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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파리바게뜨엔 제빵사만 있나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내가 파리바게뜨 빵을 사지도 먹지도 않은 지는 꽤 됐다. 9년 전 아내가 빵집을 시작할 때는 경쟁사라서, 5년 전 아내의 빵집이 망했을 때는 ‘원수’라서다. 아내가 당시 빵집을 시작한 건 순전히 노후를 걱정한 내가 등을 떠민 탓이었다. 아내는 근근이 4년을 버티다 꽤 손해를 보고 접었다. 임대료를 20%나 올려 달라던 건물주의 횡포와 아내의 빵집 바로 옆에 점포를 낸 파리바게뜨 때문이었다. “파리바게뜨만 아니었어도….” 시내 곳곳의 파리바게뜨를 볼 때마다 지금도 불쾌해진다.
 

또 다른 을, 3000여 가맹점주는
말도 못하고 냉가슴 앓는다

그럼에도 이번엔 본의 아니게 파리바게뜨 편을 좀 들어야겠다. 고용노동부가 지난주 시정 명령을 내려 ‘제빵사(카페기사 포함) 5378명을 직접 고용하라, 그것도 25일 안에 하라’는 터무니없는 일을 벌였기 때문이다. 특정 업체를 시범 삼아 손볼 의도가 아니라면 이런 비상식적인 명령을 정부가 내릴 턱이 없다.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고 했을 때 득실을 따져 보자.
 
여기엔 4부류의 이해관계자가 등장한다. 파리바게뜨 본사, 협력업체(제빵사 파견·관리 업체), 가맹점주, 제빵사다. 이 중 가장 큰 손해를 보는 곳은 협력업체다. 아예 사업을 접어야 한다. 본사도 좋을 일이 없다. 인력 관리가 어려워지고 고용 비용이 크게 늘어난다. 상당 부분은 가맹점주에게 떠넘길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을, 가맹점주는 더 딱하다. 내년엔 최저임금까지 크게 오른다. 제빵사보다 못 가져가는 점주가 속출할 것이다. 힘들게 일해 제빵사 월급만 주느니 문을 닫는 게 속 편할 수 있다. 제빵사는 일단 이득이다. 다만 5378명 전원이 고용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비숙련자는 떨려 날 것이고, 본사·가맹점의 수익 감소로 가맹점 수가 줄면 더 많은 인원이 해고될 것이다. 결국 아무도 이득이 되지 않을 일을 정부가 나서서 분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더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프랜차이즈 본사의 존재 이유가 뭔가. 나는 가맹점의 생존이라고 생각한다. 가맹점을 먹고살게 해 주는 게 제일 목표가 돼야 한다. 그게 제빵사며 시간제 직원의 지속 가능한 일자리도 만든다. 많은 가맹점주가 특별한 기술 없이 퇴직금 등을 털어 시작한다. 노후와 생계를 위해서다. 자칫 실력 없는 본사를 만나면 퇴직금을 홀랑 까먹기 일쑤다. 파리바게뜨는 그 점에서 국내 최고다. 폐점률이 1%대로 동종 업계는 물론 프랜차이즈 전체로 봐도 최저다. 점포당 매출은 2위보다 40% 가까이 많다. 문제의 제빵사 급여도 업계 최고다. 3000개 넘는 국내 최대 가맹점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 낸 덕분이다. 그 규모의 경제를 가능하게 한 힘이 협력업체를 통한 제빵사 관리 시스템에서 나왔다. 5000명 넘는 제빵사를 본사가 25일 안에 고용하는 순간, 이런 시스템도 한순간에 무너질 것이다. 퇴직한 자영업자 점주도, 아르바이트 점원도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 제빵사만 홀로 무사할 리 없다.
 
고용부도 뒤늦게 문제를 알아채긴 한 모양이다. 김영주 장관은 “특정 업체 손보기가 아니다”며 한발 물러섰다. 이성기 차관은 “대안을 가져오면 논의가 가능하다”고 진화에 나섰다. 시간을 갖고 찾으면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니다. 파리바게뜨는 협동조합을 통해 점주와 협력업체, 본사가 협의해 고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고용부는 “노조와 협의하라”며 압박했다. 그 노조란 게 한 달 전 급조한 민주노총 산하 노조다. 어느 가맹점주가 걸핏하면 민노총 파업에 동원돼 주방을 비우는 제빵사와 일하고 싶겠나. 그런 노조와 협의하라며 기업과 가맹점주의 등을 떠밀어 놓고 정부는 할 일 다했다는 게 말이 되나. 그러니 고용노동부가 고용은 없고 노동만 있다는 말을 듣는 것 아닌가.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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