 한국주택협회 정책실장은 “개성 있고 차별화된 주거 패러다임의 변화가 가속화되면서 기존의 틀을 벗어난 아파트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래 아파트의 화두는 인공지능(AI) 기술이다. 음성인식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홈 서비스가 잇따라 개발되고 있다. 현대건설은 음성으로 가전기기와 가스 밸브 등을 제어할 수 있는 ‘보이스 홈 서비스’를 개발했다. 이 회사 김정한 건축전기통신팀 과장은 “기존엔 월패드(벽면에 부착된 단말)를 통해야 했지만 이제 목소리만으로 집 안 구석구석을 조절할 수 있다”며 “날씨 정보나 뉴스, 배달·예약 등도 서비스된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출입 시스템’도 개발했다. 입주민이 출입문 키(Key) 없이 스마트폰만 갖고 공동출입문이나 가구 현관에 3m 이내로 접근하면 문이 자동으로 열린다. 현대건설은 이들 기술을 서울 서초구 ‘반포 디에이치 클래스트’(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재건축) 등 단지에 순차적으로 적용한다.
 
삼성물산도 지난 9월 스마트홈 기기에 음성인식 기술을 접목해 목소리로 제어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특히 주방 TV폰은 원하는 요리의 레시피를 조회하는 기능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삼계탕”을 말하면 삼계탕 레시피를 보여주는 식이다. 조리 도중 손을 사용하기 어려운 점을 고려했다. 지난달 분양한 서울 강남구 ‘래미안 강남포레스트’(개포시영 재건축)를 시작으로 적용한다.
 
성수동 ‘아크로 서울포레스트’ 20층 이하 가구엔 그린발코니가 설치된다. 9~12㎡ 공간에 화단을 만들 수 있다. [사진 대림산업]

성수동 ‘아크로 서울포레스트’ 20층 이하 가구엔 그린발코니가 설치된다. 9~12㎡ 공간에 화단을 만들 수 있다. [사진 대림산업]

대림산업 층간소음 저감 설계

대림산업 층간소음 저감 설계

층간소음이나 미세먼지도 건설사의 관심 분야다. 입주민의 실생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대림산업은 서울 성동구에서 분양 중인 ‘아크로 서울포레스트’에 층간소음을 줄일 수 있는 바닥차음재를 넣는다. 소음이 많이 생기는 거실·주방 차음재를 일반 아파트보다 30㎜ 두꺼운 60㎜로 깐다. 이 회사 구본수 기술개발원 스마트에코팀 연구원은 “60㎜가 깔리는 거실·주방은 중량충격음(무겁고 부드러운 충격에 의한 바닥충격음)이 2급으로, 일반 아파트(3급)보다 층간소음이 4dB 이상 줄어든다”고 말했다.
 
자이 클린 에어 시스템

자이 클린 에어 시스템

GS건설은 서울 서초구 ‘신반포메이플자이’(한신4지구 재건축)에 H14급 헤파 필터를 도입한 중앙 공급 공기정화시스템을 적용할 계획이다. GS건설 측은 “H14급 헤파 필터는 0.3㎛(마이크로미터) 이상 미세먼지를 99.995% 제거해 초미세먼지(2.5㎛ 이하)까지 걸러낸다”고 설명했다. 창문을 닫고 있어도 필터에서 걸러진 공기가 개별 가구에 공급된다. 삼성물산이 짓고 있는 서초구 ‘신반포 리오센트’엔 자동 실내환기시스템 ‘IoT(사물인터넷) 홈큐브’가 적용된다. 이는 실내 미세먼지 농도를 파란색(좋음)·빨간색(나쁨) 등으로 표시하고 외부 공기가 나쁠 경우 자동으로 미세먼지 차단 필터가 작동된다.
 
서울 잠원동 ‘신반포메이플자이’(옛 한신4지구) 35층에 들어서는 야외수영장 ‘인피니트풀’. 한강을 보며 수영을 즐길 수 있다. [사진 GS건설]

서울 잠원동 ‘신반포메이플자이’(옛 한신4지구) 35층에 들어서는 야외수영장 ‘인피니트풀’. 한강을 보며 수영을 즐길 수 있다. [사진 GS건설]

단지 외관도 혁신을 추구했다. 단지 두 개 동(棟)의 최상층을 잇는 ‘스카이브리지’(구름다리)와 꼭대기 야외 수영장인 ‘인피니티 풀’이 대표적이다. 한강을 끼고 있는 아파트에 주로 설치된다. 롯데건설은 서울 송파구 미성·크로바 재건축 단지 상부에 총 길이 290m짜리 스카이브리지 세 곳을 만든다. 각각 한강과 올림픽공원·롯데월드타워를 조망할 수 있도록 했다. 입주민은 스카이브리지를 오가며 운동시설과 테라피룸·라운지 등을 이용할 수 있다. 현대건설과 GS건설은 각각 서초구 ‘반포 디에이치 클래스트’와 ‘신반포메이플자이’에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스카이브리지와 인피니티 풀을 조성한다. 배수웅 롯데건설 디자인연구소 상품설계팀 부장은 “종전엔 서울 용산구 ‘래미안 용산’처럼 스카이브리지가 건물 중간층에 설치되곤 했지만 최근엔 최상층부에 짓는 추세”라며 “조망권이 뛰어난 곳에서 수요가 많다”고 말했다.
 
반포동 ‘반포디에이치클래스트’(옛 반포주공1단지)의 고층 동은 한강 물결을, 일부 저층 동은 요트 모양을 본떴다. [사진 현대건설]

반포동 ‘반포디에이치클래스트’(옛 반포주공1단지)의 고층 동은 한강 물결을, 일부 저층 동은 요트 모양을 본떴다. [사진 현대건설]

아파트가 이처럼 획기적으로 바뀌는 것은 건설사들이 주택 수요자를 의식한 결과다. 익명을 요구한 건설사의 한 마케팅팀장은 “단지 내부로는 생활 편의성을 갖추면서 외관상 특색 있게 만들어 아파트 가치 상승을 원하는 소비자의 요구가 강하다”며 “실제 효과 여부를 떠나 기술·설계 개발에 주력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첨단·고급 기술, 설계 개발’ 흐름이 가속화할 것으로 내다본다. 다만 스카이브리지 같은 설계안은 서울 강남권을 비롯해 용산·성동·마포구, 부산 정도에서만 활발할 전망이다. 시공비가 비싸 강북권 등에선 수익성이 떨어져 건설사가 설계에 나서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석인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기술정책연구실장은 “앞으로 전기·난방 등 에너지 절감 전략 등 친환경적인 기술 적용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 실장은 “지금은 AI 같은 기술을 처음 단지에 접목하는 단계라 새로운 주거 형태로 가는 과도기”라며 “아파트 가치 상승을 위한 전시성 설계·디자인보다는 실제 거주자의 만족도와 활용성 등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84㎡에 ‘4베이’ 일반화, 길쭉해지는 아파트
최근 두드러지진 않지만, 아파트 평면구조 역시 진화를 거듭한다. 그 중심에 베이(bay)가 있다. 과거보다 베이 수가 크게 늘었다. 베이는 전면 발코니와 맞닿은 방, 거실 공간을 말한다. 볕이 드는 앞쪽에 방을 얼마나 배치하느냐에 따라 베이 수가 달라진다. 3베이는 ‘방-거실-방’, 4베이는 ‘방-방-거실-방’식의 구조다. 베이가 많을수록 집 구조가 좌우로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이 된다.
 
1990년대 초만 해도 전용면적 84㎡는 2베이가 기본이었다. 본격적인 ‘베이 바람’은 2006년 발코니 확장이 합법화되면서 불었다. 베이를 늘려 아파트의 실제 사용 면적이 늘길 바라는 소비자의 요구가 반영되면서다. 최근엔 ‘전용면적 84㎡=4베이’ 등식이 일상화됐고 59㎡에도 4베이가 적용되고 있다. 85㎡가 넘는 중대형 아파트엔 6베이까지 등장한다. 수요자들이 베이가 많은 아파트를 선호하는 이유는 뭘까. 햇볕이 드는 공간이 넓어져 채광이 좋고 통풍과 환기도 잘되기 때문이다. 단점도 있다. 구조가 좌우로 길어지는 만큼 상하로는 짧아져 거실이 좁아진다. 건설사 입장에선 전면 폭이 크다 보니 가구 수를 늘리기 어려워진다. 이런 이유로 업체들은 베이를 다양하게 섞어 아파트를 짓는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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