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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같은 시리얼, 개미 같은 사람들

요즘 미술이 난해하거나 심오한 것만은 아니다. 서울 도심의 미술관 두 곳에서 각각 새로 시작한 전시도 그렇다. 각각 웃음을 부르는 재미, 낯익고 친근한 느낌이 두드러진다.
 

독특한 상상력과 앵글 … 전시 2제
먹거리로 표현한 기발한 스토리
테리 보더 ‘먹고 즐기고 사랑하라’
일상 곳곳에서 포착한 군중 풍경
이상원 ‘The Colors of the Crowd’

테리 보더, 씨리얼 킬러(Cereal Killer). [사진 사비나미술관]

테리 보더, 씨리얼 킬러(Cereal Killer). [사진 사비나미술관]

#서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의 ‘테리 보더-먹고 즐기고 사랑하라’는 기발한 상상력과 유머가 번득이는 전시다. 예컨대 한 작품에선 살인현장처럼 사람이, 아니 철사를 구부려 사람처럼 팔다리를 만들어 붙인 시리얼 조각이 피 대신 우유에 흠뻑 젖은 채 쓰러져 있다. 다른 두 사람, 아니 두 시리얼 조각은 충격을 받은 듯 이를 지켜본다. 시리얼을 비롯한 실제 사물을 활용해 찍은 이 사진작품 제목은 ‘시리얼 킬러’. 연쇄살인범을 뜻하는 ‘Serial Killer’의 앞글자를 같은 발음이자 아침식사 대용품인 ‘시리얼(Cereal)’로 바꾼 것이다.
 
미국에서 활동 중인 테리 보더(52)는 이처럼 유머가 번득이는 사진들로 인터넷에서부터 대중적 인기를 누려왔다. 그의 사진은 감자칩, 레몬, 바나나, 쿠키, 두루마리 화장지의 심, 숟가락, 양초 같은 것에 철사로 팔다리를 붙여 사람처럼 등장시키는 데다 영화 장면처럼 매번 뚜렷한 스토리가 담겨 쉽게 눈길을 사로잡는다.
 
테리 보더

테리 보더

“어려서 만화가를 꿈꾸기도 했는데 출판할만한 솜씨는 아니었어요.” 전시를 위해 내한한 테리 보더의 말이다. 대신 사진을 전공, 상업사진가로 오래 일했던 그는 “일에 질려” 그만두고 2006년부터 지금 같은 사진을 만들어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일단 “만든다”는 게 그의 지론. 스스로 망설였던 작품이 오히려 좋은 반응을 얻은 경우가 많았단다.
 
이번 전시에는 한국에서 미리 보내준 라면, 대추, 곶감 같은 먹거리도 등장한다. 모두 그에게는 낯선 것이었지만 이리저리 특징을 연구해 사진을 찍었다. 쭈글쭈글한 붉은 대추가 거울 앞에서 얼굴팩을 하는 ‘매끄러운 피부 관리(Smooth as Glass)’는 대추가 피부에 좋다는 얘기에서 착안했다. 12월 30일까지. 관람료 성인 기준 1만원.
 
이상원, 군중(The Crowd) 200x350㎝ acrylic on canvas 2015. [사진 성곡미술관]

이상원, 군중(The Crowd) 200x350㎝ acrylic on canvas 2015. [사진 성곡미술관]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이 올해 ‘내일의 작가’로 선정, 개인전을 마련한 이상원(39)은 상대적으로 젊은 화가다. 그의 특기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모습을 큼직한 화폭에 담는 것. 한강공원 수영장, 어린이대공원, 스키장, 전국노래자랑 녹화현장, 촛불시위나 태극기시위 현장 같은 낯익은 일상 곳곳에서 포착한 사람 많은 풍경을 때로는 옆에서 보는 듯, 때로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듯, 때로는 그 두 가지 앵글을 섞어 그린다. 잔디밭에 저마다 자리를 펴고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을 그린 ‘군중’의 전체 구도는 위에서 내려다 보는 듯 하지만 각각의 사람들은 옆에서 보는 듯 하다.
 
이상원

이상원

그가 사람 많은 풍경에 매료된 건 반대로 사람 적은 곳에서 자란 덕분이다. “고향이 충남 청양, 노래에도 나오는 칠갑산이에요, 90년대초 서울로 이사와 제일 눈에 띈 게 사람들이 많은 거였어요. 그런 충격이 없었죠.” 전시장에서 만난 이상원 작가의 말이다.
 
이제는 눈에 익은, 다양한 여가를 즐기는 모습들은 한편으로 그동안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한다. “돌아보면 그 무렵부터 주5일제로 여가생활이 많아진 거죠. 봄에는 꽃구경, 가을에는 단풍구경, 여름은 수영장, 겨울은 스키장 … 사람들이 정말 비슷비슷하게 움직이더라구요.” 홍익대 미대를 나온 그는 2000년대 중반부터 가까운 성산대교에서 내려다본 한강공원 모습을 시작으로 사람들 풍경을 그려왔다. 사람마다 얼굴은 자세히 묘사하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보는 분들이 ‘내가 아는 누군가’를 대입해 공감대를 만들 수 있는 여지인 거죠.” 이런 기법은 때론 낯설고 기이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11월 19일까지. 관람료 성인 기준 5000원.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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