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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시조백일장

중앙시조백일장 9월 수상작 
 
 <장원>  

 겨울 예감
 
 최승관

 
 진눈깨비 흩뿌리는 빈 들녘에 홀로 섰다
 때 늦은 철새무리 날갯짓 망설이다
 살얼음 강가에 내려 무딘 부리 닦는 새벽
 
 못 박힌 부스러기 동강 난 목재 모아
 공사장 모닥불에 미련 없이 던져 넣고  
 이슬에 젖은 작업복 입은 채로 말린다.
 
 일감은 끊어지고 풀려가는 먹이사슬
 고향집 떠난 뒤로 헛짚는 보금자리
 빛바래 지친 날개론 갈 수 없는 먼 남쪽
 
 버거운 걸음으로 징검다리 넘는 철새
 외투 깃 높게 세워 등 돌린 골목 뒤로
 강물은 살얼음 넓혀 긴 다리를 놓고 있다.  
 
 ◇최승관  
1957년 서울 출생. 2012년 월하 이태극전국시조백일장 장원. 중앙시조백일장 차상 3회.

 
 
 
 
 
 
 
 
 
 
 
 
 <차상>
  
 사마귀처럼       
 
 이상익
 
 1
 내 앞길 막지 마라 물러서지 않으리
 
 온 몸이 으깨져도 등을 돌리지 않는
 
 무사의 일도패기(一刀覇氣)가 양손에 들렸나니,
 
 2
 사랑은 말로써 완성되는 게 아니지....
 
 격정의 그 순간에 몸 내어 줄지라도
 
 죽도록 사랑했기에 기꺼이, 네게로 간다
 
 <차하>
 
복돼지 순대집
 
 김영옥
 
 안 주인 양 팔뚝에 상흔(傷痕)이 선연하다
 살아 온 자취만큼 세월을 휘돌아서
 건너는 여울살마다 굽이굽이 견딘 삶
 
 비릿한 세상살이 서글픔 우려내고
 살코기 내장 순대 뚝배기에 찰랑이면
 후끈히 달아오르는 혈관 속의 포만감
 
 남루한 일상들은 더께로 쌓여지고
 잡다한 상념들이 소주로 희석될 때
 고역의 시름 토하며 아수라 꽃 피운다
 
 취기로 비틀대는 파장(罷場)의 순대 집에  
 뽀오얀 국물처럼 다가오는 주인 미소
 긴 여정 고단한 하루 별빛 속에 묻힌다    
 
 <이달의 심사평>
지난 여름의 그 엄청난 폭염과 폭우와 천둥과 번개를 참 용케도 뚫고 우리나라에 가을이 왔다. 결실의 계절이 다가와서 그럴까? 이번 달에는 응모 작품의 편수가 눈에 띌 정도로 늘어났고, 거의 대부분의 응모자가 처음 응모하는 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정말 아쉽게도 전반적인 숙성의 정도는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다.  
 계절과는 다소 맞지 않지만, 최승관의 '겨울 예감'을 장원으로 뽑았다. 이 작품은 극한 상황에 처해 있는 공사장 인부의 불안하고 고단한 삶을 같은 상황에 처한 철새에다 교묘하게 겹쳐놓은 작품이다. 바로 이 두 가지 이미지의 중첩을 통해 아주 자연스럽게 시적 완성도를 높여나간 점이 돋보였으며, 끝부분의 세계에 대한 긍정과 화해의 시선에도 방점을 찍었다. 차상으로 뽑은 이상익의 '사마귀처럼'은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랑의 맹목적 속성을 뜨겁고도 역동적으로 표현해 낸 점이 눈길을 끌었다. 그와 같은 주제를 무모하고 저돌적일 뿐만 아니라 교미를 끝낸 뒤에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기도 하는 사마귀를 통하여 형상화한 것도 적절한 선택으로 느껴졌다, 차하로 뽑은 김영옥의 '복돼지 순대집'은 그 제목만큼이나 서민적 삶의 훈훈한 온기를 뿜어내는 따뜻한 작품이다.  
 뽑힌 분들은 물론이고, 임주동, 서재필, 최분현, 류용곤 등 아쉽게 탈락한 분들도 좀 더 분발하여 뜸이 제대로 든 시조의 세계를 열어주기를 기원하는 마음 간절하다. 심사위원: 박명숙·이종문(대표집필 이종문)
 
 초대시조  
 
 램프  

 
전원범  
 
가슴까지 차오르는 하루의 계단 끝  

기척 없이 다가와  
물빛 잠을 사루다가  
기억의 가장자리로  
짙어오는 생각들 
 
넘치는 물살의  

욕망은 가라앉고  
하루를 살다가도 몇 번이나 지웠다 쓴  
뉘우침의 가지 끝에서  
타오르는 빛이여. 
 
돌아오는 사람과  

돌아가는 사람들이  
마지막 출항의 등불을 밝힐 때  
맨살의 가슴 위에서  
출렁이는 바닷물  
 
떠밀리는 세월 속  

창마다 걸리어  
보이지 않는 손 그리움의 빛깔로  
누구의 여윈 가슴에  
젖어 타고 있을까  
 
◇전원범  

전북 고창 출생. 중앙일보 동시, 한국일보 시조 등단. 시조집 『걸어가는 나무』『허공의 길을 걸어서 그대에게 간다』 등. 방정환문학상·한국시조작품상·황산시조문학상 등 수상.  
 
가을이 깊어가는 소리를 듣는다. 옛일이 되고 말았지만, 불쑥 밀어닥친 어둠 속에 호야등불을 처마 끝에 매다는 손들이 있었다. 그 무렵 ‘램프’는 도시적인 감수성과 함께 가을의 후미진 곳에서 외로움을 타는 존재자의 눈빛을 떠올리기에 족했다.  

 시조 '램프'의 첫 행, ‘가슴까지 차오르는 하루의 계단 끝’은 시간을 공간화하면서 생의 고양된 지점을 보여준다. 시인은 그 높이에 ‘램프’를 걸고 점등의 시간을 갖는다. 그 등불 아래 뒤척이는 밤이면, 꿈속에서 물빛 잠을 이루다가 마침내 뉘우침의 불빛으로 타오른다. 여기서 돌연히 ‘뉘우침’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돌아오는 사람과/ 돌아가는 사람’이 ‘마지막 출항의 등불’에 얼굴을 밝히듯, 지상적 존재자로서 인과를 헤아리고 여기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연약한 자아에 대한 쓸쓸한 자기반성이 아닐까. 끝부분의 ‘젖어 타’는 시간은 경험적 과거이자 진행형으로서의 현재이다. 시인은 몽상을 통하여 과거를 현재에 불러들인다. ‘램프’의 불빛이 비추는 곳에는 결코 지워버릴 수 없는 기억의 실체들이 몸을 드러낸다.  
 시조 '램프'에서는 기억의 성소(聖所)를 마련하기 위해 쓸거나 닦고, 지우거나 흔들리는 의식을 치른다. 그리고 맑게 닦인 그곳에 서서, 먼 기억을 향해 불빛을 던진다. 단아한 시조 형식과 투명하게 우려낸 영혼의 빛깔이 정밀하게 연결되는 엄숙한 시간이 바로 여기에 있다. 염창권 시조시인 
 
◇응모안내=매달 20일 무렵까지 접수된 응모작을 심사해 그달 말 발표합니다. 우편(서울시 중구 서소문로 100번지 중앙일보 문화부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 우편번호 100-814) 또는 e메일(choi.sohyeon@joongang.co.kr)로 접수할 수 있습니다. 02-751-5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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