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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가에서 만나는 볼트보다 빠른 곰

[내가 짜는 힐링여행] 세상의 끝 시레토코
9월 13일 시레토코 5호를 찾은 관광객들이 나무 산책로를 통해 1번 호수로 향하고 있다.

9월 13일 시레토코 5호를 찾은 관광객들이 나무 산책로를 통해 1번 호수로 향하고 있다.

일본의 최북단인 홋카이도는 매년 700만명 이상이 찾는 인기 관광지다. 최근 국내 저비용항공사(LOT)의 취항이 늘면서 한국인 관광객도 연 200만 명으로 늘었다. 홋카이도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눈과 해산물 요리로 유명한 삿포로, 영화 ‘러브레터’와 운하의 도시 오타루, 낭만적인 야경의 항구도시 하코다테 등을 주로 찾는다. 자연 풍광을 즐기려면 삿포로 동쪽의 샤코탄 반도나 라벤더로 유명한 동쪽의 후라노·비에이를 방문한다. 온천을 즐기기 위해서라면 노보리베츠가 제격이다. 하코다테를 제외하면 삿포로에서 자동차로 2~3시간 떨어져 있기 때문에 홋카이도 첫 여행에서는 일정에 따라 이 가운데 방문지를 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러브레터’의 도시 오타루 방문 미루고 …
맑은 날이면 시레토코 고개에서는 탁 트인 전망을 즐길 수 있다.

맑은 날이면 시레토코 고개에서는 탁 트인 전망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곳들을 방문하는 것을 과감히 다음 기회로 미루고 이번에는 곰과 사슴이 노니는 ‘세상의 끝’ 시레토코 반도를 향하기로 했다. 시레토코라는 지명 자체가 원주민인 아이누 말로 ‘땅의 끝자락’이라는 의미인 ‘시레톡’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홋카이도는 면적이 한국의 80% 정도인 큰 섬이다. 국적기들이 취항하는 신치토세 공항에서 서쪽에 주요 관광지가 몰려 있다. 반대쪽인 도동(道東) 지방은 때 묻지 않은 원시적인 자연 풍광으로 명성이 높다. 신치토세 공항에서 388㎞ 떨어진 홋카이도의 동쪽 끝 시레토코까지 가려면 자동차로 6시간 정도 걸린다. 도동 지방의 중심지인 오비히로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녹갈색을 띤 식물성 모르 온천인 토카치가와 온천을 즐기고 이튿날 구시로 습원과 굿샤로호, 마슈호를 구경한 뒤 강산성 유황천인 가와유 온천에서 여장을 푸는 일정을 택했다.
 
여기서 2시간 정도 달리면 시레토코의 중심지 우토로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시레토코 고코(五湖)까지는 20분 정도 더 가야 한다. 공원 입구 휴게소에서 1번 호수까지는 나무로 만든 800m 길이의 고가 다리가 연결돼 있다. 곰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7000V의 전기가 흐르는 철조망을 둘러 계절과 날씨에 관계없이 호수와 시레토코 산맥의 경치를 즐길 수 있다. 단 연결 도로에 눈이 쌓여 통제되는 11월 중순부터 이듬해 4월 중순까지는 문을 닫는다. 휴게소에서는 우유·차 등의 음료수와 함께 곰고기와 사슴고기로 만든 햄버거와 카레 등도 판다. 호기심에 사슴고기 버거를 먹어 봤지만 쇠고기보다 낫다고 하기는 어려운 맛이었다.
 
5호부터 2호까지 돌아본 뒤 나무다리로 연결되는 산책 코스를 체험하려면 1인당 250엔을 내고 10여 분간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 내용은 곰을 피하는 방법 위주다. 방울을 달거나 숲으로 시야가 막힌 곳에서는 막대기로 바닥이나 나무를 쳐 소리를 내면 곰이 알아서 피해간다는 것이다. 후각이 예민한 곰이 다가오지 않도록 생수를 제외한 모든 음식물은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곰은 우사인 볼트보다 빠르기 때문에 마주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교육을 맡은 가이드는 불가피하게 조우할 경우 당황하지 말고 곰을 자극하지 않도록 조용히 뒷걸음질 쳐서 거리를 벌리라고 알려 준다. 일어서면 키가 3m에 달하는 몸무게 400㎏의 불곰을 만났는데 침착하게 행동할 수 있을 리가 하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친다.
 
성게알 덮밥(왼쪽)과 연어알 덮밥.

성게알 덮밥(왼쪽)과 연어알 덮밥.

5호를 전부 돌아보는 산책코스는 공원 개원부터 5월 9일까지, 8월 1일에서 10월 20일까지만 가능하다. 그나마 곰이 발견된 날은 문을 닫는다. 불곰 활동기(5월 10일~7월 31일)에는 공식 인솔자가 이끄는 유료 가이드 투어에 참가해야만 지상 산책로를 경험할 수 있다. 다행히 5호를 방문한 9월 13일에는 곰의 흔적이 없어 5호를 둘러볼 수 있었다. 하지만 행운과 불행은 함께 온다고 했던가. 부슬부슬 내리는 비와 짙은 안개 탓에 50m 앞도 잘 보이지 않는다. 파란 하늘에 우뚝 선 시레토코 산맥이 맑은 호수에 비치는 광경을 기대하며 1시간 30분을 걸었지만 보이는 것은 안개 속에 어슴푸레 보이는 호수와 나무뿐이었다. 주차장을 나서 시레토코 도게로 향한다. 30분 정도 나무가 가득한 길을 달리는 기분은 참 좋았지만 해발 740m의 고갯마루에 도착하니 역시 안개인지 구름인지 가득해 경치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평소에 덕을 많이 쌓아 뒀어야 했다고 자책하며 아쉽게 발길을 돌렸다. 온천 호텔의 노천탕에 몸을 담그니 비에 젖어 으슬으슬했던 느낌이 싹 사라진다.
 
이튿날 아침 밝은 빛에 일찍 눈을 떴다. 홋카이도는 위도가 러시아 블라디보스톡보다 높지만 한반도에서 훨씬 서쪽에 자리잡고 있어 9월에도 오전 5시면 동녘이 훤하게 밝아온다. 대신 오후 5시만 돼도 어둠이 내린다. 창 밖으로 구름이 적지 않지만 비는 그쳤고 시야가 훨씬 트였다. 아침을 먹기 전에 후레페 폭포를 보기로 한다. 자동차로 15분 정도 가면 나타나는 시레토코 자연센터에 주차하고 산책길에 접어들었다. 왕복 40분 거리의 산책길에는 아무도 없다. 10여 분 정도 숲길을 걷다 보면 확 트인 초원이 나타난다. 폭포는 초원과 바다가 만나는 절벽에 자리하고 있다. 초원에서 흘러내리는 여러 갈래의 가는 물줄기가 바다로 떨어지는 모습 때문에 처녀의 눈물이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사슴 등 야생동물 사람 피하지 않아
도로 옆 개울에서 물고기를 사냥하는 곰들.

도로 옆 개울에서 물고기를 사냥하는 곰들.

아침을 먹고 5호를 다시 가기로 했다. 오늘은 지상 산책은 포기하고 고가 목교만 둘러보기로 한다. 주차비 500엔만 내면 목교 산책은 무료다. 시레토코 연봉은 여전히 구름에 덮여 있지만 어제와는 달리 시야가 트여 호수와 초원의 경치를 만끽할 수 있었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작은 개울을 건너려는데 20여 대의 차들이 비상 깜빡이를 켜고 길가에 서 있다. 무슨 일인가 차를 세우고 보니 50m 앞에 곰 두 마리가 시냇물에서 사냥을 하고 있다. 망원 렌즈를 단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은 것이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한 마리가 연어로 보이는 팔뚝만한 물고기를 입으로 낚아채더니 유유히 숲 속으로 사라진다. 한참을 구경하다 발길을 돌린다. 조금 더 가다 자연센터 주차장을 지나는데 사슴들이 풀을 뜯고 있다. 커다란 뿔이 달린 숫사슴 한 마리와 점박이 무늬가 있는 암사슴 세 마리다. 사람들이 2~3m 앞까지 다가가 연신 사진을 찍어 대는데도 눈길도 돌리지 않는다.  
 
시레토코 반도는 이오산(1562m)과 라우스다케산(1660.4m) 등 1000m가 넘는 활화산들이 중앙을 가른다. 이 시레토코 연봉의 왼쪽이 샤리초, 왼쪽이 라우스초다. 샤리초의 우토로와 라우스초의 라우스·이와오베쓰 등 많은 곳에서 온천이 나온다. 시레토코 반도 전체가 2005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됐다. 시레토코를 방문하기 가장 어려운 계절은 겨울이다. 하지만 매년 1월부터 3월까지는 오호츠크해에서 밀려온 유빙이 앞바다를 가득 메운다. 5호를 방문하지 못하는 대신 유빙 위를 걷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유빙이 대량의 플랑크톤도 함께 가져와 시레토코 해안에는 연어·가리비를 비롯한 해산물이 풍부하다. 4월부터는 푸른 초원과 원시림에서 사슴·북방여우·곰 등을 볼 수 있다. 참수리·흰꼬리수리·올빼미 등 야생 조류, 점박이물범·큰바다사자·향고래·범고래 같은 해양 생물도 서식한다. 10월부터 눈에 덮이기 전까지는 형형색색의 단풍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전생에 나라를 구했거나 나와는 달리 아주 운이 좋다면 말이다.
 
 
홋카이도 글·사진=김창우 기자
changwoo.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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