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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좋은 일자리’ … 구직 포기 50대 “아들아, 공무원 돼라”

외환위기 20년 <하> 기업 규제 풀고 노동개혁 나서라
외환위기의 삭풍이 고지훈(25·가명)씨의 집을 덮친 건 그가 6세 때인 1998년이었다. 번듯한 전기설비 회사에 다녔던 아버지는 회사 매각으로 실직했다. 이후 아버지의 직장은 1~2년 단위로 바뀌었다. 베트남 공장에 일자리를 얻었지만 얼마 뒤 문을 닫았다. 특별한 기술이 없는 사무직 출신 50대를 불러 주는 곳은 없었다. 아버지는 2012년부터 구직을 포기했다. 53세에 사회생활을 끝낸 아버지는 아들에게 공무원을 권했다. 지훈씨는 서울 노량진의 좁은 고시원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외환위기 뒤 기업 정규직 채용 꺼려
많은 대졸자 취업 재수, 공시 도전
노후 대비 못한 중장년도 구직난

대기업 노조 똘똘 뭉쳐 일자리 사수
중소기업·비정규직은 저임금 고통
양보 없이 ‘일자리 나누기’ 공염불

 
23일 실시된 지방공무원 7급 시험엔 2만8779명이 지원했다. 선발 인원은 222명. 경쟁률은 평균 129.6대 1이다. 5년래 최고였다. 식지 않는 공시 열풍에 공공부문 일자리를 대폭 늘리겠다는 정부의 방침이 기름을 부었다.
 
외환위기 20년

외환위기 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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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에 따르면 매년 50만~60만 명의 대학 졸업생이 사회로 쏟아져 나온다. 연간 신규 고용은 약 40만~50만 명에 불과하다. 매년 취업 재수생이 쌓인다. 통계청에 따르면 1997년 5.7%였던 청년실업률은 2007년 7.2%, 지난해에는 9.8%로 악화 일로다. 중소기업은 구인난에 시달린다. 지난해 대기업 정규직은 시간당 3만530원의 임금을 받았지만 중소기업 정규직은 1만6076원을 받았다. 대기업 비정규직(1만9147원)보다도 적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런 대우를 받고 중소기업에 가느니 취업 재수를 하거나 공시를 준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장년 근로자도 구직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제대로 된 노후 준비를 못한 탓이다. 김재현(한국연금학회장) 상명대 보험경영학과 교수는 “평균수명이 길어졌음에도 노후 준비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40%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인 노인 빈곤율은 부실한 사회안전망과 미성숙한 연금 시스템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일자리 줄면서 취업률 최악

일자리 줄면서 취업률 최악

중장년 근로자의 일자리 수준은 낮다. 대부분 시간제이거나 임금이 터무니없이 적다. 진입도 쉽지 않다. 경직된 임금체계와 연공서열식 조직은 중장년 근로자의 신규 진입을 막는다. 자영업의 상황도 좋지 않다. 자영업자의 5년 생존율은 27.3%(통계청)에 불과하다.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가 모두 일자리를 찾는다. 하지만 ‘좋은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하다. ‘좋은 일자리’의 핵심은 고용안정과 처우다. 둘 다면 더욱 좋지만 아니면 하나라도 충족돼야 한다. 그런데 지금 좋은 일자리는 일부 대기업과 공기업에만 존재한다.
 
이런 상황이 빚어진 출발점은 외환위기다. 정리해고 태풍 속에 평생직장 개념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해고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경영자는 간접 고용을 본격적으로 활용했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성장의 과실을 함께 나누는 모습은 사라졌고, 원청과 하청이란 위계 속에 대기업은 위기관리 비용을 철저히 중소기업에 전가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기업은 빠르게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겨 갔다.
 
전문가 5인의 진단과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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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자리가 귀해지자 이를 지키려는 힘은 더 강해졌다. 살아남은 일부 대기업 노조는 똘똘 뭉쳤다. 이런 사업장의 처우는 시간이 갈수록 좋아졌다. 반대로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근로자의 처우는 개선되지 않았다. 오히려 격차는 더 벌어졌다. 현대자동차 정규직 직원이 1억원의 연봉을 받을 때 같은 일을 하는 협력업체 직원은 3000만원을 받는 비정상적 구조가 만들어졌다.
 
20년간 소리 없이 진행된 노동시장 양극화는 한국이 직면한 난제 중 난제가 됐다. 성장 속도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거나 수백만 명을 먹여 살릴 글로벌 기업이 갑자기 탄생하지 않는 한 극적인 전환은 기대하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의 해법은 ‘근로시간 감축’과 ‘일자리 나누기’다. 방향은 맞지만 누군가의 ‘양보’가 전제돼야 한다. 그런데 노동계의 기득권을 틀어쥔 정규직 노조는 조금도 물러설 기미가 없다.
 
여기에 4차 산업혁명의 역습이 시작돼 그나마 있던 일자리도 줄 위기다. 지난해 한국고용정보원은 “인공지능·로봇 기술의 발전은 10년 안에 국내에서 1800만 명의 일자리를 위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권혁 교수는 “사회안전망을 탄탄히 구축하고, 대중소기업 간 격차를 줄여 중소기업을 매력적인 직장으로 만드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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