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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식 고사작전’ 본격 착수 美…“지금은 압박밖에 없다”는 文의 딜레마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뉴욕 롯데 팰리스 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뉴욕 롯데 팰리스 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이란식 고사(枯死)작전’에 본격 착수했다. 미 재무부는 26일(현지시간) 조선중앙은행 등 북한 기관 10곳과 개인 26명을 새로 제재 대상에 추가했다. 이번에는 북한만 타깃으로 했지만, 미국은 이들과 거래하는 다른 나라의 기관이나 개인은 추가로 제재한다는 방침이다. 사실상 중국을 염두에 둔 세컨더리 보이콧(북한과 정상적 거래를 하는 제3국 기관·개인도 제재)의 본격적 실행을 위한 첫 단계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1일(현지시간)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밝힌 것처럼 미국과 북한 중 양자택일을 하라는 선언이다.  
 
①이란식 제재 모델, 북한에도 통할까=세컨더리 보이콧은 애초에 미국의 대이란 제재를 통해 자리 잡은 개념이다. 미국은 2010년 이란 원유를 수입하는 국가는 미국 기업과 거래하지 못 하게 하는 이란 제재법을 통과시킨 뒤 전방위 압박에 나섰다. 이란중앙은행 등 금융기관을 제재, 달러 거래도 금지했다.  
 
이는 원유 대금 지급 동결, 리알화(이란 통화)의 평가절하 등으로 인한 극심한 경제난이 이어졌고 이란 내 민심은 악화했다. 이는 2013년 총선에서 핵 협상을 통한 제재 해제를 공약으로 내건 중도 성향의 로하니 대통령이 압도적인 표 차이로 당선되는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대외 무역이 국가 수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 이란과 달리 북한은 고립된 경제 체제의 특성을 갖고 있다. 통일부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약 36조 1030억원인데 수출액은 약 3조 2000억원밖에 되지 않았다.  
 
이란 제재 당시에는 이란과 교역이 많은 유럽연합(EU)이 미국과 수위를 맞춰 제재 파트너로서 한몫했다. 북한 제재가 효과를 보려면 중국이 EU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이란은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선출한다는 점도 북한과 다르다.  
 
정부 당국자는 “이란과 북한 상황이 다른 것은 사실이지만, 시간의 차이일 뿐 꾸준히 유지하면 제재는 효과를 보기 마련”이라며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이 본격화하면 북한과 거래 시 세계 금융 거래의 중심지인 뉴욕의 달러 거래에서 배제된다는 상징적 의미도 크기 때문에 각국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②문재인 정부 ‘첫 대북 독자제재’ 나올까?=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독자 제재는 출범 이후 벌써 다섯 번째다. 일본도 보조를 맞춰 지속적으로 독자 제재를 해왔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아직 대북 독자 제재를 한 적이 없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발사 도발에 대응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결의 2371호를 채택한 뒤에도 정부는 미국의 독자 제재 내용을 관보에 게재하는 식으로 ‘안내’만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뉴욕 방문 뒤 귀국하는 기내간담회에서 “지금은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압박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밝혔지만, 이 발언이 아직 실제 정부 조치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미국이 독자 제재를 발표한 직후인 27일 오전 외교부 출입기자단에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식으로 입장을 냈다. “미국 정부의 제재 대상 추가 지정을 평가한다”며 “이번 미 측 조치는 강력한 대북 제재와 압박을 통해 북한을 비핵화의 길로 이끈다는 한·미 양국과 국제사회의 공동노력에 기여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환영’이 아닌 ‘평가’로 표현했고, 입장 발표 형식도 외교부 대변인 성명이나 논평보다 격이 낮았다. 독자 제재에 대해 정부는 여전히 “안보리 결의를 충실히 이행하며 검토 중”이라는 원론적 입장만 내놓고 있다.
 
남궁영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우리가 입장을 확실히 하지 않으면 미국이 ‘한국은 북핵을 풀자는 것인가, 아니면 대화를 하자는 것인가’ 하고 의심하거나 혼란스러워할 수 있다.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 미국이 갖고 있는 카드를 우리에게 유리하게 쓰려면 우선 정부가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③세컨더리 보이콧 둘러싼 미·중 대립 양상 속 한국은?=미국이 북한의 금융기관을 대거 제재한 것은 앞으로 이들과 거래하는 중국 기관과 개인을 추가적으로 제재하겠다는 예고탄이다. 이런 상황이 현실화할 경우 중국과 거래하는 한국의 은행이나 기업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미국이 북핵 문제를 중국을 압박하는 도구처럼 쓸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당장 28일 방중(訪中)해 중국에 대북 제재 협력 등을 요청할 계획이다. 이동률 동덕여대 중국학과 교수는 “중국이 안보리 제재는 이전보다 더 충실히 이행하려는 모양새를 취하겠지만, 한·미가 원하는 정도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다. 독자 제재에는 반대한다는 기조도 쉽게 바뀌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렇지 않아도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문제로 중국과 갈등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세컨더리 보이콧으로 중국을 겨냥하는 미국의 독자 제재에 얼마나 동참할 지를 두고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이 세컨더리 보이콧을 단계적으로 실행해 나가면서 북핵 문제를 대중 견제를 위한 전략적 카드로 사용하는 양상”이라며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 ‘북핵 문제의 본질은 미·중 간 전략적 경쟁이 아니라 핵 위협의 해결’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정부의 전략적 외교술 구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분석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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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