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사사오입' 등 1948년 제헌 헌법 이후 9번…대한민국 개헌 역사는



과거, 정권 연장 위한 '정치적 목적' 개헌 빈번
'사사오입·유신개헌' 등 우리 헌정사 오점으로 남아
1987년 9차 개헌 이후로는 30년간 현행 헌법 유지
시대정신 반영 위해 10차 개헌 논의 활발…개헌특위 가동

【서울=뉴시스】이근홍 기자 = 헌법(憲法)은 국가의 기본 법칙이다. 개념은 역사적 과정과 사회적 접근 방식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지만 일반적으로 국가의 구성·조직·작용과 기본권보장에 관한 기본적 원칙을 규정한 근본법이자 최고 수권법의 지위를 갖는다.

우리나라는 1945년 8월15일 광복 이후 3년 만인 1948년 7월17일 최초의 헌법인 제헌 헌법을 제정했다. 나라의 근간인 헌법을 마련하고 약 한달 뒤인 8월15일에 공식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출범했다.

제헌 헌법 제정 이후 우리 헌법은 총 9차례의 개헌 과정을 거쳤다. 국가 수립 이후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기 위해 수많은 투쟁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대통령 선출 방식·임기·연임 등 정치 권력과 관련한 개헌이 주로 이뤄졌다.

1차 개헌은 제헌 헌법 제정 4년 뒤인 1952년 7월7일 단행됐다. 간선제였던 대통령 선출 방식을 직선제로 바꾼 작업이었다. 이 전 대통령은 이 개헌에 따라 같은해 8월에 실시된 첫 직선제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2·3차 개헌도 이 전 대통령과 관계가 깊다. 특히 2차 개헌(1954년 11월29일) 당시 이 전 대통령의 3선을 위해 중임까지만 가능했던 대통령 연임 제한을 '초대 대통령'에 한해서만 제외하도록 헌법을 손봤다.

이 때 개헌을 위해서는 제적의원 203명 중 3분의2인 135.333명의 찬성표가 필요했는데 투표 결과 찬성표가 135표에 그쳐 개헌이 무산됐다. 하지만 정부는 하루 뒤 사람은 0.333명이 있을 수 없으니 개헌정족수는 사사오입에 따라 135명이라며 가결을 선포했다. 우리 헌정사의 오점으로 남은 '사사오입 개헌'이다.

이 전 대통령이 '3·15 부정선거'에 의한 '4·19 혁명'으로 하야한 뒤 진행된 3차 개헌(1960년 6월15일)에는 의원내각제 실시, 헌법재판소 설치, 대법원장 및 대법관선거제, 언론검열금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제 등 우리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많은 내용들이 담겼다.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진행된 첫 개헌이기도 했다.

4차 개헌(1960년 11월29일)에도 이승만 정권에 대한 반작용으로 반민주행위자(3·15 부정선거 자유당협력자) 처벌규정, 부정축재자 행정상 및 형사상 처벌을 위한 특별법 제정 등이 포함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1년 5월16일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 우리 헌법은 또다시 수난의 시대를 맞는다. 박 전 대통령은 국민투표를 통해 5차 개헌(1962년 12월 26일)을 단행했다.

무엇보다 '4·19 이념'을 계승한다며 '5·16 군사정변'까지 헌법전문에 끼워넣었다. 자신이 주도한 쿠데타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또 헌법재판소를 폐지하며 모든 권력을 대통령이 끌어안았다.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쥔 박 전 대통령은 3선연임 제한 철폐를 골자로 한 6차 개헌(1969년 10월21일)과 대통령 6년 연임, 연임 제한 폐지, 대통령 간선제, 국회해산권, 국회의원 3분의1 추천권, 긴급조치권, 법관임면권, 국정감사폐지 등을 담은 7차 개헌(1972년 12월27일·유신 개헌)을 실시한다. 권력분립이나 기본권 보장 등이 완전히 무너진 대한민국 헌정사의 최대 암흑기였다.

1979년 10월26일 박 전 대통령이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에게 피살되며 유신 독재는 막을 내렸지만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12·12와 5·18 광주 사건 등을 겪고 1980년 11대, 1981년 12대 대통령에 취임한다.

신군부의 제5공화국 체제 하에서 진행된 8차 개헌(1980년 10월 27일)에는 대통령 7년단임제, 간선제 유지 등 장기 집권을 위한 독소조항이 포함됐다. 단 유신헌법 관련 조항 폐지, 기본권 침해금지조항 명시, 정당제에 근거한 경쟁선거 명시, 국정조사권 부활, 무죄추정의 원칙 명시, 국민의 행복추구권 명시, 사생활보호 명시, 자유보호 명시 등 이전 정권과의 차별화를 위한 일종의 명분 쌓기 노력도 남겼다.

전두환 정권의 군부독재에 맞서 1987년 전국에서 일어난 '6월 항쟁'이 9차 개헌(1987년 10월29일)을 만들어냈다. 9차 개헌에는 대통령 5년단임제, 국회해산권 폐지, 국정감사 부활, 대법관제 부활, 헌법재판소 부활, 군 정치중립 의무화, 언론검열 폐지, 집회 및 결사의 자유 보장, 최저임금제 시행 명시 등이 골자를 이루며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의 토대가 됐다.

9차 개헌 이후 현행 헌법은 30년 동안 유지되고 있다. 사회에 미친 영향이 지대한 최장수 헌법이지만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과 경제규모, 삶의 규범 등이 급변한 현 상황에서는 1987년 헌법 체제가 시대정신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또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부여된 권한에 비해 의회 등 견제장치가 미흡한 국정운영시스템으로 인해 제왕적 대통령이나 1인 독주체제를 제대로 견제하기 어렵고 '공존의 정치' 대시 '배제의 정치'가 만연해 있다는 비판도 많다.

이에 따라 정치권은 10차 개헌을 하기 위해 지난 1월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장인 이주영 자유한국당 의원을 비롯해 36명의 여야 의원들이 헌개특위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1소위는 헌법전문과 총강, 기본권, 지방분권, 경제·재정 분야를 담당하고 2소위는 국회·대통령·행정부, 정당·선거제도, 사법제도 등의 논의를 맡는다. 학자·변호사 등 53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도 활동 중이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지난 6월13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국회 주도로 임기 내 예측 가능한 개헌을 추진하겠다"며 "개헌 내용이나 시기,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국민과 함께하는 개헌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lkh2011@newsis.com

<저작권자ⓒ '한국언론 뉴스허브'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