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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현장 누비는 여경 1만2611명 "여자 아닌 경찰입니다"

 10월 21일은 경찰의 날이다. 1945년 미군정청 산하에 경찰의 전신인 경무국이 창설된 것이 계기다. 그러나 경찰 탄생 당시만 해도 경찰 조직에 여성은 없었다.
당시만 해도 경찰 업무에 여성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겼었다. 여경은 이듬해인 1946년 7월 처음 뽑았다. 겨우 79명. 당시 남성 경찰관(2만5000명)의 0.3% 수준이었다.  

1945년 당시 경찰에 여경은 뽑지 않아…남성적 업무 탓
창설 이듬해 부터 여성 경찰관 채용…현재 1만2600여명 근무
예전보다 여성 경찰관 수 늘었지만 전체 인력의 10.8% 수준
전국 여경 30여명에게 위상·처우 등 물어보니 불평등·차별 여전
여경을 홍보에 내세우거나 '여경의 날' 존치에 부정적 반응도

경남 양산경찰서 박가영 형사가 4일 경남 양산시 물금읍 사무실에서 조서 작성을 하고 있다.송봉근 기자

경남 양산경찰서 박가영 형사가 4일 경남 양산시 물금읍 사무실에서 조서 작성을 하고 있다.송봉근 기자

현재 대한민국의 여성 경찰관은 총 1만2611명. 여성·아동·교통에 국한됐던 업무도 형사·수사·과학수사 등으로 다양해졌다. 그래도 여전히 전체 경찰관(11만6914명)의 10.8% 수준이다.  
늘어난 수만큼 위상이나 처우도 달라졌을까. 중앙일보가 전국의 여성 경찰관 30여명을 인터뷰해 '여경 1만명 시대' 여경들의 활약상, 고충과 제도 개선 방안을 모색했다.  
 
"돌아가신 분이 다섯 아이를 둔 가장이에요. 눈을 감으시면서도 (피해자가)얼마나 억울하겠어요. 어머님이 (진실을)말씀해 주셔야 범인을 잡을 수 있어요."
 
경남 양산경찰서 형사과에 근무하고 있는 유일한 여형사인 내 이름은 박가영(36·순경). 내가 방금 통화한 그녀는 지난 6월 8일 발생한 이른바 '양산 밧줄 사건'의 용의자 A씨(41)의 어머니 B씨(70대)다.  
경남 양산경찰서 박가영 형사가 4일 경남 양산경찰서에서 체포술 훈련을 하고 있다.송봉근 기자

경남 양산경찰서 박가영 형사가 4일 경남 양산경찰서에서 체포술 훈련을 하고 있다.송봉근 기자

"음악 소리가 시끄럽다"며 밧줄에 의지해 아파트 건물 외벽에서 도색작업을 하고 있던 40대 인부의 생명줄을 잘라 숨지게 한 그 사건이다.
 
모든 증거가 A씨를 범인으로 가리켰지만 A씨는 "밖에 나간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집에 있었던 그녀의 진술이 중요했다. 하지만 모정(母情)은 범죄에 침묵했다.
 
여경 70년

여경 70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집에 찾아가고 전화 통화를 하면서 그녀를 계속 설득했다. 결국 3일 만에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날 아가(아들) 잠시 밖에 나갔다 왔다. 집 안에 있던 칼(커터칼)도 없어져서 뭔일을 저질렀구나 싶었다." 어머니의 진술로 A씨는 살인 등 혐의로 구속됐다.  
 
지난해 2월 경찰이 돼 형사과로 발령받은지 1년. 나는 어느새 부서에선 없으면 안될 사람이 됐다.  
특히 여성이 연루된 사건은 내가 적임자다. 피해 여성 등은 친언니·동생처럼 다독이고 매섭게 취조·설득하다보니 남자 형사들의 다그침에 대답하지 않던 이들도 내 앞에선 입을 연다.  
여경 70년

여경 70년

 
일부 선배들은 "형사과에 여자라니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고 말한다. 수가 적기도 하지만 '여자는 안된다'는 편견으로 예전엔 현장 업무에서 여성 경찰관을 배제하는 일이 많았다. 지구대나 파출소·형사과에 여성 경찰관이 배치된 것도 1990년대 들어서야 가능했다고 한다.
 
박 순경처럼 여경들은 오늘도 현장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경에 대한 처우는 많이 바뀌었을까.  
중앙일보가 전국의 여성 경찰관 30명을 인터뷰해봤다. 그 결과 36.6%가 불평등이나 차별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승진이나 업무에 대한 것이 대다수였다.
 
"정보 외근 부서에 가고 싶어서 별도로 관련 교육도 받았어요.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하고 일을 잘할 자신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정보 외근 부서가 워낙 남성 위주로 구성돼 여성 경찰을 꺼리더라구요. "(경기지역 40대 경찰)  
 
"예전에 여성 경찰관이 표창·포상 대상이 되면 '니들은 여경의 날에 받으면 되지않느냐'며 후순위로 미뤄서 서운했어요"(인천지역 40대 경찰)
 
근무하면서 성희롱 등을 경험했다는 의견도 30%나 됐다. 민원인도 있었지만 같은 동료에게 당하는 일도 많았다.  
여경 70년

여경 70년

"같은 사무실 직원이 수사를 하려면 여러 경험을 해 봐야 한다며 나에게 성경험을 묻더군요."(대전지역 40대 경찰)
 
"선배가 연하장을 보냈는데 옷을 다 벗고 있는 여성이 절을 하더군요. 불쾌했습니다." (부산지역 30대 경찰)
 
여경 인원이 소수다보니 여경을 각 부서의 성과물을 홍보하는 '얼굴마담'으로 여기는 경우도 많다. 여경, 특히 미모의 여경이 미담 사례의 주인공이 되면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의 조회수가 더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렇다보니 없는 사실을 꾸며내 논란이 된 경우도 있다. 2015년엔 충북지역의 한 경찰서에서 신임 여경이 기지를 발휘해 수배자 검거를 한 것처럼 포장한 것이 대표적이다.  
 
중앙일보 조사에서도 46.6%가 "여경을 홍보에 활용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답했다.  
 
"너무 여성성을 홍보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당사자도 내키지 않을 겁니다"(제주지역 50대 경찰)
 
"유치원 방문 등 각종 행사는 물론 홍보 사진을 찍는데도 꼭 여경이 동원돼요. 문제 있는 것 아닌가요?"(전남지역 30대 경찰관)
 
여경 30명에게 물어보니

여경 30명에게 물어보니

남녀불평등 논란이 일고 있는 '여경의 날'(7월1일)에 대해선 찬반이 엇갈렸다. 하지만 '필요없다'는 의견이 73.3%로 우세했다.  
"예전에는 여경 수가 적었지만 지금은 조직에서 여경 수가 증가하고 있는데 꼭 필요가 있을까요?"(강원지역 30대 경찰관)  
 
일각에선 여전히 "여성은 경찰관 업무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남성보다 약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일에는 남녀구분이 없다"고 강조한다.
 
윤우석 계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의 말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이 여성이다. 민원인의 50%도 여성인데 여성 경찰관이 필요한 업무가 없을 수가 없다. 사람들은 경찰 업무가 범죄자를 잡는 남성적 업무만 한다고 생각하는데 실제 힘쓰는 일은 20%가 채 안된다. 경찰 내부에 다양한 역할이 있고 성에 따라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면 된다. 경찰이 남성 중심의 계급문화를 가지다보니 인권 침해나 수사청탁 등 부정적 문제도 많았다. 조직을 좀 다변화 시키는데 있어서도 여경이 필요하다."
특별취재팀=최모란·이은지·김호·백경서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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