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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초 숙청 빼닮은 김정은 총알·알사탕 함께 중시

젊은 시절 김정일과 김정은 비교
[중앙포토]

[중앙포토]

‘감정이 변덕스러운(moody)’ ‘못 말리는 미치광이(a total nut job)’ ‘미치고 뚱뚱한 녀석(crazy fat kid)’. 뉴욕타임스(NYT)가 지난 8월 10일 김정은(33)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평가한 표현들이다.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젊었을 때 평가와 비슷하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1980년대 중반 김정일에 대해 “편협하고 충동적인 정책 결정을 해 일관성이 없다”고 했다. 또한 CIA는 “그가 기분이 자주 변하고 때나 장소와 관계없이 그 자리에서 분노를 터뜨린다”고 했다. 당시 김정일의 나이는 40대 초반이었다. 김정일은 74년 2월 노동당 제5기 제8차 전원회의에서 32세에 후계자로 확정됐고, 8년 뒤인 80년 노동당 제6차 대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후계자로 공표됐다.

귀하게 크며 안하무인 부전자전
갑산파 처형, 이영호 숙청 유사

자유민주국가 경험 바탕으로
아버지보다 실용적 경제정책 펴

 
중국에서도 미국처럼 김정일 부자를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긴 마찬가지다. 리소테쓰 일본 류코쿠대 사회학부 교수는 『김정은 체제 왜 붕괴되지 않는가』에서 김정일에 대한 일화를 소개했다. 중국 외교부에서 북한 요인의 통역으로 일한 후 중국 사회과학원 산하 연구소로 옮긴 리샹원(李相文)의 경험담을 옮긴 것이다. 리샹원이 83년 6월 중국을 방문한 김정일 일행을 안내했을 때의 일이다. 김정일이 당시 난징(南京)을 방문할 때 무엇에 화가 났는지 모르겠지만 수행원의 무릎을 구둣발로 걷어찼다는 것이다. 리샹원은 이 장면을 목격하고 “그처럼 성질이 급하고 제멋대로인 사람은 처음 봤다”고 전했다.
 
김정일의 이런 모습들은 최근 아들 김정은의 행동으로 이어졌다. 황병서 총정치국장은 의자에 앉지 않고 무릎을 꿇은 채 김정은에게 보고했다. 박영식 인민무력부장은 김정은이 행사장에서 “앉으라”고 지시했는데 바로 앉지 못하고 눈치를 보다가 황병서가 김정은에게 경례하고 자리에 앉자 그제야 착석했다. 간부들이 김정은의 안하무인 행동에 생존 차원의 처세술을 보여 주는 단면이다. 존 케리 전 미 국무장관은 “김정은의 즉흥적이고 괴팍한 행동은 사담 후세인과 닮았다”고 평가했다. 부전자전이다. 김정일 부자가 최고권력자의 자제로서 귀하게 대우받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안하무인적인 요소가 자연스럽게 몸에 배였을 수 있다.
 
“김정은 즉흥적이고 괴팍, 후세인 닮아”
김정은이 집권 초반기 손에 피를 묻힌 것도 김정일과 비슷하다. 김정은은 집권한 지 얼마 되지 않은 2012년 7월 이영호 총참모장을 숙청하면서 평양에 숙청 바람을 일으켰다.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과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변인선 총참모부 작전국장 등도 잇따라 처형했다. 김정은이 앞으로 숙청 바람을 더 이어 갈지는 알 수 없지만 현재까지만 비교하면 김정일에 비해 숙청 강도는 더 세고, 기간은 짧은 편이다. 김정일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숙청을 단행했다.
 
첫째로 67년 5월 ‘갑산파 반당 사건’이다. 갑산파는 박금철을 중심으로 정치세력화된 양강도 갑산 지역 출신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김일성의 유일사상체계에 도전했다가 당시 25세밖에 안 된 김정일에 의해 숙청됐다. 숙청된 갑산파는 박금철 노동당 부위원장, 이효순 대남 총책, 김도만 당 선전선동부장 등 당의 요직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김정일은 김일성의 인정을 받아 후계자 반열에 올라섰다.
 
둘째로 76년 6월 ‘김동규 사건’이다. 후계자로 지명된 김정일의 독주를 견제하려던 김동규 국가 부주석이 오히려 당한 케이스다. 김일성과 함께 항일 빨치산 활동을 했던 지경수 당 검열위원장, 지병학 인민무력부 부부장, 이용무 총정치국장 등이 김동규에게 동조하면서 함께 숙청됐다. 주동자 김동규는 함경남도 부전군의 산간 지역에 감금됐고 지경수·지병학은 가혹한 추궁을 받다가 차례로 사망했다. 김일성은 항일 빨치산 출신들이 숙청되자 김정일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셋째로 97년 ‘심화조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김일성의 노간부를 중심으로 3000여 명이 처형됐고 1만 명 이상의 연고자가 수용소로 끌려갔다. 대표적 숙청 인사는 서관희 농업담당 비서, 문성술 본부당 책임비서, 서윤석 평안남도 당위원장 등이다. 심화조는 김정일이 간첩 색출을 위해 “주민등록 조사를 심화하라”고 내린 문구를 그대로 사용한 데서 따온 것이다. 심화조 사건 수사의 발기자는 장성택이었고, 행동대장은 채문덕 사회안전부(현 인민보안성) 정치국장이었다. 그들에게 칼자루를 쥐여 준 사람은 김정일이었다.
 
장성택의 타깃은 문성술이었다. 문성술은 김일성의 유일사상체계와 김정일의 계승 문제를 책임지고 있었기 때문에 김정일의 친인척들 가운데 권력지향성이 가장 큰 장성택을 철저히 감시·견제했다. 아울러 그의 비리를 김일성·김정일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따라서 두 사람은 원수지간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문성술은 신문 중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구타를 당했으며, 스스로 독방 벽에 머리를 찧어 자살했다. 문성술이 맡은 본부당은 노동당의 최고 실세 부서인 조직지도부의 핵심으로 중앙당 모든 간부의 당 조직생활을 지도했다. 이 악연은 결국 2013년 12월 장성택의 운명을 재촉하게 됐다. 그를 내사한 곳이 본부당이었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는 “김정일로부터 물려받은 성격과 통치술이 오늘의 김정은을 만들었고, 그런 김정은이 ‘선군’ 지도자를 계승했다는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김정은은 대내적으로 자신의 정당성을 강화하고 군대를 통제하며, 대외적으로 주변국들에 안보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
 
김정일의 40대 모습을 빼닮은 김정은은 아버지와 다른 점도 있다. 첫째로 김정은이 2013년 3월 발표한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의 병진노선이다. 김정일은 경제보다 군을 우선하는 선군정치를 국시로 삼았다. 김정일은 늘 “알사탕이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총알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입버릇처름 얘기했다. 돈을 의미하는 ‘알사탕’보다 핵·미사일인 ‘총알’이 우선이라는 김정일식 현실주의였다. 그러나 김정은은 ‘알사탕’과 ‘총알’을 동시에 손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핵·미사일을 개발하면서 경제 발전을 기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경제성장률이 현재까지는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7월 발표한 2016년 북한의 경제성장률은 전년 대비 3.9% 성장했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플러스 성장을 한 것이다.
 
둘째로 김정은은 김정일과 달리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살아 본 경험이 있다. 김정일은 단기간 외국 여행을 제외하고는 외국에서 장기적으로 체류한 경험이 없다. 김정은은 김정일과 달리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은 강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임재천 고려대 교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의 생활 경험이 김정은의 리더십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고난의 행군이란 시대적 배경 속 성장
셋째로 청소년기를 김정일은 북한의 전성기 때, 김정은은 쇠퇴기 때 보냈다. 김정은은 사회주의 몰락과 고난의 행군이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성장했다. 아울러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살아 본 경험이 있어 김정일보다 더 실용적인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 김정일은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를 발표해 상품 가격과 임금 인상, 기업소의 자율성 확대, 인센티브 강화 등을 단행했다. 사회주의 경제시스템에 시장경제 요소를 더한 것이다. 하지만 2005년부터 한국 상품이 종합시장에서 팔리는 등 ‘황색 바람(자본주의 풍조)’이 불어 북한에서 군부를 중심으로 한 강경파의 저항에 부닥쳤다. 이 바람에 박봉주 총리가 2007년 물러나면서 ‘7·1 조치’는 꺾이게 됐다. 김정일에게 실용적 조치는 부차적이었고 이데올로기가 우선이었던 것이다. 반면 김정은은 김정일보다 상대적으로 더 실용적인 경제정책을 펼치고 있다. ‘6·28 방침’ ‘5·30 조치’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 등을 통해 ‘7·1 조치’보다 개인·기업에 자율권을 더 확대했다. 장마당의 확대와 ‘돈주’의 성장을 유도하면서 개인의 상업 활동을 보장해 주고 있다. 임 교수는 “북한 지도자 가운데 김정은이 가장 실용적인 리더십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며 “하지만 실용적인 리더십은 군사주의 리더십과 갈등을 겪으면서 제약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고수석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ko.soos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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