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김종명의 샐러리맨 코칭스쿨] 묵언·차수·하심에 도전할 만

불필요한 오해·갈등 일으키지 않고 겸손해져
 
사진:ⓒgetty images bank

사진:ⓒgetty images bank

오래 전 여름 휴가 때 4박5일짜리 해인사 참선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100여 명의 사람이 한 방에서 함께 생활했다. 여자는 오른쪽, 남자는 왼쪽에서 잤다. 절의 경치를 감상하면서 우아하게 지내다가 가겠다는 내 꿈은 단박에 깨졌다. 이불도 대충 지급됐고 베개는 아예 없었다. 나는 베개 없이는 잠을 잘 자지 못한다. 난감해하고 있는데, 참가자 중 해병대 출신이 강력하게 항의했다. “이거, 너무 한 거 아닙니까? 해병대에서도 베게는 줍니다.” 항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각자 자기 소지품을 이용해서 베개를 삼았다. 괜히 왔다는 생각이 밀려들었다. 고생문이 훤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선 프로그램의 취지는 여러 사람이 함께 생활하면 그 속에서 불편함을 느끼고 그걸 해소하는 과정에서 인격수양이 된다는 거였다.
 
어느 스님에게 들은 말이다.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서 생활하면 수행은 저절로 됩니다. 한 방에서 오랫동안 같이 생활하다 보면 온갖 불편한 일이 다 생깁니다. 서로 지지고 볶고 지나다 보면 어느새 수행이 깊어져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한 방에서 함께 생활하는 것 자체가 수행이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예전에 들은 말이 생각났다. ‘부부생활은 대단한 수행이다.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자란 사람이 결혼하면서 한 방에서 생활해야 하니 얼마나 불편함이 많겠는가? 지지고 볶으면서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 그게 바로 부부생활이다. 그래서 부부생활은 고차원의 수행이다.’
 
여러 사람이 모여 생활하면 수행은 저절로
 
해인사 참선 프로그램에 도착하자마자 참가자들의 소지품을 모두 회수했다. 큰 비닐봉지에 개인 물품을 모두 넣고 봉인했다. 휴대폰은 물론이고 책, 과자, 세면도구, 의류 등 꼭 필요한 것만 제외하고 모든 걸 회수했다. 일부 참가자들이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참가자들에겐 세 가지 규칙이 주어졌다.
 
첫째는 묵언(默言)이다. 말을 하지 않는 거다. 4박5일 동안 참가자들끼리는 어떤 말도 하면 안 된다. 말하는 순간 퇴소 조치한다. 꼭 해야 하는 말이 있으면 진행하는 스님에게만 말하는 것이 선별적으로 허용된다. 둘째는 차수(叉手)다. 두 손을 아랫배에 포개는 거다. 걸을 때는 물론이고 프로그램 기간 내내 무조건 차수해야 한다. 혹시 뛰어갈 일이 있어도 차수하고 뛰어야 했다. 마음을 한 곳에 모으는 연습이다. 신기하게 아랫배에 손을 포개고 있으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세 번째는 하심(下心)이다. 자기를 낮추고 상대방을 높이는 거다. 이 세 가지는 절에서 생활하는 내내 지켜야 했다. 어기면 쉬는 시간에 108배를 하는 벌칙이 주어졌다. 절하는 걸 벌칙으로 정한 게 못 마땅했지만 내 항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세 가지 규칙을 지킬 자신이 없으면 퇴소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첫째 날 밤에 많은 사람이 산을 내려갔다.
 
억울한 규칙, 못 마땅한 규칙이었지만, 그것 때문에 하산한다는 게 자존심 상했다. 버텨보기로 했다. 얼마나 더 괴상한 일이 벌어질지 몰랐지만 스스로 선택한 것이기에 한 번 지내보기로 했다. 묵언을 계속하니까 신기한 일이 생겼다. 처음엔 말을 못해서 답답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말을 하지 않는 게 오히려 더 편안해졌다. 참가자끼리 갈등이 생기질 않았다. 참가자들이 모두 마음에 들었다는 게 아니다. 못마땅한 사람이 많았다. 방귀를 아무데서나 붕붕 뀌는 등 공중질서를 지키지 않고 제멋대로인 사람도 있었다. 그때마다 불편한 마음이 올라왔다. 그러나 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신기하게도, 말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니까 불편했던 마음이 곧 사라졌다. 나중엔 말하지 않는 게 오히려 편했다.
 
말을 통해 오해가 생기고 갈등이 생긴다. 말로 짓는 죄를 구업(口業)이라고 한다. 말을 하지 않으니 말로 짓는 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또 생각이 선명해졌다. 말을 하지 않으니까 마음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선명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묵언은 꽤 해볼 만한 것이었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장황하게 말하는 것보다,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리면서도 말을 하지 않고 절제하는 게 아주 상쾌했다. 정신 건강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해인사 참선 프로그램 이후, 때론 생각에 잠긴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오해도 생기지 않고, 갈등도 생기지 않을 텐데….’
 
묵언이 통찰을 줬다면 차수는 재미를 줬다. 앉아 있을 때나, 걸을 때나, 심지어 뛰어갈 때도 아랫배에 두 손을 모아야 한다. 해인사엔 차수에 대해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해인사에선 출가하면 무조건 차수를 해야 한다. 앉아 있을 때나 걸어갈 때나 언제나 차수가 생활화돼 있다. 해인사 행자 생활은 고되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견디지 못하고 야반도주 하는 행자스님이 꽤 있다. 그러나 도망가는 행자스님은 멀리 못 가서 덜미가 잡혔다. 차수가 생활화된 행자스님은 도망가는 와중에도 차수를 하고 뛰었다. 차수하고 도망가는 사람은 누가 봐도 행자스님이었다. 이를 본 마을 사람이 신고해서 도망가는 행자스님은 모두 잡혀왔다고 한다. 차수는 마음을 한 곳으로 모으는 좋은 방법이다. 해인사 프로그램 이후,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해야 할 경우엔 두 손을 아랫배에 모은다. 생각이 아랫배에 집중된다. 짜증이 날 때도 차수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하루 10분 정도 차수를 하면, 마음이 고요해질 뿐만 아니라 건강도 좋아지는 걸 느낄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하심이 가장 어려워
 
제일 안 되는 게 하심이다. 묵언과 차수는 겉으로 드러나지만 하심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그 사람이 하심하고 있는지 모른다. 상대방이 모를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잘 모른다. 생각으론 하심하겠다고 하지만 잘 안 된다. 내가 잘났다는 마음이 곧바로 고개를 쳐든다. 하심은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것이고 겸손한 것이다. 자신이 하심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한 가지 방법은, 자기 주장을 얼마나 강하게 하느냐다. 자기 생각만 옳고 상대방의 생각은 틀렸다고 생각되면 하심하지 않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상대방과 대화할 때, 내 생각이 언제나 틀렸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상대방의 말에 온 마음을 기울여 듣는다면 하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해인사 4박 5일 프로그램은 매우 힘들었다. 그래도 묵언·차수·하심을 배운 건 내 인생에 있어서 커다란 전환점이었다. 비록 실천 하긴 어렵지만, 지금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김종명 - 리더십코칭연구소 대표, 코칭경영원 파트너코치다. 기업과 공공기관, 대학 등에서 리더십과 코칭, 소통 등에 대해 강의와 코칭을 하고 있다. 보성어패럴 CEO, 한국리더십센터 교수를 역임했다. 저서로는 [리더 절대로 바쁘지 마라] [절대 설득하지 마라] [코칭방정식] 등 다수가 있다.
 
김종명 리더십코칭연구소 대표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