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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통영 가는 길

송호근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서울대 교수

송호근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서울대 교수

통영 가는 길은 멀었다. 섬진강을 남하해 순천에 닿았다. 강 하구를 건너 하동에 머물렀다가 사천으로 옮겼다. 매년 해 오던 박경리 선생 묘소 참배가 올해는 이리 늦었다. 늦은 김에 한반도 서남부를 둘러 왔는데 강마을과 길섶엔 가을이 영글었다.
 

박경리 묘소 참배하러 간 통영 길
전쟁 상흔 안고 산 문인 많은 남도
이청준·이병주·박경리 작품 속
문학의 바다는 전쟁 회한 씻는데
핵이 키운 남북 원한 언제 풀릴까

차창 풍경은 공포의 언어들로 자주 일그러졌다. 수소폭탄, 핵잠수함, 죽음의 백조 같은 쇠붙이 단어가 가을 강, 벼이삭, 감나무 같은 계절 언어를 산산조각냈다. 강마을은 정취를 주지 못했고, 이른 어둠이 하구 노을을 빨아들였다. 추심(秋心)에 전쟁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전쟁을 겪은 세대(世代)가 손자 세대를 낳아도 증오의 기억이 선혈처럼 지피는 우리의 현실을 기어이 인정해야 하는가. 문중(門中)의 원한은 삼대가 지나면 소멸되거늘, 재발을 거듭하는 민족의 원한은 달이 차고 이울수록 점멸하는 까닭을 알 수 없었다. 외교책략가와 국제전문가들이 기발한 지략을 짜내도 서민들의 얼굴에 쏟아지는 공포의 언어를 걷어내지 못한다. ‘한·미 동맹을 깨더라도 한반도 전쟁은 안 된다’는 문정인 특보의 공언(公言)은 전쟁을 억제하는 말인지, 전쟁을 부추기는 말인지 알쏭달쏭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말했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고. 전쟁은 모든 생명체의 발아와 생장의 스토리를 짓밟는다. 전의(戰意)의 진정제, 전운(戰雲)의 항생제가 그 사소한 얘기들에 들어 있음에도 말이다. 남도(南道)엔 전쟁 상흔을 안고 살아온 문인이 많다. 소설가 정지아의 부모는 빨치산이다. ‘빨치산의 딸’은 남부군 정치위원 출신 노모를 모시고 구례에 산다. 남로당 도당위원장 아버지가 묻힌 계곡에서 지척이다. 상복이 터진 소설가 한강의 아버지 한승원은 ‘물에 잠긴 아버지’ 얘기를 썼다. 남한의 모스크바로 불렸던 장흥군 유치면 일대를 장악했던 유격대 아버지는 일본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였는데 6·25 때 행방불명됐다. 후손이 평생 감당한 사상적 혐의의 현실적 고통은 장흥댐 물에 잠겼다. 역시 장흥 출신 작가 이청준, 구순 노모를 모시며 부친이 남긴 짐을 글로 다스려야 했다.
 
송호근칼럼

송호근칼럼

섬진강 하구를 건너면 하동이 있다. 『지리산』 『관부연락선』의 작가 이병주가 태어난 곳, 해방공간에서 민족 구원의 불꽃을 피웠던 열혈 학병 세대를 배출한 고장이다. 더러는 지리산으로 갔고, 더러는 시정(市井)에 남았다. 학병 출신인 작가는 학병 세대의 이성과 윤리가 속절없이 좌절되는 광경을 소설로 구제하고 싶었다. 일제 말에서 해방 10년, 식민의 압살과 전쟁으로 일그러진 그 기막힌 공간이 이성적 사유를 짓뭉갠 지형을 그렸다. 후대의 정치가 애국과 반역으로 공식 판별한 그 갈림길의 운명적 선택에 숨겨진 개별 인간들의 스토리로 소설적 역사를 새로 썼다. 역사는 재단하고, 문학은 치유한다.
 
전쟁의 회한은 과연 문학의 바다에서 치유되는가? 진주를 거쳐 통영으로 가는 길에 문득 그런 의문과 조우했다. 작가 박경리도 씻을 수 없는 전쟁의 상흔을 안고 살았다. 6·25가 발발하고 인천 전매청에 출근한 남편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노량진과 마포를 헤맸으나 허사였다. ‘축제와 같이 찬란한 빛이 출렁이고 시끄러운 소리가 기쁜 음악이 되어 가슴을 설레게 하는 곳’ 시장(市場)에서 그녀는 따스한 인정을 건지며 살고 싶었다. 그러나 전장(戰場)이 그 소박한 꿈을 부쉈다. 북에서 온 장교 ‘기훈’이 애인 ‘가화’를 쏘고 자신도 스러지는 『시장과 전장』의 마지막 장면은 혼(魂)의 전화(戰禍)를 묻은 작가의 제례였다.
 
제례 뒤엔 화해가 따른다. 화해의 문을 여는 그 떨리는 손으로 작가는 기어이 『토지』를 완성했다. 작가가 생전에 말했다. ‘거제도 너른 들 가을 벼의 노란색과 호열자가 번져오는 죽음의 핏빛’이 겹쳐 생명에 눈을 떴다고. 민초들의 사소한 삶과 사연이 응축돼 마을의 내력을 이루고, 그 지류들이 서로 얽혀 대하로 흘러간다. 문학은 원한을 증류하고 피곤한 영혼을 적신다. 전쟁을 진정시키는 진짜 힘이 거기서 나온다.
 
북한은 핵무기로 원한을 증폭시켰다. 오늘날의 현란한 사상체계나 전략적 구상도 이 기억의 비틀림을 정상적으로 돌리는 데 실패했다. 새 한 마리 겨우 앉을 공감대를 구축하지도 못했다. 이쪽의 손자 세대는 공포를 이고 살고, 저쪽의 손자 세대는 전의를 불태운다. 모두 전쟁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인데, 공포와 전의는 통제되지 않는다.
 
이 집단화된 갈림길, 두 개의 대립된 역사를 문학의 보(褓)에 싸서 발효하면 증손자 세대가 서로 만나 춤출 그런 지평이 열릴까. 적어도 오늘 밤 떠오를 추석 달은 남북한을 골고루 비출 터이다. 통영 가는 길은 멀고 막막했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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