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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의 시시각각] 문 대통령이 인용한 레이건의 진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세계 90여 개국 정상이 모인 유엔 무대는 미국과 북한의 선전포고의 장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조연설에서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평화는 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분쟁을 평화로운 방법으로 다루는 능력을 의미한다(1982년 5월, 모교인 유레카대 졸업식)”는 미·소 냉전 시대의 명언을 인용했다. 북핵 상황은 안정적으로 관리돼야 한다고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실제 역사에서 레이건은 분쟁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는커녕 분쟁의 한쪽 당사자인 소련을 붕괴시켰다. 그는 유레카대 연설 두 달 전에 폴란드 내 반소(反蘇) 종교·시민세력의 저항을 지원하는 비밀공작을 승인했다. 연설 몇 달 뒤엔 서독에서 생산한 가스관 부품의 소련 수출을 차단하는 대소(對蘇) 기술봉쇄에 착수했다. 1983년 1월엔 ‘소련과 공존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국가안보 행정명령을 내린다. 83년 3월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묘사하며 “공산주의의 마지막 페이지가 쓰이고 있다(미국 복음주의협회)”는 발언으로 소련 붕괴의 신호탄을 쐈다.
 
그때는 워싱턴·뉴욕·시카고·샌프란시스코 등 미국의 도시 하나하나가 소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표적인 시절이었다. 레이건은 시민의 자유를 부정하고 주변국의 인권과 주권을 유린하는 공산독재 체제를 악으로 규정했다. 대통령으로서 쓸 수 있는 거의 모든 자원을 악의 제국, 소련 붕괴에 쏟아부었다. 백악관 안보보좌관실은 소련의 핵탄두가 탑재된 ICBM을 우주 공간에서 요격하는 전략방위구상(SDI)을 창안했다. 소련 핵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투영됐다. 레이건은 “핵동결 협상론은 위험한 사기극이다. 평화는 힘을 통해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련 핵 위협에 끌려다니면서 협상하기보다 선제 보복 능력으로 대화를 이끌겠다는 얘기였다.
 
SDI는 달러가 부족한 소련으로 하여금 소모적인 군비경쟁에 뛰어들게 해 경제를 거덜내는 효과를 노렸다. 군사를 치면서 경제까지 무너뜨리는 창의적인 일석이조(一石二鳥) 전략이었다. 빌 케이시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관련국을 설득하거나 압박해 소련으로 흘러가는 달러를 꽁꽁 묶었다. 사우디아라비아한테 중동 패권국이 될 수 있게 첨단 무기를 제공하는 대가로 국제 유가(油價) 인하를 주도하라고 요구했다. 원유 수출에 달러 수입의 대부분을 의존하는 소련 경제를 파탄시키기 위한 공작이었다.
 
레이건 대통령의 공산독재 붕괴 선언과 물샐틈 없는 정책 집행은 소련 공산당과 군부 고위 간부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그들의 행동은 위축됐다. 결국 89년 동유럽은 해방됐고 91년 소련도 해체됐다. 레이건의 ‘소련 붕괴론’ ‘공산주의 악마관’ ‘핵동결 허구성’ ‘힘에 의한 평화정책’은 이론이 아니라 역사적 진실로 입증된 것이다.
 
유엔 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레이건 인용은 의외였다. 그의 지지자 가운데 레이건을 좋아하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설마 레이건의 역사적 진실을 모르고 문장만 빌리진 않았을 것이다. 레이건은 자유와 인권을 유린한 공산독재의 핵 공격성을 무력화한 국가 지도자다. 핵무기 하나로 한국을 손아귀에 쥔 듯 지배자 행세를 하는 김정은을 다루기 위해 꼭 연구해야 할 사람이다. 문 대통령 주변엔 ‘미국만 사고 안 치면 핵 가진 북한과 핵 없는 한국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는 만화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 가운데 레이건의 가치를 아는 참모가 있다니 한겨울 매화처럼 반갑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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