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길주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총장
결과만 집착 말고 장기 플랜 짜야
녹색·창조·AI 정권마다 단절도 문제
신진 학자 창의적 연구 생태계 조성
학술대회를 혁신 플랫폼 만들어야
한편 2016년부터 불기 시작한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올해 들어서는 거의 모든 국민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대유행이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융합혁신·녹색성장·창조경제로 이어지는 5년 단위의 흥망성쇠를 경험한 우리로서는 4차 산업혁명 열풍에 불안함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융합-녹색-창조-4차 산업혁명이 큰 골격과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시행착오를 통해 완성도를 높여왔다면 오히려 신뢰와 안도감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큰 깃발을 올리고, 모두가 몰려가고, 경쟁 과열에 따라 시스템이 흔들리면서 자원 배분마저 왜곡될 때쯤이면 새 깃발이 오르는 양상이 반복됐다.
노벨상·대학순위·4차 산업혁명에서 보았듯 결과에만 집착하는 단견과 일회성을 극복하고, 20년 이상의 꾸준한 노력으로 새로운 기회를 만들려면 과연 무엇이 최우선일까. 교육-연구-사업화 선순환의 정점에 있는 교육·과학기술을 중심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한다.
첫째, 대가를 기다리기에 앞서 신인과 이방인이 조기에 적응하고,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대학의 유망한 젊은 교수들이 떠나는 비율이 늘어나는데, 서울대는 최근 5년간 이전 기간에 비해 이직률이 46%나 증가했다. 국가 프로그램으로 초빙한 해외 석학들은 최소 계약기간만 채우고 거의 다 떠난다고 한다.
신진 연구원·교수와 신입생의 적응은 어린 나무 심기와 같아서 물·햇빛·거름을 적기에 적절하게 줘야 한다. 엄격한 기준과 과정을 거쳐 선발하되, 그에 상응하는 위상과 처우를 제공하고, 조직 내 존경받는 대가(大家)가 직접 멘토링과 교육을 주관하며, 자원 배분에서도 차별이 없도록 보장해야 한다. 신인들의 1년은 그 이후의 10년 이상에 해당하는 것은 물론 미래를 열어가는 소중한 씨앗을 이 시절에 잉태하는 경우가 많다. 신인들이 자유롭고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마음껏 창의성을 발휘하는 생태계 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둘째, 학술대회를 교육·과학기술의 혁신 플랫폼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한국을 떠나는 석학과 젊은 연구자 모두 학계의 낙후·권위주의·순혈주의를 지적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국내학회는 국제학회·SCI급 저널에 밀려 관심이 낮아지고 있다. 학회 수의 증가에 비해 참석률과 발표자의 수준은 낮아지고, 논쟁의 강도는 점차 약해진다고 한다. 학·연·산의 인재들이 모여서 새로운 지식·기술과 첨단 시설·장비를 선보이고, 심층 토론과 함께 거래가 이뤄지는 학회는 또 하나의 교육·연구·혁신의 공간이자 플랫폼으로 작동한다. 그 속에서 제한 없는 토론과 반박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진정성 있는 존경과 상생의 분위기가 살아날 것이다.
창조·융합은 연구자의 자세, 녹색은 생존과 직결된 필수 지향점, 경제성장은 창업·사업화의 결실이라는 인식으로 4차 산업혁명을 큰 틀에서 묶고 먼 안목을 가지고 일관성 있게 이어간다면 우리의 교육과 과학기술도 새롭게 국민에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노벨상은 그 길에서 만나는 부산물이자 작은 선물일 뿐이다.
문길주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