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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SF속 진짜 과학 19. 혹성탈출과 진화

일러스트=임수연

일러스트=임수연

 
 
우주 탐사를 위해 떠난 우주선이 오랜 여정을 거쳐 한 행성에 도착합니다. 지구를 매우 닮은 행성에 불시착한 승무원들은 장비와 동료를 대부분 잃고 떠돌던 중 기묘한 광경을 목격합니다. 원숭이를 닮은 외계인들이 인간을 닮은 외계인을 노예로 부리는 광경이죠. 외계인 과학자에게 사로잡힌 주인공은 우여곡절 끝에 과학자의 도움을 받아 인간 여성과 함께 탈출합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주인공은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고 말죠. 주인공을 절망에 빠뜨린 것은 해변에서 발견한 자유의 여신상입니다. 이제껏 원숭이의 행성이라고 알고 있던 그 별이 바로 지구의 미래였던 겁니다.

 
1968년에 나온 ‘혹성탈출(The Planet of Apes, 유인원의 행성)’은 프랑스 작가 피에르 불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입니다. 수많은 원숭이의 실감 나는 연기와 마지막의 반전으로 유명하죠. 이 때문에 오랜 세월 사람들에게 기억되면서 무수한 속편과 리메이크작을 낳았죠. 이 영화는 4편의 속편에 이어, 2001년 팀 버튼 감독의 리메이크작이 나왔고, 근래에 새로운 시리즈로 다시 만들어졌습니다.
 
2001년에 만들어진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을 시작으로 한 새 시리즈는 기존 영화와는 다른 방법으로 인류의 몰락과 유인원의 지배 과정을 잘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전의 영화에서는 유인원이 갑자기 진화해 똑똑해졌다고 이야기하죠. 하지만 이것은 조금 이상합니다. 진화론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유인원이 진화해서 사람이 됐다고 말합니다. 침팬지와 인간의 유전자가 1.2%밖에는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런 말이 그럴듯하게 들리죠. 하지만 이는 진화라는 말을 잘못 이해한 겁니다.
 
침팬지와 인간이 유전적으로 가까운 관계인 것은 맞지만, 침팬지가 인간보다 유전적으로 뒤떨어진 동물은 아닙니다. 침팬지와 인간은 오래전 하나의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고 이후 독자적으로 변화해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그 결과 인간은 두 발로 땅에서 걷기 쉽게 되었고, 침팬지는 나무를 타기 쉽게 되었죠. 인간이 더 발전한 게 아니라 각기 다른 형태로 나뉜 겁니다. 침팬지가 갑자기 진화해서 ‘인간’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이야기죠.
 
영화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은 알츠하이머 치료약을 실험하던 중 유전자 치료를 위한 바이러스 때문에 유인원이 똑똑해진다는 설정입니다. 유전자가 변형될 경우 두뇌의 발달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갑작스러운 진화보다 더 자연스럽게 여겨집니다. 실제로 바이러스에 의한 유전자 치료는 현재도 연구 중입니다. 알츠하이머를 비롯한 많은 병이 유전적인 영향으로 발생하기 쉬운 만큼, 해당 유전자를 수정하면 유전 질병의 진행을 늦추거나 막을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유전자 조작은 이미 발현된 성질에 대해서 바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알츠하이머 유전자를 치료한다고 해서 알츠하이머로 파괴된 두뇌가 갑자기 회복되지 않듯, 침팬지의 두뇌 유전자가 달라진다고 해서 단번에 두뇌가 발달해서 천재가 될 수도 없습니다. 게다가 침팬지는 두개골이나 뼈대, 발성 기관 등이 인간과 다르다는 것도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인간의 언어를 그대로 말하기도 어렵고, 두 다리로 오랫동안 걷기도 힘들죠. 이런 점에서 영화와 같은 상황이 실제로 벌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리즈는 왜 이렇게 인기가 높은 걸까요? 여기엔 과학보다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윈이 ‘진화론’을 처음 발표했을 때 많은 사람이 그를 비판했습니다. 그중 누군가는 “원숭이는 당신들의 할아버지 쪽 조상입니까, 아니면 할머니 쪽 조상입니까?”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한 학자는 이렇게 대답했죠. “나는 원숭이가 내 조상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도 사실을 왜곡하는 사람과 혈연관계라는 점이 더욱 부끄럽습니다.”
 
원숭이가 친척이라는 사실보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이 더 부끄러워지는 상황…. 번듯이 차려입고 무장한 인간보다 벌거벗은 유인원이 더 인간적으로 보이는 장면들이 우리의 인간성을 자극하고, 영화에 빠져들게 하는 건 아닐까요? 물론 이런 상황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인간의 미래는 좀 더 나아지리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성’은 대화와 이해, 그리고 반성을 통해 진화하는 법이니까요.
 
 
 
 
 
글=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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