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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환경안보 시급한 ‘만성 케미포비아’ 시대

신용승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신용승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금 우리 사회는 ‘케미포비아(chemiphobia)’ 시대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화학물질 공포가 만성적으로 번지고 있다. 생활 편의를 도모하려던 제품이 되레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대상이 되어버렸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촉발된 생활화학제품 공포는 최근 살충제 계란에 이어 불량 생리대 파동에 이르면서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실제로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 실시된 한 시민단체의 설문조사 결과, 85% 이상이 생활화학제품의 사용을 꺼리거나 안전성에 대한 불신감을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소비자는 생리대를 직접 만들어 쓴다거나, 일상생활에서 화학제품 사용을 극구 기피하는 ‘노케미(no-chemi)족’까지 등장하고 있다.
 
최근 기업·정부·시민단체 사이에 팩트 논쟁을 벌이는 생리대 파동은 케미포비아 만연 사회의 ‘환경안보’ 의식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환경안보의 컨트롤타워가 돼야 할 정부와 기업은 대책 마련에 우왕좌왕하고 있다. 그 많은 유해물질 파동을 겪으면서도 그때마다 ‘관리 사각지대’니 ‘부처 간 엇박자’니 ‘땜질식 처방’이니 하는 지적이 반복된다. 왜 그럴까?
 
우선 생활화학제품에 대한 상시적인 안전관리 체계가 마련돼 있지 않다. 사고가 터진 다음에야 급작스럽게 조사에 착수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부정확하거나 과학적 검증을 제대로 거치지 못한 정보가 여과 없이 발표되는 경우가 많아 이해 당사자 간의 갈등과 국민 불신을 키웠다.
 
의당 관리해야 할 물질과 제품의 수에 비해 실제 관리되는 숫자가 너무 적다. 국내에 유통되는 화학물질 종류만 해도 약 1만6000종에 이르고, 특히 고위험 물질은 1300여 종으로 추정된다. 그 가운데 화학물질관리법에서 금지·제한 물질로 지정한 것은 72종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수많은 생활화학용품 가운데 유해물질 안전 기준을 정한 제품은 환경부의 ‘위해 우려 제품’ 23종, 산업통상자원부의 ‘안전 확인 대상 생활용품’ 70여 종에 불과하다. 드넓은 바다에서 고기를 잡기에는 그물의 크기가 너무 작고, 그물코는 지나치게 성긴 셈이다.
 
이 와중에 고기잡이 배가 너무 많다 보니 그물이 서로 엉키는 일이 벌어진다. 화학물질은 ‘원료-제품 생산-소비-폐기’ 각 단계마다 다양한 위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통합 관리가 절실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원료로서의 화학물질은 환경부에서, 제품은 종류별로 나뉘어 공산품 및 전기용품은 산업부, 생활화학용품 및 살생물 제품은 환경부, 의약외품·위생용품·화장품 등은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살충제 등 농약은 농림축산식품부로 각각 따로 관리하는 체계다. 이 같은 분산관리 시스템에서는 부처 간 정보 교류와 정책 협조가 쉽지 않을뿐더러 사고 예방은 물론 사고 원인 규명에서부터 대책 수립에 이르기까지 효율적인 대응이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난맥상을 극복하고 화학물질 공포를 해소할 대안은 없는 것일까? 방법은 있다. 최근 각계에서 강조하는 생활화학제품에 상시 모니터링과 위해성 평가 시스템 도입, 관리 대상 품목과 물질 수의 대폭 확대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기본이고 더 나아가 화학물질 ‘관리 거버넌스’를 근본적으로 정비하는 것이다. 화학물질 통합 관리를 실질적으로 이끌 수 있는 화학안전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예컨대 가칭 ‘화학안전위원회’를 신설해 생활화학제품에 대한 범부처 통합 관리가 상시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새로운 조직 신설이 어렵다면 적어도 제품의 위해성 평가 기능만이라도 단일 부처 업무로 일원화함으로써 전문성을 강화하고 동시에 부처 간 엇박자를 막을 수 있다.
 
무엇보다 소비자 건강 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삼는 기업 책임의식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모든 화학물질은 안전성이 입증되기 전까지 유해하다고 간주한다’는 것이 오늘날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화학물질 관리의 사전예방 원칙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 상당수 기업은 유해성이 입증되기 전이나 정부의 안전 규제 기준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모든 화학물질은 안전하다’고 믿는 듯하다. 지금 우리 사회가 겪는 케미포비아 현상은 소비자 건강보다 눈앞의 이익 추구가 우선인 일부 기업의 무책임한 태도가 불러온 부메랑 효과다. ‘환경안보의 시대’를 맞아 국민 눈높이에 맞는 ‘더 크고, 더 촘촘한 환경보건 안전망’을 제공하는 게 국가가 할 일이다.
 
신용승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선임연구위원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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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