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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기의 시시각각] 또다시 강경화와 올브라이트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지난 6월 이 칼럼난에 ‘강경화는 올브라이트가 될 수 있을까’란 글을 썼다. 70년 외교부 사상 첫 여성장관이 된 강경화가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80)처럼 우뚝 서길 기대하는 마음에서였다. 올브라이트는 각종 조사에서 ‘최고의 국무장관’으로 꼽힌다. 우연히도 취임 100일 만인 지난달 25일 강 장관은 워싱턴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주최 토론회에 초청받아 올브라이트와 자리를 함께했다. 사회는 주한 대사로 유력한 빅터 차 CSIS 한국석좌.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주인공은 올브라이트였다. 내공에선 자신감이, 유머에선 촌철살인이 넘쳤다. 강 장관에겐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 격차가 컸다. 기억에 남는 몇 마디를 옮겨 본다.

워싱턴에서 마주한 첫 여성 외교장관
“우연은 축적된 필연의 결과” 새겨야

 
지난달 25일 워싱턴의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강경화 외교부장관(왼쪽)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이 대담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워싱턴의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강경화 외교부장관(왼쪽)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이 대담하고 있다.

 
먼저 인사말. “강 장관 본인은 모르겠지만 (강 장관이) 나를 살려준 적이 있다. (2000년 방북해) 김정일과 저녁을 먹는데 갑자기 ‘김대중 대통령 통역사와 비교해 내 통역사 수준이 어떠냐’고 김정일이 물었다. 난 ‘자칫 잘못 답했다간 이 통역사가 죽을 수도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난 ‘김대중 통역사(강경화)는 여성 통역사로는 내가 이제까지 본 사람 중 최고’라고 답했다(김정일 통역사는 남성이었다).”
 
북·미 간 ‘말폭탄’ 공방에 대해선 북한과 미국에 핵심을 짚은 경고를 던졌다. “유엔에서 연설한 북한 대표에게 감사드린다. 그는 내가 40년 젊게 느끼게 해줬다. 그건 (40년 전) 냉전 시대에나 나오는 연설이었다.” “우리(미국)는 이 시점에서 레토릭(수사)을 늘릴 때가 아니다. 실제 일을 해야 한다.”
 
‘실책’도 솔직히 털어놓았다. “데니스 로드먼(전 미 프로농구 선수) 일은 모두 내 잘못이다. (2000년 방북 당시) 김정일에 대해 우리가 유일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건 농구와 마이클 조던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조던이 방북을 거부해) 로드먼과 조던의 사인이 들어간 농구공을 가져 갔다.” 얼떨결에 ‘대타’로 로드먼을 데려갔지만 이후 그가 김정은의 친구이자 친북 인사가 돼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데 대한 회한이었다. 북한 문제에서 소신 없이 임시방편으로 일을 그르쳤다간 두고두고 후회하게 된다는 조언이기도 했다.
 
올브라이트는 ‘여성 강 장관’에 대한 격려로 끝을 맺었다. “내가 유엔대사로 갔을 때 (미 유엔대표부 직원) 138명 중 6명만이 여성이었다. 그들을 우리 집으로 초대했고 우리는 스스로를 ‘G7(주요 7개국)’이라 불렀다” “내가 국무장관이 되자 국무부 내에선 ‘카풀 엄마’로 알고 있던 내가 장관이 된 걸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미국이란 큰 영문 글씨가 새겨진 비행기를 타고 다니고, 외교정책을 논하려면 나를 만나야만 한다는 사실을 모든 이들이 알게 됐다.” 여성편견의 벽을 넘어서기 위해선 결국 자력으로 승부를 걸고 극복할 수밖에 없다는 냉엄한 현실을 올브라이트는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 강 장관에게 주입했다.
 
취임 초 눈치 보던 외교부 관료들이 슬슬 강 장관 길들이기, 고립시키기에 나서고 있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강 장관이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외교부 혁신 로드맵’도 밋밋하게 끝났다. 잇따른 국장급 간부, 신임 주중 대사의 돌출 언행에도 장관은 속수무책이다. 또 다시 올브라이트. 그녀는 자서전에서 “우연이란 축적된 필연의 결과”라 했다. 우연처럼 보일지 모르나 결과는 늘 고뇌·도전·노력한 만큼 나타나게 돼 있다는 얘기다. 취임 100일 남짓. 아직 강 장관의 ‘필연’은 잘 보이질 않는다. ‘한국의 올브라이트’는 역시 그냥 되는 게 아니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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