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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100년 기업]세계 70%시장 석권...1300만원에 팔리는 유모차 대왕 하오하이즈

'Made in China(중국제조)'인데 전 세계 4억 가구가 사용하는 것이 있다. 전세계 시장점유율은 70%에 달한다. 선진국이라는 미국과 유럽시장에서의 점유율도 50%이상이다. 기술력과 디자인 모두 우수하다는 이야기다. 어떤 것은 유럽에서 700유로(약 1300만원)에 팔려나가는 것도 있다. 이 제품은 무엇일까?

1억대 생산으로 신기원 열어
1300만원에 팔리는 유모차도 있어
명실상부 세계 1위
수학선생이 만든 유모차로 히트!

 
세계 최대 아동용품 공급업체 '하오하이즈(好孩子)'가 만드는 유모차다. 우리나라 엄마들에게는 gb(goodbaby)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있지만 중국 기업이라고 알고 있는 엄마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1억대 생산으로 신기원을 열었다는 하오하이즈 유모차 [출처: 바이두 백과]

1억대 생산으로 신기원을 열었다는 하오하이즈 유모차 [출처: 바이두 백과]

하오하이즈는 풍부한 자본으로 세계 최고수준의 연구생산시설을 갖추고 값싼 인력을 이용해 고품질의 제품을 경쟁력 있는 가격에 만들어왔다. 세계적 영유아용품 브랜드 업체들이 하오하이즈에 생산을 맡기기도 하고 자체 브랜드까지 가지고 있어  영유아용품 시장에서는 명실상부 세계 1위다.

 
중국에서 만들어 세계시장을 석권한 이 기업을 만든 사람은 의외로 사업과는 많이 무관해보이는 수학교사 출신 송정하이(宋郑还)다.
중의사 집안에서 태어난 수학교사가 만든 유모차, 기술력으로 세계 시장에 우뚝
송정하이의 집안은 대대로 중의사였다. 하지만 문화대혁명(1966~1976)으로 가업을 이어받지 못하고 1968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낙향해 5년간 돼지를 키웠다. 하지만 명석한 머리 덕분에 공산당의 눈에 띄어 상하이에 가서 대학에 다니라는 추천을 받았고 졸업 후 중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게 됐다.
하오하이즈 송정하이 회장. [출처: 바이두 백과]

하오하이즈 송정하이 회장. [출처: 바이두 백과]

그가 수학교사를 하던 시절 마침 개혁개방의 물결이 중국을 휩쓸었고 공산당 중앙에서는 학교에서도 돈을 모아 공장같은 협동조합을 만들도록 독려했다. 당시 만들어졌던 기업들은 상당수 역사속으로 사라졌지만 베이따팡정(北大方正)이나 와하하(哇哈哈)같은 기업은 아직도 살아남아 중국 경제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
 
송정하이의 학교도 공장을 세웠는데 지금에서야 보편적이 된 전자레인지 공장이었다. 시대에 너무 앞서가는 바람에 결과는 실패였다. 그러나 중앙 당에서 독려하는 일이니 실패하면 안되는 일이었다. 급해진 교육청 고위급 관계자는 당시 그 학교의 부총장이었던 송정하이를 급히 공장장으로 임명했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공장이 4년동안은 유지되도록 버텨라"고 명령했다. 이렇게 해서 경제와는 담을 쌓고 지내던 가난한 교사 송정하이가 상인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그가 공장을 인수받았을때는 직원이 40명 정도 남아있었지만 대부분이 농부였다. 게다가 "공장안 아무데나 소변을 보지 마시오"라고 써붙여야 할 정도의 수준이었고 8개월째 월급을 주지 못해 분노가 극에 달해 있었다. 그는 다른 여러 공장들을 다니며 자신의 공장과 협력할 프로젝트가 있는지 알아보러 다녔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가 가르치던 학생의 부모가 그의 사정을 듣고 유모차를 내주며 송정하이의 공장에서 이런 유모차를 생산해주면 자신이 총판이 돼 물건을 판매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는 군(軍)공장의 사장이었다. 이후 송정하이는 유모차 생산에 주력했고 1989년 은행에서 5만위안을 빌려 '하오하이즈'를 창업했다. 하오하이즈는 좋은 아이라는 뜻이다.  
 

"내가 나를 타도한다(自己打倒自己)"...모방품이라는 불행이 가져다준 중국 시장 1위

창업 첫 해, 그는 2만대의 유모차를 생산해 선생님들의 밀린 월급을 주고 폐교된 학교를 다시 열었다. 2년 후에는 은행 빚을 다 갚았다. 하지만 그가 생산하는 유모차는 구식이었기 때문에 커가는데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이왕 호랑이 등에 탔으니 내려오지 말고 달려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세상에 없는 유모차를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우연히 본 잡지에서 쑤이치(睡椅: 누워서 자는 긴 의자)를 보게 됐고 저기에 바퀴를 달면 아이들의 차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거기다가 엄마와 아이가 서로를 볼 수 있게 의자를 엄마에게로 향할 수 있게 해주면 양용(兩用)유모차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또 쑤이치를 요람으로 바꾸면 영아용 유모차가 되는게 아닌가. 세상에 없는 유모차가 나온 것이다.
그는 재빨리 이 유모차를 개발해 특허를 출원했다. 그러나 돈이 없었기 때문에 4만위안에 특허를 팔았다. 그는 다시 신기술 개발에 온 힘을 쏟았고 4만위안짜리 특허를 판 지 4개월만에 또 특허를 개발해 15만위안이라는 거금에 팔았다. 그러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렇게 좋은 특허를 왜 내가 써서 생산 안하고 팔고 있는거지?" 라는 반문을 하게 된 것이다.

 
이후 그는 신기술을 적용한 제품을 내놨고 가격이 비쌌지만 기능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판매량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어려움은 곧 찾아왔다. 저가 모방제품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다. 그는 빠르게 판단했다. "모방품이 나오는 것은 어쩔수 없다. 혁신의 속도를 빨리해야 한다"  
그는 1세대 제품을 누군가가 모방하면 빠르게 2세대, 3세대 제품을 개발해 시장에 내놨다. 이런 정신으로 회사를 꾸려간 결과 1993년 하오하이즈는 판매량에서 중국 1위에 등극했다. 모방품때문에 '혁신'이 바로 하오하이즈의 특화된 유전자가 됐고 회사의 문화가 됐다.

해외진출, 선진국인 미국과 유럽 시장 석권

중국 1위가 됐지만 그는 샴페인을 터뜨리지 않았고 눈을 해외로 돌렸다. 먼저 홍콩에서 450만달러의 투자를 받았고 미국 뉴욕을 첫 전략지로 선택했다.
그러나 미국 시장은 만만치 않았다. 5개의 미국 특허와 디자인 특허를 가지고서야 코스트코의 문을 두드릴 수 있었고 제조자 기획생산(OPM) 방식으로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즉, 브랜드만 미국의 것을 쓰고 연구개발과 제조, 품질관리는 모두 하오하이즈가 하는 것이었다. 이후에는 여러 브랜드들이 제조까지 맡기면서 3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미국 유모차 시장에서도 판매량 1위에 등극했다.
유럽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4년이 채 되지 않아 판매량 1위에 올라섰다. 하오하이즈의 2016년 매출을 보면 상반기 수익이 36억 8000만 홍콩달러(약 5370억원)인데 해외시장 수입이 30억 2000만 달러로 82%를 차지한다. 2010년 홍콩에서 성공적으로 상장한 것을 계기로 자산을 늘려 2014년 프리미엄 브랜드로 인기가 높은 독일의 '사이벡스(Cybex)'와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의 '이븐플로(Evenflo)라는 업체를 인수하기도 했다. 단순 제조업체에서 브랜드 업체로 거듭나겠다는 장기적 전략의 첫걸음이었다.  
 

중국표준을 세계 표준으로...'팬덤', 융합, '생태사슬' 3대 운영혁신으로 세계 500강까지

하오하이즈의 회사 문화는 혁신이다. 혁신의 제1선은 연구개발인데 프랑스 파리, 체코 프라하, 오스트리아 빈, 미국 보스톤, 일본 동경, 중국 등 7곳의 연구센터에서 450여명의 인재들이 시장연구부터 상품기획, 표준연구, 상품 실험까지 전방위 연구를 하고 있다.
생산공정에서도 시스템의 개선, 원재료와 설비 업그레이드 관리, 판매모델의 개혁 등 매 단계마다 혁신을 요구하고 있으며 단계별 혁신지수에 따라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있다. 혁신을 위해 필요하다면 대학을 보내주고 해외연수도 지원해준다.
이런 분위기 속에 하오하이즈는 세계 최초의 제품을 수없이 만들어냈다. 최초의 전동유모차, 최초의 초경량 유모차, 최초의 접이식 초소형유모차, 최초의 스모그방지 유모차 등 공장을 만든지 28년동안 신청한 특허만 8116개이며 동업종의 경쟁자들 상위 10곳의 특허를 다 합해도 하오하이즈의 특허 갯수를 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중국공업설계상 2회, 중국 특허금상 1회, 홍디엔(红点) 설계상 16회, IF어워드 1회, 홍디엔지존상 1회, IF금상 1회, 기네스 세계기록 1회 등 상 복도 많았다.
이런 혁신 덕분에 최근에는 국제표준화조직(ISO)에서 '하오하이즈'가  ISO/pc310아동차항목위원회연합사무처를 설립하는 것을 비준했는데 이는 기업 자격으로 아동차 항목에서 ISO표준제정사업의 주도권을 가지게 된 것을 뜻한다. 아동용품 업종에서는 없었던 일이고 다른 업종의 중국 기업에서도 찾아보기 드문 케이스다.  
최근 송정하이 회장은 하오하이즈에 '펀스지(粉丝级:팬덤), 종허저(整合者:융합), 셩타이싱(生态型:생태계)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다. 중국정부가 공급측개혁을 추진하고 산업계 전반에 클라우드컴퓨팅, 빅데이터, IOT가 유행하면서 시대에 맞춰 공장을 개조하는 것이다.
펀스지는 팬덤을 형성하겠다는 말인데 결국은 상품의 질을 좋게 해서 사용자들이 팬이 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온라인 플랫폼과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해 소비자들의 만족도를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종허져는 브랜드와 시장, 유통, 인재, 정보, 자본 등 각종 자원의 연결통로를 열어놓고 융합해 새로운 경영방식을 만들어내겠다는 이론이다. 셩타이싱은 산업계의 경계를 허물어 자원을 융합해 1+1>2의 효과를 얻겠다는 것인데 러스(乐视), 디디추싱(滴滴出行)과 연합해 소비자 행위데이터를 받고 있는 것도 이런 노력 중 하나다.  
동시에 '하오하이즈 중궈(好孩子中国)''마마하오(妈妈好)' 앱 등을 출시해 자회사와 2000여개 소형 온라인 판매사와 연합했으며 이곳에서 60여개 브랜드, 3만여종의 상품을 대리판매해주고 있다.
송정하이는 아직도 현역임을 내세우고 있다. 그가 늘 인터뷰에서 하는 말이 있다.  
 

"나는 은퇴할 생각이 없다. 세계 500강이 되겠다는 초심이 아직 있기 때문이다"

글=중국통(中國通)  
정리=차이나랩 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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