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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간다] 33년 전 씨앗 뿌린 반도체 … 4차 산업혁명에서 꽃피다

김동호의 4차 산업혁명
세계 반도체 1위 삼성전자의 기흥·화성캠퍼스 반도체박물관. 1980년대 일반 전기전자 제품에 쓰였던 반도체가 노트북?스마트폰을 거쳐 최근 AI·IoT 등으로 수요처를 넓혀 가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김동호 기자]

세계 반도체 1위 삼성전자의 기흥·화성캠퍼스 반도체박물관. 1980년대 일반 전기전자 제품에 쓰였던 반도체가 노트북?스마트폰을 거쳐 최근 AI·IoT 등으로 수요처를 넓혀 가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김동호 기자]

4차 산업혁명은 ‘제2의 반도체 혁명’이나 다름없다. 1차 혁명이 PC를 실용화시켰다면 2차 혁명은 로봇·자율주행차·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을 비롯한 4차 산업혁명을 가능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어느 분야든 반도체 뒷받침 없이는 한 발짝도 못 나간다. 혁신적 아이디어가 있어도 반도체가 길을 열어주지 못하면 상상에 그칠 뿐이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의 키를 쥔 반도체의 세계로 들어가봤다.

 
달려간 곳은 세계 1위 반도체 기업 삼성전자 기흥·화성캠퍼스. 삼성전자는 공장을 캠퍼스로 부른다. 이른 아침 서울 양재동에서 통근버스에 몸을 실었다. 매일 400대의 수도권 통근버스는 오전 4시45분부터 달린다. 365일 24시간 공장이 돌아가기 위한 통근 체제다. 삼성전자가 1983년 64K D램을 처음 개발한 뒤 미국·일본의 선두주자를 제치고 반도체의 패권자가 된 것도 이런 땀과 노력의 결과였을 것이란 점을 짐작하게 했다.
 
30분 만에 도착해 기흥·화성캠퍼스 안으로 들어갈 때는 보안 절차를 거쳐야 했다. 휴대전화 카메라가 봉인되고 USB 메모리도 보안봉투에 밀봉됐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3만여 직원의 휴대전화도 캠퍼스 안에서는 카메라 촬영이 원천 차단된다. 보안 절차를 거친 뒤 캠퍼스로 들어서자 84년 준공된 기흥 1라인이 보였다. 그 앞 작은 광장, 라인 가동을 기념한 ‘무한탐구상(像)’의 글귀가 눈길을 확 잡아챘다.
 
시인 서정주가 창업자 이병철의 어록을 시(詩)로 풀어낸 글귀였다. ‘첨단 과학 기술의 꽃인 한국 산업의 살길임을 깨닫고…’.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엔진이 고성능 반도체 기술인데 스마트폰·AI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시절 반도체가 첨단기술이라고 내다본 것이다.
 
그야말로 반도체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엔진이 되고 있다. 구글의 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지난해 3월 이세돌을 상대로 4승1패 한 데 이어 올 5월 세계 바둑 1위 커제에게 3전 전승할 수 있게 한 원동력도 사실상 반도체였다. 두 대국이 벌어진 1년 남짓 사이에도 알파고가 사용한 반도체는 이미 성능이 크게 향상된 상태였다.
 
이같이 AI·IoT·자율주행차를 비롯한 4차 산업혁명의 ‘파괴적 기술’은 모두 반도체의 성능 진화를 통해 현실화하고 있다. 모두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굴러가는 이들 4차 산업혁명 기술은 방대한 양의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해야 한다. 초고화질(UHD) 영화 한 편을 수십 초 만에 내려받는 차세대 이통통신(5G)은 물론, 눈앞에 다가온 자율주행차도 라이더·레이더·이미지센서가 지체 없이 작동하려면 고성능 반도체가 필요하다.
 
메모리 반도체가 4차 산업혁명의 게임 체인저로 떠오르면서 성능은 비약적으로 향상되고 있다. D램은 64K에서 256G까지 진화했다. 스마트폰 등 모든 첨단 전자기기에서 사진·음악·동영상을 저장하는 낸드플래시 메모리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이런 수요를 뒷받침하는 관건은 초고속·고용량·초절전 반도체 생산 능력이다. 오랜 경험과 축적된 기술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박순규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장은 “실리콘 웨이퍼 원판에서 메모리 칩을 만들어내는 데는 한 달 보름에 걸쳐 500가지 안팎의 공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이 조만간 반도체 생산에 나서지만 금세 쫓아오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이 같은 삼성전자의 초정밀 반도체 생산 현장은 화성캠퍼스로 이동해 볼 수 있었다. 유리벽 너머 클린룸에는 빼곡히 들어선 캐비닛 형태의 생산장비에서 손톱만 한 반도체 칩에 트랜지스터 수백억 개를 집적하는 미세공정이 진행되고 있었다.
 
반도체가 4차 산업혁명의 열쇠를 쥐게 되면서 지금도 반도체산업은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90년 25개가 넘던 업체의 치킨게임을 통해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웨스턴디지털·도시바 등 5개사 과점체제로 좁혀졌다. 올 2분기 매출액에서 비메모리 반도체(프로세서)의 절대 강자인 인텔을 제치면서 삼성전자가 반도체업계의 통합 챔피언이 됐지만 기술 환경 변화로 반도체 전쟁은 격화하고 있다. 스마트폰은 물론 AI·IoT·자율주행차·5G·빅데이터·클라우드컴퓨팅에서 고성능 반도체 확보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소프트뱅크가 영국 ARM을 36조원에 인수한 배경도 4차 산업혁명의 열쇠를 반도체가 쥐고 있다는 데서 비롯됐다. 소프트뱅크가 집중하는 로봇과 AI를 비롯한 미래 산업에 ARM이 보유한 반도체 회로 설계 기술의 부가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30년 내 AI가 인류 지능을 초월하는 싱귤래리티(특이점)가 올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그가 최근 주주총회에서 “30년간 5000개 벤처기업에 투자하겠다”고 밝힌 것도 로봇과 AI 시장 선점을 겨냥한 것이다. 도시바 메모리가 매물로 나오자 SK하이닉스와 애플·델 등 미국 정보통신기술(ICT) 업체들이 앞다퉈 투자에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그래픽 프로세서(GPU)도 중요해졌다. 김찬우 삼성전자 DS부문 부장은 “이에 맞춰 AI 기반 분석 서비스가 가능한 수퍼컴퓨터용 3차원 D램(HBM2) 개발에도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스마트폰의 두뇌인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고 차량용 메모리 반도체(eUFS)를 비롯해 차세대 반도체 개발에 전력하고 있다”고 했다.
 
삼성전자는 올 3분기 반도체에서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한국의 4차 산업혁명 기반 기술은 미국·유럽의 70% 수준에 그치고 드론·핀테크는 중국에도 뒤처졌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열쇠인 반도체 강국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반도체 호황도 계속되기 어렵다. 김정호 KAIST 연구처장은 “삼성전자 기술이 최고지만 집적도를 더 높이는 기술이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며 “기술 격차가 3년으로 추정되는 중국이 메모리 반도체 양산에 나서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고 말했다. 2025년까지 반도체 자립을 목표로 ‘반도체 굴기’를 펴 온 중국은 후베이성 우한에 건설 중인 국가메모리기지 1라인을 이르면 내년부터 가동할 전망이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삼성전자가 사상 최대의 실적을 발표한 지난 13일 퇴임을 선언하면서 “지금 회사의 실적은 과거에 이뤄진 결단과 투자의 결실일 뿐”이라고 말했다. 미래를 대비해 성장동력을 발굴하거나 선제적 투자를 하지 못하면 반도체 특수도 언젠가 신기루가 될지 모른다는 경고로 들린다. 이럴 때일수록 기업과 대학은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신기술 개발과 인력 양성에 나서 미래의 먹거리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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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