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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한국의 메릴린 먼로' 원로배우 김보애 별세

1960년대 '은막의 여왕' 원로배우 고 김보애씨. [연합뉴스]

1960년대 '은막의 여왕' 원로배우 고 김보애씨. [연합뉴스]

 관능적인 이미지의 배우이자 16세 연상인 스타 배우(고 김진규)의 아내였다. 4남매의 어머니로 한때 소매를 걷어 올리고 종업원 100명을 거느린 기업형 식당을 운영했는가 하면, 세 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었다.
  1960년대 '은막의 여왕'이라 불린 그의 삶은 스크린 밖에서 더 파란만장했다.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 남북문화사업, 먼저 세상을 떠난 딸 등 이야기는 차고 넘쳤다. 14일 오후 11시 별세한 원로배우 김보애씨의 삶이다. 향년 78세. 고인은 지난해 11월 뇌종양을 진단 받고 1년간 투병해왔다. 
영화배우 고 김보애씨. 남편인 고 김진규씨와 함께.

영화배우 고 김보애씨. 남편인 고 김진규씨와 함께.

 고인은 서라벌예대 연극영화과 1학년 때, 제1회 대학연극제에서 '나상(裸像)'에 출연하며 연기를 시작했다. 대학 시절 권영순 감독에게 발탁돼 1955년 영화 '옥단춘'으로 영화계에 데뷔했고, 이 영화에서 만난 배우 16세 연상의 배우 김진규(1923~1998)와 1959년 결혼했다. 당시 고인은 19세였고, 김진규에겐 자녀 두 명이 있었다. 이후 '고려장'(1963), '부부전쟁'(1964), '종잣돈'(1967), '외출'(1983) 등에 출연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1984년 영화 '수렁에서 건진 내 딸'에서는 딸 고 김진아(1963~2014)와 함께 모녀로 출연했다.  
 서구적인 외모로 한국 최초 화장품 모델로 발탁됐고, '한국의 메릴린 먼로'라고 불리기도 했던 고인은 배우의 틀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저술 활동도 활발하게 펼쳤다. 『슬프지 않은 학이 되어』, 『잃어버린 일요일』『귀뚜라미 산조』등 출간한 시집만 세 권에 이른다.  광화문에서 한식당 '세보'를 경영하며 겪은 일화 등을 모아 에세이집 『죽어도 못잊어』(1999)를 냈고, 2009년엔 '스크린의 신사'라 불린 남편 고 김진규의 연기 인생과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회고록 『내 운명의 별 김진규』를 냈다. 이 회고록은 1960~1970년대 한국영화계의 풍경을 고스란히 담은 것은 물론 김진규의 여자들, 골수암과 투병하던 그의 말년과 병상에서의 기록을 담아낸 기록으로 주목받는다. 고인은 김진규와 14년여를 함께 살다 이혼했으나 그가 늙고 병에 걸리자 다시 그를 받아들여 임종을 지켰다. 
  과거 고인은 KBS2 '여유만만'에 출연해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스토리에 대해 공개한 바 있다. 고인은 "당시 김진규의 인기가 배용준, 김수현과 닮았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고개 끄덕이며 "그 당시의 인기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와 이혼한 계기에 대해서는 "김진규가 지성인과 만났는데 누가 봐도 빠질 만한 여성이었다. 자존심이 많이 상해 이혼하자고 했다"고 전했다. 고인은 또 재산에 대해서는 "(음식점을 경영하며) 한때 600~700억 원대 정도 된 적도 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주기 직전에 사기를 당해서 다 날렸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고인은 또 2014년 SBS ‘좋은 아침’에 출연해 먼저 세상을 떠난 딸 김진아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린 바 있다. 김진아는 2014년 8월 미국 하와이 자택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고인은 “딸이 떠나기전 하와이에서 3개월을 함께 지냈다. 딸이 서울에 가있으라고 해 서울에 왔더니 딸이 세상을 떠났다. 내가 죄인이다. 내가 먼저 갔어야 했는데”라고 눈물을 흘렸다.  
차녀 김진아와 함께 출연했던 영화 '수렁에서 건진 내딸' (1985).

차녀 김진아와 함께 출연했던 영화 '수렁에서 건진 내딸' (1985).

 고인은 2000년에는 영화기획사 NS21를 설립, 남북영화 교류를 추진했고, 2003년에는 월간 '민족21'의 회장 겸 공동발행인을 맡는 등 문화예술 분야 남북교류 사업에도 앞장서왔다. 차남 김진근씨는 현재 배우로 활동 중이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13호이며 발인은 18일 오전 9시. 장지는 신세계공원묘원.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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