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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이자 계산 실용적 필요 따라 방정식 이론 발전

[수학이 뭐길래] 미지수 x·y 값 구하기
그레고르 라이쉬의 『지혜의 진주』(1504) 속 ‘산술의 은유적 표현’ 삽화. 그림 왼쪽에는 인도 아라비아 숫자를 써서 『수론』을 집필한 로마의 저술가 보에티우스가 숫자와 기호를 이용해 계산하고 있고, 오른쪽에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였던 피타고라스가 주판을 사용해 계산하고 있다. 이 시기에는 새로운 산술 방식이 전통적인 주산 방식과 서로 경쟁하고 있었다.

그레고르 라이쉬의 『지혜의 진주』(1504) 속 ‘산술의 은유적 표현’ 삽화. 그림 왼쪽에는 인도 아라비아 숫자를 써서 『수론』을 집필한 로마의 저술가 보에티우스가 숫자와 기호를 이용해 계산하고 있고, 오른쪽에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였던 피타고라스가 주판을 사용해 계산하고 있다. 이 시기에는 새로운 산술 방식이 전통적인 주산 방식과 서로 경쟁하고 있었다.

중학교에서 다양한 1·2차방정식을 풀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3차 이상의 방정식도 접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른이 된 성인들은 2차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기억하고 있을까? 2차방정식의 근의 공식은 쉽게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 워낙 열심히 외워야 했으니까. 그렇다면 3차방정식의 근은 어떤가? 이쯤 되면 방정식을 왜 공부해야 하는지 궁금할지도 모르겠다. 중·고교 시절 우리를 괴롭혔던 방정식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학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르네상스 이르러 상업·무역 활발
다른 지역 간 화폐 교환 위해서
화폐의 귀금속 무게·순도 따져야

복리 이자로 갚아야할 만기 금액
고차방정식 통한 계산 불가피

음수·무리수·복소수 문제 나오고
이후 함수·미적분 연구로 이어져

 
고대 천문·기하학 풀이에도 응용
우리는 1차방정식 문제들을 매일같이 접하고 있다. “아침 8시 반까지가 출근 시간인데, 지금이 7시 10분이면 출근까지 몇 시간 남은 걸까”라는 생각을 한다고 하자. 남은 시간을 x라고 둔다면, ‘7시 10분+x=8시 30분’이라는 간단한 1차방정식 문제를 풀어야 한다. 따라서 1차방정식을 의미하는 문제들은 이미 고대 이집트나 바빌로니아 문명에서도 존재했다. 다만 그것이 현대 방정식 이론과 다른 점이라면, 지금처럼 문자나 기호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2차방정식으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2차방정식을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2차방정식 이상의 고차방정식 개념이 고대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풀이 방법이 지금과는 약간 달랐고, 천문학이나 기하학 연구와 연관된 경우가 많았을 뿐이다. 가령, 원에 내접한 정오각형의 대각선의 길이를 구한다고 해 보자.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였던 프톨레마이오스는 행성이 지나간 거리 등을 계산하기 위해 행성 궤도인 원에 내접하는 선분의 길이를 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령, ‘프톨레마이오스의 정리’에 따르면 오른쪽 그림의 경우 AC×BD=AB×CD+BC×AD가 성립한다. 이때 정오각형을 원에 내접시키면, 정오각형의 한 변의 길이를 알 때 ‘프톨레마이오스의 정리’를 이용해 대각선의 길이를 구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오른쪽 그림의 선분 AB를 a라고 하고, 대각선 AD를 x 라고 하면 x2=a2+ax가 되어 대각선의 길이 x에 대한 2차방정식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기하학적 방정식 풀이는 유클리드의 『원론』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기하학적으로 논의되던 방정식 연구는 3세기 알렉산드리아의 디오판토스에 이르러 현대의 방정식 연구와 보다 비슷해지기 시작했다. 디오판토스는 자신의 책 『산학』에서 단어를 축약해서 기호로 표현하고 대수적인 방식으로 방정식을 풀이했다. 가령, x+y=10이고, x2+y2=68인 x, y를 구한다고 하자. 이때 디오판토스는 x, y를 각각 5+z, 5-z로 놓는다. 이럴 경우 각각을 제곱해서 더하면 50+2z2=68이 되고, 양의 정수인 z를 구하면 3이 나온다. 디오판토스의 방식을  x+y=a, x2+y2=b인 경우로 확장하면, 현대식 기호로 쓸 때 , x=+, y=-과 같은 방식으로 일반해를 구할 수 있다. 디오판토스의 연구와 함께 헬레니즘 세계에는 대수적인 방정식 풀이가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디오판토스의『산학』은 유클리드의 『원론』 등과 함께 아랍어로 번역되어 아랍 학자들의 대수학 연구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편, 아랍에서는 인도 수학자들의 연구 역시 소개됐다. 인도에서는 행성 궤도의 주기를 연구하면서 방정식을 푸는 경우가 많았다. 7세기 인도의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였던 브라마굽타는 이 과정에서 2차방정식 ax2+bx=c의 한 근을 구하는 방법을 설명했다. 그는 한 근이 현대의 방식으로 표기될 때 x=라고 보았는데, 음수와 무리수가 나오는 경우에도 해로 인정하였다. 또한 ax2±c=y2형태의 이차방정식에 대해서도 해를 제시했다.
 
이러한 그리스 수학과 인도 수학의 영향 속에서 이후 아랍 수학자들은 대수학 연구를 발전시켜 나갔다. 수학과 천문학 등을 연구했던 알콰리즈미의 『대수학』(830)은 대표적인 성과였다. 그는 이 책에서 인도에서 도입된 수와 0을 이용해 십진법으로 사칙연산을 정의했고, 더 나아가 다양한 유형의 방정식 풀이 방법을 정리했다. 그는 2차방정식을 총 다섯 가지 유형(ax2=bx ; ax2=c ;ax2+bx=c ; ax2+c=bx ; ax2=bx+c)으로 나눠 계산법을 증명했다. 편리한 수 체계와 계산 방법을 담은 알콰리즈미의 책은 아랍 세계에 널리 받아들여졌다. 
 
이후 아랍에서는 오마르 카얌 같은 수학자에 의해 대수학 연구가 더욱 발전하였다.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였던 카얌은 연구 과정에서 3차방정식 해법을 발견했고, 이를 열네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기하학적으로 증명했다. 가령, x3+200x=20x2+2000과 같은 3차방정식을 카얌은 (x-15)2+y2=25라는 원과 y=인 쌍곡선의 교점을 통해 구했다. 카얌은 대수학이 길이나 넓이, 부피 그리고 무게 같은 물리적인 양을 다루는 데 유용한 실용적인 분야라고 보았다.
 
아랍에서 다양한 학자들에 의해 수준 높은 대수학 연구가 발전하는 동안, 서유럽에서는 여전히 로마 숫자 시스템과 유클리드 기하학 정도가 다루어지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서유럽에서는 상업과 무역이 발전하면서 복잡한 계산이 필요하게 됐다.
 
피보나치가 인도 아라비아 숫자 체계와 대수적 연산 방법을 서유럽에 소개했던 것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였다. 피보나치는 『계산책』(1202)에서 이자율을 알 때 이자 계산을 어떻게 하는지, 환율에 따라 통화 환전은 어떻게 하는지 등 실용적인 문제에 관한 계산 방법을 자세히 설명했다. 『계산책』은 중세 서유럽에서 출판된 수학서 가운데 가장 중요한 책 중 하나로, 이 책의 계산 방식은 이후 상업과 무역이 발전하던 서유럽 사회에 널리 영향을 미쳤다.
 
 
제각각인 포도주 양·품질 따져 세금 계산
마리누스 판 레이머스발, ‘환전상과 그의 아내’(1539). 이 그림이 그려질 당시 네덜란드는 유럽 무역 및 상업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그 결과 이 시기 네덜란드에는 영국·이탈리아·프랑스 등 각국의 상인들이 몰려들었고, 각국의 화폐를 교환해 주기 위한 환전상이 늘어났다.

마리누스 판 레이머스발, ‘환전상과 그의 아내’(1539). 이 그림이 그려질 당시 네덜란드는 유럽 무역 및 상업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그 결과 이 시기 네덜란드에는 영국·이탈리아·프랑스 등 각국의 상인들이 몰려들었고, 각국의 화폐를 교환해 주기 위한 환전상이 늘어났다.

유럽 경제가 성장하고 무역이 확대되면서 효율적인 실용 계산의 필요는 더욱 증가했다. 중세에는 물품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었으므로 상대적으로 계산이 간단했다. 그러나 르네상스기에 이르러 화폐 경제가 성장하면서 복잡한 계산이 늘어났다. 이 시기에는 도시가 발전하면서 세금을 정확하게 계산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는데, 이 문제가 상당히 까다로웠다. 포도주의 경우 양과 품질 그리고 통의 크기와 모양 등이 서로 달랐다. 만약 한 가게가 거래한 포도주에 대해 세금을 물리려고 하면 거래된 포도주의 양을 정확하게 계산하는 것은 물론, 품질과 가격 등을 고려해 세금을 공정하게 부과해야 했다. 포도주를 거래하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닌 상황에서, 각기 다른 포도주 통을 사용하고 다양한 품질과 가격을 지닌 포도주 가게에 대해 공평한 세금을 물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역이 발달하면서 상인들 간의 교환 문제 역시 복잡했다. 르네상스기를 통해 상업과 무역이 활발해지고 있었으나 도시마다 나라마다 통화시스템이 서로 달랐다. 이런 상황에서 각기 다른 통화 시스템에 적응하는 것은 무역상들에게 골치 덩어리였다. 우선 다른 지역의 화폐와 교환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화폐에 쓰인 귀금속의 무게와 순도 등을 고려하여 환율을 계산해야 했다. 어렵게 환율 계산을 해도 이것이 고정되지 않고 계속해서 변화했다. 상품을 지급한 날과 돈을 받는 날의 환율이 다를 경우, 복잡한 계산이 이루어져야 했다.
 
또한 거래량이 많은 대상인의 경우에는 매번 환율을 계산하여 현금을 지급하는 것이 번거로운 일이었으므로, 어음으로 거래하는 신용 거래를 선호했다. 그러면서 어음을 현금으로 바꿔 주는 시장도 생겼다. 그런데 신용 거래를 위해서는 그날의 환율과 어음 만기일 등을 고려해 복잡한 계산을 해야 했다. 이외에도 금융 시장이 형성되면서 이자 계산 문제가 중요하게 대두되었다. 이자를 계산하는 방법도 단리와 복리의 경우가 달랐고, 매달 일정액을 갚는 경우와 한꺼번에 갚는 경우의 이자가 달랐다. 꼼꼼한 회계 관리나 장부 정리 없이는 원활한 사업이 힘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수학 계산에 능숙한 부기 계원이나 회계원들은 각 나라와 도시의 정부나 무역상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존재였다. 그러나 이들의 계산 능력은 동일하지 않았다. 문제가 너무 복잡했기 때문이었다.  복리 이자로 갚아야할 만기 금액을 계산할 경우 곧바로 고차방정식 문제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다. 이 시기 공개 수학 대결이 잦았던 것은 바로 그래서였다. 실용 수학자들은 자신의 수학 계산 실력을 뽐내기 위해 공개석상에서 상대방에게 수학 문제를 내고 더 많은 문제를 푸는 대결을 진행했다. 특히 이 시기에는 상인 자녀들을 위해 실용 수학을 가르치는 학교가 늘어났는데, 수학 교사들은 자신의 수학 실력을 뽐내기 위해 수학 대결에 자주 나섰다. 뛰어난 계산 능력이 입증될 경우, 보수가 오르거나 더 좋은 보수를 받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방정식 풀이는 실용 계산의 목적에서 발전됐다. 그들은 행성 운동을 연구하면서, 혹은 환율과 이자를 계산하고 신용장과 환어음을 만들면서 방정식 이론을 발전시켜 나갔다. 이 과정에서 음수나 무리수 그리고 복소수 문제가 제기되었던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방정식 연구가 결국엔 이후 함수와 미적분 연구로 이어졌음을 감안하면, 실용적인 필요가 수학 발전의 중요한 원동력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교과서에서 배우는 수학이 어떻게 생겨났고, 왜 배우는지를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다양한 사회적, 학문적 필요 속에서 개발되고 발전되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조금은 인내하기가 더 편해질지도 모르겠다.
 
 
조수남 수학사학자 sunamcho@gmail.com
서울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박사. 현 서울대 강사이다. 과학사와 수학사를 연구하고 있다. 고등과학원 초학제연구단에서 연구했으며, 『욕망과 상상의 과학사』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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