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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노숙인·쪽방 주민 1만7000여명…건강 상태는 '빨간불'

거리에 누워 있는 한 노숙인. 전국의 노숙인과 쪽방 주민을 합치면 1만7000여명에 달한다는 정부 차원의 첫 공식 집계가 나왔다. [중앙포토]

거리에 누워 있는 한 노숙인. 전국의 노숙인과 쪽방 주민을 합치면 1만7000여명에 달한다는 정부 차원의 첫 공식 집계가 나왔다. [중앙포토]

27일 오후 서울 영등포역 6번 출구 앞에선 한 노숙인이 소주병을 들고 앉아있었다. 그 앞에는 안주 없이 종이컵만 놓여있었다. 출구 옆골목을 따라서 늘어선 쪽방촌엔 주민들이 대부분 나와 있었다. 목발을 짚거나 지팡이를 꽉 잡고 있는 노인이 여럿이었다. 길거리에서 누런 요를 펴놓고 맨발로 자는 중년 남성도 있었다. 
 
  골목 곳곳엔 빈 막걸리통이 쌓였고, 큰길가 무료 급식소엔 사람이 가득 찼다. 연신 담배를 피우던 박모(62)씨는 "여기 사람들은 대부분 몸이 한두군데는 고장났을거야. 하루하루 살기 바쁜데 건강 챙길 시간이 어디 있겠어"라며 "나도 당뇨랑 고혈압 앓은 지 좀 됐지"라고 말했다.
27일 서울 영등포 쪽방촌 골목. 쪽방촌 곳곳에는 화사한 벽화가 그려졌지만 밖에 나온 주민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정종훈 기자

27일 서울 영등포 쪽방촌 골목. 쪽방촌 곳곳에는 화사한 벽화가 그려졌지만 밖에 나온 주민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정종훈 기자

  박씨 같은 쪽방 주민과 노숙인을 합치면 전국 1만70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들은 음주와 우울증, 신체 장애 등 건강 상태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종합적인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다. 보건복지부는 27일 이러한 내용의 '2016년 노숙인·쪽방 주민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정부 차원에서 전면적인 실태조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으로 5년마다 정기적으로 실시될 예정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이 지난해 10월 길거리와 시설에 있는 노숙인, 쪽방 주민에 대한 일시 조사를 한 결과 전국의 노숙인 수는 총 1만1340명으로 나타났다. 각종 생활시설(자활·재활 등)에 있는 노숙인이 9325명으로 가장 많고 거리(1522명), 일시보호시설(493명) 등의 순이었다. 채 1~2평이 안 되는 열악한 주거 환경에 놓인 쪽방 주민도 6192명이었다.
한 노인이 쪽방에서 문을 열어놓은 채 더위를 견디고 있다. 채 1~2평이 안 되는 좁은 공간에 머무르는 쪽방 주민도 생존의 위기에 놓인 경우가 많다. [중앙포토]

한 노인이 쪽방에서 문을 열어놓은 채 더위를 견디고 있다. 채 1~2평이 안 되는 좁은 공간에 머무르는 쪽방 주민도 생존의 위기에 놓인 경우가 많다. [중앙포토]

  이들이 노숙·쪽방 생활을 하게 된 이유와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은 뭘까. 보사연은 일시 조사에서 집계된 노숙인·쪽방 주민 중 2032명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 조사를 했다. 노숙·쪽방을 택한 결정적 계기를 물어보니 개인적 부적응이 절반 이상(54.2%)이었다. 이혼과 배우자 사망, 가정 폭력, 정신질환 등의 문제를 겪으면서 집 밖으로 내몰린 것이다. 실직과 사업 실패 등에 따른 경제적 결핍(33.4%), 사회복지시설 퇴소 등 사회 서비스 부족(6.4%)이란 답변도 많았다.
 
  평소 필요로 하는 건 소득 보조(36.9%)가 가장 많이 꼽혔고 주거 지원(23.5%), 의료 지원(13%) 등이 뒤를 이었다. 다만 상대적으로 거주 상태가 불안한 거리·일시보호시설 노숙인은 '주거 지원'이 가장 필요하다고 답했지만 생활시설에 입소한 노숙인과 쪽방 주민은 '소득 보조'를 1순위로 꼽았다.
서울시 폭염 특별대책반 대원이 노숙인의 건강 상태를 챙기는 모습. 정부와 지자체가 노숙인과 쪽방 주민들을 위한 정책을 실시하고 있지만 이들의 건강 상태 등은 위험 수준이다. [중앙포토]

서울시 폭염 특별대책반 대원이 노숙인의 건강 상태를 챙기는 모습. 정부와 지자체가 노숙인과 쪽방 주민들을 위한 정책을 실시하고 있지만 이들의 건강 상태 등은 위험 수준이다. [중앙포토]

  제대로 관리받지 못 하는 이들의 건강 상태는 위험 단계였다. 자신의 건강 상태가 '나쁘다'고 응답한 비율은 39.3%에 달했다. 고혈압과 당뇨병 등 대사성 질환(36.1%), 치과 질환(29.5%), 조현병ㆍ알코올중독 등 정신질환(28.6%) 진단을 받았다는 응답자도 상당수였다. 또한 조사 대상 10명 중 3명(29.5%)은 장애인으로 등록됐다고 응답했다. 특히 중증인 1~3급이 76.2%로 대부분이었다.
 
  알코올 중독과 우울 증세도 심각했다. 노숙인·쪽방 주민의 18.5%는 매주 4번 이상 술을 마신다고 응답했다. 특히 알코올 의존도가 높은 고위험 음주자는 전체 음주자의 절반(45.3%)에 가까웠다. 우울증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응답자도 51.9%에 달했다. 특히 거리 노숙인(69%)과 쪽방주민(82.6%)에게서 우울증이 두드러졌다.
거리 노숙인은 몸이 아파도 참는다는 응답이 31%로 가장 많았다. [자료 보건복지부]

거리 노숙인은 몸이 아파도 참는다는 응답이 31%로 가장 많았다. [자료 보건복지부]

  몸이 아프면 노숙인시설·사회복지기관 등에 도움을 청하는 경우(28.1%)가 가장 많았다. 하지만 거리 노숙인의 31%는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고 참는다고 말했다. 노숙인 지정병원(260곳), 거리노숙인 현장무료진료소(3곳)가 운영중이지만 여전히 의료 혜택을 못 받는 노숙인·쪽방 주민이 많다는 의미다.
 
노숙인 실태조사 그래픽. [연합뉴스]

노숙인 실태조사 그래픽. [연합뉴스]

  자활을 위한 경제 활동 참여도 부족하다. 쪽방주민의 67.8%, 요양시설에 들어간 노숙인의 57.9%는 근로능력이 없는 미취업자였다.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상당수인 셈이다. 노숙인·쪽방 주민이 일자리를 얻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는 건강 문제(33%)가 꼽혔다.
 
  한편 노숙 생활 중에 피해받은 경험은 구타·가혹행위(8.1%), 명의도용ㆍ사기(6%), 금품 갈취(5.3%), 성추행·성폭행(2%)의 순이었다. 여성은 상대적으로 구타와 성폭력에 많이 노출됐고, 사기ㆍ금품 갈취는 남성이 더 취약했다.
 한 노인이 쪽방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 쪽방 주민은 총 6192명으로 집계됐다. [중앙포토]

한 노인이 쪽방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 쪽방 주민은 총 6192명으로 집계됐다. [중앙포토]

  정부는 이번 조사를 통해 새로 유입되는 노숙인을 줄이기 위한 사회안전망을 정비하고 정신건강서비스·주거 지원 등을 개선하는 게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이를 위해 의료 급여 대상인 노숙인들이 이용하는 지정병원을 단계적으로 늘리고 직업훈련프로그램 연계 확대, 노숙인 대상 임대 주택 우선 공급 등의 대책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태진 보사연 책임연구원은 "이번 조사의 가장 큰 의의는 노숙인·쪽방 주민의 전체적인 규모를 파악하고 이들이 앓고 있는 질병 등 건강 상태를 확인한 것이다. 앞으로 노숙인에 대한 맞춤형 의료 지원과 경제적 프로그램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우기 복지부 자립지원과장은 "노숙인 인권 보호를 위한 법률 개정을 추진하고 현장무료진료소 전문성 강화 등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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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