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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의 정석]①일상지존-대한민국 대표 버스기사는 누구?

“당신은 왜 일하십니까?”
우리가 지나쳐보던, 우리들의 일 이야기를 전합니다. 첫회는 우리 곁에 숨어있는 고수, '일상지존'들의 이야기입니다. '스압(스크롤 압박)' 주의! 일상 고수들의 이야기를 더 보고 싶으시다면 중앙일보 웹과 앱에서 '직업의 정석'을 검색해 주세요.
특별취재팀=김현예·정선언·정원엽 기자, 사진 우상조 기자, 디자인 김은교, 영상 조수진 hykim@joongang.co.kr
 
나는 축구 국가대표 버스기사 장승찬입니다   
이 간절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옳을까. 그저 28석짜리 평범한 버스일 뿐인데, 이 버스에 오르는 순간 모든 행위는 ‘의식’이 된다. 오른발을 먼저 올릴 것인가, 왼발을 먼저 올릴 것인가. 이 버스 승객들은 징크스 때문에 버스에 올라설 때 내딛는 발의 순서에까지 의미를 부여한다. 바로 가슴팍에 태극기를 단, 국가대표 축구선수들이다. 이 특별한 승객과 15년째 함께 하는 있는 기사 장승찬(60·대한축구협회 부장)씨를 지난달 19일 경기도 파주 국가대표팀 트레이닝센터(NFC)에서 만났다.
 
대표팀 기사로 산다는 것
“저는 제 직업이 자랑스럽습니다. 대한민국에 버스기사는 정말 많잖아요? 그런데 이런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자신감인데, 35년 무사고 운전경력이 자랑스러워요. 그래서 사람들이 저에게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저는 자랑스럽게 답합니다. 운전기사라고요.”
국가대표팀 버스기사로 일하며 습관이 늘었다. 새벽에 눈 뜨면 제일 먼저 차를 둘러본다. 밤새 혹시 기름이 새지는 않았나, 타이어는 괜찮은가 체크하는 것이다. 점심 먹고 차 한 바퀴 돌고, 저녁 먹고 차 한 바퀴를 돌아야 안심이 된다. 경기장으로 향하는데 타이어가 펑크나거나 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노이로제라고 하는데 저는 직업의식이라고 생각해요. 선수들이 차를 탈 때가 되면 미리 차에 가서 시동을 걸어놓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온도를 맞춰놔요. 온도는 27도로 일정하게 유지합니다. 선수들이 한바탕 뛰고 나면 기력이 떨어지잖아요. 그때 혹시 감기라도 걸리면 안 되니까 늘 차 온도도 신경을 쓰죠.”
 
버스를 몰고 경기장으로 향하는 날엔 긴장이 극에 달한다. 앞에는 에스코트 차가 있지만, 뒤를 지켜주는 차는 없다. 만에 하나 어떤 차가 뒤에서 들이받기라도 하면 말 그대로 악몽이다.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에 따르면 선수들이 경기장에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면 3대 0으로 ‘몰수 게임’ 패를 당한다.  
“저 때문에 선수들이 경기 못가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르지요. 대표팀 버스를 몬 뒤로는 졸려웠던 적이 단 한번도 없어요. 졸래야 졸 수가 없는거죠.”
  
인터뷰 원문보기
[직업의 정석]"내가 지면 몰수게임" 나는 태극전사 버스기사 장승찬입니다
나는 왜 일하는가
 행복하기 때문에 일해요. 행복해지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요. 대표팀 선수들을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배운 것이 하나 있어요. 노력한 사람이 성공한다는 거에요.  
축구협회에 있으면 청소년 대표 선수들부터 보기 시작하는데, 이 아이들은 모두 특출난 아이들이잖아요. 재능을 타고난 축구선수들이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청소년대표를 했다고 반드시 국가대표 선수가 되는 건 아니라는 거에요. 대표팀은 연령별로 뽑는게 아니니까, 최정상에 오른 선수만 할 수 있어요. 최정상에 오른 선수들은 공통점이 있어요. 바로 노력하는 사람들이라는 거에요.  
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취직할 때는 '취직만 되면 열심히 살아야지' 생각합니다. 그런데 막상 취직이 되면 초심을 잃어요. 그리고는 높은 곳을 보지요. 정말 높은 곳을 가려면 내게 주어진 것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을 잊는 거죠. 주어진 것부터 최선을 다하면 길이 생겨납니다.  
저는 곧 정년이예요. 그때까지 지금처럼 소신껏 일할 겁니다. 운동장에서 공도 줍고, 선수들이 목탈 것 같으면 음료수도 옮겨다주고요. 가족같은 선수들이 편안하게 느낄 수 있도록, 다음 올림픽까지 최선을 다할겁니다.
 
 
 나는 "대한민국 최고 구두닦이" 성오봉입니다
 
찌든 땀 냄새, 반들반들해지도록 닳아버린 뒤축…. 구두에는 사람들의 고단한 삶이 담겨 있다. 성오봉(55) 씨는 그 구두를 통해 엿보는 사람들의 사연을 외면하지 못한다. 한 켤레 3000원짜리 구두 수선을 맡으면, 서비스로 ‘파리도 미끄러지게’ 번들번들 광을 내어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스로 ‘예술가’라고 부르는 낭만 구두닦이. 그는 오늘, 왜, 일하고 있을까.
 
여섯 형제 중 다섯째인 그는 늘 형들에게 맞고 자랐다. 공부 안 한다고 때리고, 항아리에 물을 길어 놓지 않았다고 때리고…. 학교에서도 동네북 신세는 마찬가지였다. 담임 선생님도 육성회비를 안 가져온다고 그를 때렸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다. 어머니 혼자 아들 여섯을 먹여 살렸다. 맞기 싫어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왕십리 중앙시장 식당에서 깡통밥을 얻어먹으며 버텼다. 어깨너머로 배운 구두닦이 기술로, 종로3가 피카디리극장 길바닥에 앉아 구두를 닦았다.  
 
인생의 전환점은 27살에 찾아왔다. 정확히는 아내, 박임숙(46)을 만나면서부터였다. 여자에겐 건축 일을 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직업이 '구두닦이'라고 말하는 게 부끄러웠다. 그렇게 3개월을 속였다. 명동의 한 사우나에서 일할 때여서 저녁마다 깨끗하게 씻고 구두약 냄새를 뺀 다음 데이트를 했다. 서로 죽고 못사는 사이가 됐을 때, 장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했다. 구둣방 차릴 목돈이 없어서 '출장 구두닦이'를 했다. 수금이 잘 안돼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받아쓰다가 신용불량자가 됐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빚은 5000만원. 눈앞이 캄캄했다.  
 
그를 일으킨 건 아내였다. 구두닦이를 돕겠다고 나섰다. 눈썰미가 좋은 아내는 사람들의 발모양을 외웠다. 엄지발가락이 튀어나온 사람, 신발 밑창이 삐딱하게 기운 사람…. 신발 형태로 신발 주인을 기억했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슬리퍼만 신고 사계절을 버티며 일했다. 옷도 만원 넘는 것은 사지도 입지도 않았다. 신용불량자라는 사실을, 초심을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굽 갈이 하나에 3000원을 받았는데, 굽 수선만 해줬을 때 손님 얼굴과 '서비스'로 반질반질 윤나게 구두까지 닦아 줬을 때 손님 표정이 달랐다. 공짜로 구두를 닦아주기 시작했더니, 입소문이 났다. 신발은 ‘작품’이다. 수선이 정확해야 발이 편하다. 연습 밖에 답이 없었다. 가게 문을 닫은 뒤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인터뷰 원문보기
[직업의 정석]나는 "대한민국 최고 구두닦이" 성오봉입니다
나는 왜 일하는가
 처음에는 가난을 대물림해주기 싫어 이를 악물고 일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내가 일해서 가정이 행복하고, 손님이 행복하다.  
돈이 먼저가 아니다. 사람이 먼저다. 남보다 싸고 깨끗하게 해줘야 손님이 행복하다. 손님이 행복하면 나 역시 내 일에 자부심을 느낀다. 나는 구두닦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최고 구두닦이라고 생각한다.  
일하기 싫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순간도 없다. 다 떨어지고 갈라진 신발을 새 신발처럼 바꿔 놓으면 짜릿하다. 손님과 약속을 지켰으니까.
꿈도 있다. 나이가 조금 더 들면 소외계층에게 내 기술을 전수해 자립을 돕고 싶다. 구두닦는 것은 이론으론 안되는 것이라 직접 가르쳐줘야 한다. 우리 부부는 지금도 하루 300켤레의 신발을 닦는다. 나는 구두닦이다. 예술 작품을 만드는 구두닦이.  
 
나는 '금(金)발'을 만드는 사나이 유오상입니다 
서울 노원구 월계동에 있는 삼덕스포츠. 사람들은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스케이트 화를 맞추러 이곳을 찾는다. 그리고 47년째 스케이트 화만 만들고 있는 '구두장인' 유오상(66) 대표에게 발을 맡긴다. 그의 손에서 태어나는 선수용 스케이트 화는 많아야 한 달에 4켤레다.
 
김동성 선수와의 인연
스포츠화 회사에서 일하던 유 대표는 부도난 회사의 기계를 넘겨받으며 회사를 차렸다. ‘기술·사람·신용을 지키자’는 뜻에서 이름을 삼덕(三德)스포츠라고 지었다.  
회사를 차리고 일년 뒤. 당시 쇼트트랙 간판선수였던 김동성(37)이 찾아왔다. 스케이트 화가 맞지 않아 발이 아프니 손을 봐달라고 했다. 들고온 제품은 일본 회사 것이었다. 
“보통 스케이트 화는 가죽이거나 양조피혁으로 만드는데 그 스케이트 화는 특이하게 섬유로 만들어져 있었어요.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어디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김동성 선수에게 물었죠. ‘이거 내가 만들면 쓸거냐’고요.”
 
그는 밤낮 없이 연구를 했다. 문제의 섬유가 강철보다도 강한 탄소섬유라는 것을 알아내는 데만 6개월이 걸렸다. 결국 그가 스케이트 화를 직접 만들어내자 거래처에서 ‘투자금을 대겠다’고 나섰다.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1000m 남자 쇼트트랙 경기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2위로 달리던 김동성 선수가 결승점에서 앞서 달리던 중국 선수를 간발의 차이로 제치고 금메달을 땄다. 그때 김 선수가 신고 있던 게 유 대표의 스케이트 화였다. 이후 국내 간판 선수들이 하나 둘 그가 만든 스케이트 화를 찾기 시작했다. 2014년 소치올림픽 때는 쇼트트랙 메달리스트의 절반이 그가 만든 신발을 신었다.  
 
최순실이 던진 돌 
삼덕스포츠 작업장 겸 사무실 한켠에는 스케이트 화가 가득 담긴 박스가 있다. “이렇게 쌓여있으면 안 되는 건데….” 유 대표는 한숨을 쉬었다.   
그가 만든 수제화는 한 켤레에 기백만원씩 한다. 요즘 넘쳐나는 값싼 중국산을 이기기 힘들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며 손님 발걸음이 더 줄었다. 승마선수였던 정유라 탓에 체육특기생들의 학사관리가 깐깐해진 영향이다. 스케이트 선수를 꿈꾸는 학생들이 대회 나가는 게 쉽지 않아졌고, 부모들은 고가의 수제화 사기를 꺼렸다. 선수들의 발 사이즈를 잰 노트를 한참 만지작거리던 그는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힘닿는 데까지 계속 할 거에요. 이 문 열고 들어오는 선수들이 있는 한, 끝까지요.”
 
인터뷰 원문보기 
[직업의 정석] '금발'을 만드는 손, 나는 구두장이 유오상입니다
 
나는 왜 일하는가
선수들이 발목을 어떻게 사용하고, 코너를 어떻게 도는지 연구하려고 사진을 찍어요. 사진을 찍으면서 알게 된 게 하나 있었어요. 선수들이 결승점에 도달할 때 쯤, 얼굴이 평상시와 다르게 기묘하게 일그러져요. 0.01초를 앞당기려고 온힘을 쏟아붓기 때문이예요. 그 찰나의 순간, 정말 바닥부터 힘을 끌어올리다보니 애절한 표정이 나오는 거죠. ‘아, 저 순간을 위해 오랜 시간을 참고 준비하는 거구나’ 싶었어요.  

 
제가 하는 일은 선수들의 발을 재고, 석고틀을 만들어 모양에 맞게 깎고, 가죽을 재단해 이어붙이는 거예요. 일 자체를 보면 하루 종일 작업대 앞에 쭈그려 앉아 하는 거니 힘들지요. 너무 힘드니까 다음 올림픽까지만 하자, 다음 올림픽까지만 하자 하며 버텼어요.  
 
근데 사실은 재미있어서 일 하는 것 같아요. 일을 하니 돈을 벌 수 있고요, 선수들이 찾아와 ‘경기력이 좋아졌다’고 하면 그게 참 보람있어요. 요즘 친구들, 직업을 선택할 때 돈만 벌려 드는 경향이 있잖아요. 내가 무엇을 해야 재미있을까를 먼저 찾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돈이 따라오거든요.  
 
운동 선수들은 세계 최정상에 오르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에요. 독일 국가대표가 일부러 신발을 맞추러 저를 찾아와요. 앞으로도 이런 선수들이 앞다퉈 찾아오는 곳으로 만들자, 믿음을 주는 사람이 되자고 생각해요. 욕심내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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