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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의 상징' 공관병 역사 속으로

"나 태어난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

꽃 피고 눈 내리기 어언 삼십년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나 죽어 이 흙 속에 묻히면 그만이지.
꽃 피고 눈 내리기 어언 삼십년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나 죽어 이 흙 속에 묻히면 그만이지."
 
김민기가 짓고 양희은의 노래한 ‘늙은 군인의 노래’다. 한때 내 심정을 이 노래 가락에 실어 부르자면 이렇다.
 
 
 
 
 

"나 태어난 이 강산에 공관병이 되어

욕 먹고 구박 받은지 어연 21개월
무엇을 하였으나 무엇을 바라느냐
전역해 얼굴 안보고 잊으면 그만이지." (‘젊은 공관병의 노래’)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나는 공관병이다. 얼마전까지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만 인정하던 나를 이제는 누구나 알아본다. 이 모든 게 한 대장 부부 덕분이다. 높은 인지도를 누릴 만한 즈음에 나는 역사 속으로 퇴장한다. ‘젊은 공관병의 노래’는 부를 필요도 없게 됐다. 국방부가 나, 공관병을 영원히 없애기로 하면서다.

 
나는 대한민국 건장한 청년으로 입대한 군인이다. 그러나 동시에 집사이며 하인이며 몸종이었다. 때론 나도 헷갈렸다, 내가 지키는 게 대한민국인지, 아니면 지휘관의 심기인지를.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다른 이들은 ‘꿀 빠는 보직’이라며 부러워들 한다. 친자식처럼 아껴주는 대다수 지휘관들을 모신다면 실제로 그러했다. 그러나 모진 지휘관을 만나면 지옥이 오히려 부러운 신세가 된다.
 
나는 내 나이를 모른다. 다들 국군과 같이 태어났다고들 생각한다. 군 부대는 대개 외진 곳에 있다. 가족과 떨어져 사는 지휘관을 배려해서 내가 생겨났다. 나의 첫째 임무는 군 지휘관이 퇴근 후에도 24시간 부대와 연락를 유지하는 것이다. 공관을 관리하는 임무, 더 쉽게 말하자면 공관에서 밥 짓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일은 기타사항이었다. 그러나 어느새 제1 임무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기타사항이 제1 임무로 뒤바뀌었다. 지휘관 뒷바라지만 해도 벅찬데, 지휘관 가족도 내 소관이 됐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내 업무를 알려주지. 요리, 청소, 빨래, 설거지는 기본이다. 텃밭 가꾸기, 골프공 줍기, 지휘관 사모의 쇼핑, 지휘관 자식의 자동차 세차도 한다. 지휘관 자녀가 어릴 경우 과외를 해준다. 대학원에 다니는 지휘관의 레포트나 논문 작성은 당연히 내가 맡는다. 텃밭 농사도 한다. 한마디로 내가 못하는 일은 없다.
 
나는 지휘관을 모시지만, 실질적인 지휘관은 대개 사모였다. 지휘관은 잠깐 보는 사람이지만, 사모는 하루종일 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나를 유명인으로 만들어준 박찬주 육군 대장의 부인 전모씨만 봐도 그렇다. 전씨는 나를 상대로 한 ‘공관병 갑질’ 사건의 사실상 주범이다.
 
나를 유명하게 해 준 분이다. 박찬주 육군 대장.

나를 유명하게 해 준 분이다. 박찬주 육군 대장.

▶손목시계 타입의 호출벨을 채워 언제라도 부르게 하기 ▶요리가 마음에 안 다며 칼로 도마를 세게 내려치거나 부모를 언급하며 질책하기 ▶음식물 집어던지기 ▶뜨거운 떡국의 떡을 손으로 떼어 내기 등을 내게 시키거나 직접 한 사람이 전씨였다.

 
이런 사실들이 외부로 알려지면서 박 대장 부부는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박 대장은 뇌물수수 혐의가 드러나 구속됐다. 부인 전씨는 민간 검찰의 수사를 받는다. 나를 사병(私兵)처름 부리는 관행은 도마에 올랐고, 결국 나를 폐지하기로 결정됐다.
 
 
한때 나의 실질적 지휘관이었다. 박찬주 대장의 부인 전모씨. 그는 검찰에 출석하면셔 나를 "아들처럼 대했다"고 말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한때 나의 실질적 지휘관이었다. 박찬주 대장의 부인 전모씨. 그는 검찰에 출석하면셔 나를 "아들처럼 대했다"고 말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점점 줄어드는 병력 자원을 감안하면 나는 일찍 없어졌여야할 존재였다. 오히려 늦은 게 한스러울 뿐이다. 
 
 
국방부는 공관병 제도를 30일 폐지한다고 29일 밝혔다. 공관병 198명의 편제를 삭제하고 공관병으로 복무 중인 113명은 다음달 전원 전투부대로 보낸다.
 
대신 최전방 부대를 포함해 상시 대비태세 유지가 필요한 부대의 경우 공관병 대신 경계병과 상황병을 둘 수 있기로 했다. 경계병과 상황병은 공관병과 달리 공관 내부에 상주하지 않는다.
 
‘복지지원병’으로 분류되는 골프병 35명과 테니스병 24명은 지난 1일부로 폐지됐다. 복무 중인 59명의 보직도 바뀌었다.
 
국방부는 군 마트(PX) 판매병에 대해서는 순차적으로 민간인력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지난 20일 1차로 40명의 민간인을 뽑았다. 2021년까지 군 마트 판매 인력 1600여명을 채용할 방침이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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