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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전' 한글 목판이 일본 보석함으로 바뀐 까닭은?

한선학 치악산 명주사 고판화박물관장이 한글소설 목판을 이용해 만든 일본식 보석함을 들고 있다. 박정호 기자

한선학 치악산 명주사 고판화박물관장이 한글소설 목판을 이용해 만든 일본식 보석함을 들고 있다. 박정호 기자

한선학(61) 강원도 원주 명주사 고판화박물관장이 27일 오후 붉은 육각형 나무 상자를 내보였다. 가로 14.5㎝. 세로 8.5㎝, 높이 7.0㎝의 아담한 크기다. 상자 표면에는 한글이 가지런히 새겨져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보석함으로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웬 한글? 나무는 원래 한글 고전소설을 찍을 데 쓰던 목판이었다. 그 한글 목판을 얇게 잘라 보석상자 재료로 썼다. 이날 한 관장이 공개한 보석함은 일본에서 구입한 것이다. 보석함 뚜껑과 본체 네 면에 걸쳐 한글 소설이 각인돼 있다.
방각본 한글 소설 목판으로 만든 일본 보석함 전체 모습. [사진 고판화박물관]

방각본 한글 소설 목판으로 만든 일본 보석함 전체 모습. [사진 고판화박물관]

 
 작품도 각각 다르다. 맨 위 뚜껑에는 『소대성전』이, 앞면에는 『심청전』이, 뒷면에는 『초한전』이, 그리고 좌우 측면에는 각각 『삼국지』와 『초한전』이 판각됐다. 각기 다른 소설의 목판을 이용해 보석함을 만든 것이다. 또 상자를 오래 보관하기 위해 목판 표면에 주칠(朱漆)을 입혔다.
 
 이들 한글 소설은 방각본(坊刻本)으로 불린다. 19세기 민간에서 영리를 목적으로 소설책을 목판에 판각한 것을 말한다. 한글 소설을 찾는 수요가 증가하면서 활발하게 만들어졌다. 19세기 간행되기 시작해 20세기 초반까지 성행했다. 주로 서울(京板), 전주(完板), 안성(安城板), 대구(달성판) 등에서 찍어냈다. 하지만 활자 보급이 늘면서 방각본의 인기도 시들해졌다. 특히 일제강점기, 6·25 등을 거치며 목판 원판이 사라지기 시작해 현재 전하는 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조선시대 소설의 발달, 19세기 한글소설의 확산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임에도 그 실체를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일본식 보석함 앞면에 사용된 한글소설 '심청전' 목판.

일본식 보석함 앞면에 사용된 한글소설 '심청전' 목판.

 한 관장이 공개한 한글 소설 목판은 전주에서 만든 완판본 5점이다 특히 『초한전』과 『소대성전』 목판은 처음 확인됐다. 지금까지 확인된 완판본 목판은 『삼국지』 1점(개인 소장), 『유충열전』 분첩 1점(고판화박물관), 『심청전』 담배갑 1점(우리한글박물관) 3점에 불과했다. 방각본 목판을 다 합쳐도 온전한 유물은 7점 안팎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귀한 목판이 왜 갑자기 보석함으로 둔갑했을까. 다른 한글 목판들도 각각 분첩과 담배갑 등으로 바뀌었다. 한 관장은 “한글의 조형미에 반한 일본인들이 목판을 잘라 각종 기물(器物)을 만든 것 같다. 우리 문화재의 수난사를 보여주는 자료”라고 설명했다.
 
일본에서 분첩으로 변형된 한글소설 '유충렬전' 목판.

일본에서 분첩으로 변형된 한글소설 '유충렬전' 목판.

 방각본 소설은 50여 종 200여 책인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책 하나당 여러 장의 목판이 필요한 점을 감안하면 수천 점이 넘는 목판이 남아 있어야 하지만 실제로 확인된 것은 이번에 찾아낸 것을 포함해 10여 점에 불과하다. 한 관장은 “이번 보석함은 일본을 왕래하는 고미술상을 통해 한 달 전 구입했다”며 “다음달 한글날을 앞두고 유물을 공개하게 됐다”고 말했다.
 
 방각본 보석함 내용은 방각본 연구자인 전북대 국문과 이태영 교수가 검증했다. 이 교수는 “완판본 소설 목판 500여 점이 1940년 서울로 올라간 이후 6·25 때 불에 타 사라진 것으로 학계에 보고됐다”며 “보석함에서 보듯 그 중 일부가 일본에 흘러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한편 고판화박물관은 10월 27일부터 내년 2월 15일까지 이번 보석함을 포함해 1687년에 새겨진 한글 '수능엄다라니' 목판, 오륜행실도 한글 목판 등을 소개하는 ‘나무와 칼의 예술’ 특별전을 연다. 033-761-7885.
 
박정호 문화전문기자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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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