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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중앙신인문학상] 소설 부문 당선작 - 이현석 ‘참(站)’

철문 앞에 선 진영의 손목에, 교도관이 자외선으로 식별하는 투명도장을 찍었다 
[일러스트=화가 김태헌]

[일러스트=화가 김태헌]


한쪽 문이 닫혀야 반대쪽 문이 열린다.
 
교도소의 출입구는 이런 식이다. 보안출입초소로 들어온 진영은 관리자에게 신분증과 휴대전화를 맡겼다. 그는 건네받은 출입증을 패딩점퍼 위로 목에다 걸었다. 안내를 맡은 교도관이 그에게 다가왔다. 일단 자리에 앉자고 한 교도관은 법무부 인장이 찍힌 서류 몇 장을 테이블 위에 펼쳤다.
 
“보안시설이라 귀찮은 게 많습니다. 여기다 이 교수님 서명부터 쭉 해주시고요. 하시는 동안 일정만 다시 확인해보겠습니다. 보름 간격으로 총 세 번 방문하시도록 양 기관 간에 합의된 건 아시죠?”
 
진영은 서명을 하며 안다고 했다. 교도관은 말을 이었다.
 
“오늘은 먼저 진정인과 면담이 있고요, 직후에 저희 측 관계자들과 미팅이 있습니다. 다음 회차에는 사동 내부를 교수님께서 직접 보실 거고, 마지막 방문 때는 의무과장님과 집중 면담이 예정돼 있습니다.”
 
진영이 끄덕였다. 국가인권위에서 의학자문을 촉탁해올 때 전달받은 내용과 같았다. 서명이 끝난 서류를 챙긴 교도관은 이제 들어가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먼저 금속 탐지기를 통과했다. 진영이 뒤따랐다. 철문 앞에 선 진영의 손목에 교도관이 자외선으로 식별하는 투명도장을 찍었다.
 
철문이 천천히 열렸다. 한기가 파고들었다. 교도소 본관으로 향하는 넓은 마당엔 짙은 구름이 그림자를 드리웠다. 녹지 않은 눈이 곳곳에 남았고 사방을 둘러싼 담장 아래에는 더미째 얼어붙어 있었다. 앞에 보이는 본관은 좌우로 퍼져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건물은 ‘ㄷ’ 모양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전면 건물은 일반 사무가 이루어지는 업무동이었다. ‘ㄷ’ 사이 중정(中庭)에서 후면 건물을 보면 정방형 구멍을 규칙적으로 뚫어둔 을씨년스러운 모습이 펼쳐졌다. 그곳이 재소자들이 수감된 사동이었다. 두 건물 옆을 잇는 측면 건물에는 식당이나 실내노역장 같은 부대시설이 있었고, 의무동 역시 그 건물에 있었다. 마당을 지나며 교도관이 본관 구조를 설명했으나 진영은 흘려들었다. 괴괴한 건물에 압도된 것도 한 이유였지만, 그보다는 교도관이 반복해서 쓰는 ‘교수’라는 호칭 탓이 컸다. 마치 자신이 거짓명함을 뿌린 것만 같았다.
 
오 년 전 예방의학 전문의가 된 진영은 레지던트 수련을 마친 대학에 남았다. 기초의학 전임강사로 채용된 그는 매년 이맘때가 되면 총무과에서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메시지는 늘 ‘재계약 갱신 안내’로 시작했다. 작년 초에 이 메시지를 받았을 때만 해도 자신 역시 이곳을 나가게 되리라 예감했다. 적잖은 선례가 있었지만 그 무렵, 김 선배가 의국(醫國)을 나간 일은 꽤 여파가 컸다. 김 선배는 홀로 남은 부친을 부양한다는 핑계로 오랜 전임강사 생활을 끝내고 고향에 의원을 차려 나갔다. 임상의료 경험이 부족한 예방의학자에게 개원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십 년 가까이 강사생활을 한 그에게 교수직이 나기만을 기다리라고 할 수 있는 이도 없었다. 우려와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가 나간 후 연차가 가장 높은 전임강사는 진영이 되었다.
 
열패감 때문인지, 개원에 실패했기 때문인지 교수 임용을 단념하고 나간 이들은 대부분 연락이 끊겼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김 선배의 개원은 성공적이었다. 한 달 전, 그는 교직을 그만둔 뒤 처음으로 의국 송년회에 참석했다. 오랜만에 만난 교수들과 선후배들에게 의원 경영이란 새로운 영역에 대해 말하던 그가 이번 차는 자신이 내겠다고 선언했다. 호프집에는 박수와 웃음이 터져 나왔다. 평소 의국 분위기와 달리 송년회 자리는 시끌벅적하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끝까지 웃을 수 있는 이는 없었다.
 
“김 선생은 대학에 남았어야죠.”
 
일차 자리가 파할 무렵이었다. 사람들이 자리에서 하나둘 일어날 때, 긴 테이블 끝에서 들려온 한마디가 정적을 불렀다. 김 선배는 최 교수에게 괜한 말씀 마시라며 어색하게 웃었다. 진영은 고개를 숙였다. 검은 대리석 바닥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본 그는 눈을 감아버렸다. 눈을 감았어도 사람들이 자신을 힐끔거리는 게 느껴졌다. 그제야 그는 이번 건을 맡으면서 디폴트값처럼 깔려 있던 꺼림칙함의 정체를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최 교수는 오랫동안 두터운 신망을 받아온 학자였다. 본인이 민주화운동으로 수감생활을 했기에 교도소 문제는 그의 주된 관심사였고, 신뢰하는 제자에게만 맡기던 사안이었다. 김 선배는 그런 제자였다. 그가 남았더라면 자신이 이 건을 맡았을 리 없다고 진영은 생각했다.
 
그만큼 김 선배는 최 교수와 방향성이 맞았다. 일부 분야에서는 최 교수보다 급진적일 때도 있었다. 게다가 그는 최 교수처럼 이 대학 학부를 졸업했다. 반면 진영은 괜찮은 간판만 보고 들어온 타교 출신이었다. 이전까지 그는 교정시설 같은 것이 의학의 관심사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적응은 쉽지 않았다. 특히, 과학적 합리성보다 사회적 합의가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사안을 처음 마주했을 때 느낀 당혹감은 잊을 수 없었다. 그의 문하에서 수년을 보내며 이런 학풍에 서서히 동화되어 왔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뒷목을 잡아끄는 찝찝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마도 평소라면 최 교수의 말을 흘려들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다들 상황이 달라졌다는 걸 알고 있었다. 송년회가 있기 몇 달 전부터 십여 년 만에 교수직 정원이 추가될 거란 말이 돌았다. 그러니까 진영이 올해 받고자 하는 문자메시지는 ‘전임강사 재계약 안내’가 아니었다. 그가 바라는 건 ‘교수임용 심사 안내’였다. 그의 입장에서 김 선배는 그날 그 자리에 없었어야 했다. 때문에 최 교수가 조용히 뱉은 한마디는 진영을 깊은 침묵에 빠지도록 했다. 일차 자리가 파한 뒤, 최 교수와 김 선배는 택시를 타고 먼저 집으로 갔다. 진영은 늦게까지 술자리에 남았지만 누군가와 말을 섞는 일은 드물었다.
 
접견실의 강화유리 너머로 진정인이 들어왔다. 맞은편에 앉은 진정인은 수의(囚衣) 주머니에서 뿔테 안경을 꺼냈다. 단정하게 빗은 머리카락이나 두터운 안경이 수의와 썩 어울리지 않는다고 진영은 생각했다. 진정인은 사회에서부터 사망자와 막역한 사이였다고 했다. 사건이 일어난 것은 십 개월 전이었다. 그는 그때도 석연찮다 여겼지만 보복이 두려웠다. 만기가 다 되어서야 인권위에 진정이라도 넣을 용기가 생겼다고 했다. 이제 출소가 열흘밖에 남지 않았다는 그에 따르면, 사건 요지는 이랬다.
 
천식이 있던 오십 대 사망자는 수감 생활 내내 똑같은 약만 처방받았다. 증상이 심해져 외진을 신청했지만 가벼운 폐렴이라며 의무과에서는 불허했다. 사망자는 진료실에서 항의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진정인은 그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치통이 심해도 아프다는 소리를 못해 이가 몽땅 빠졌을 정도라는 것이었다. 진위야 어쨌든 소란을 이유로 사망자는 징벌방에 들어갔다. 징벌방에 혼자 갇힌 지 사흘째 새벽, 사망자는 천식 발작을 일으켰다. 아침에 교도관이 발견해 인근 병원으로 후송했지만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여기까지는 진영도 의무기록지를 조사하며 알고 있던 내용이었다. 그는 진정인에게 추가할 내용은 없느냐고 물었다.
 
진정인은 흘깃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보는 눈이 없음을 확인한 그는 양팔을 슬며시 뻗었다. 수의에 가렸던 손목이 드러났다. 굵은 팔찌를 찬 듯 선명히 남은 흉터가 보였다. 다시 소매 밑으로 손목을 숨긴 진정인은 강화유리에 난 작은 구멍들로 머리를 바짝 붙이며 속삭였다.
 
“징벌방에선 계구(戒具) 때문에 옴짝달싹 못해요. 혁대 같은 걸로 꽉 조아 버리거든요. 이런 상처가 남을 만큼 말입니다.”
 
진정인은 그중에서도 안면계구가 최악이라 했다. 입을 틀어막고 얼굴을 죄니 미칠 노릇이라는 것이었다. 조심스레 두리번거린 그는 진영에게 물었다.
 
“숨 막혀 죽는 사람이 어디 그렇게 조용히 죽겠어요? 벽을 치든, 머리를 박든 뭐라도 했을 거 아닙니까? 그런데 교도관들은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내 보기에 이건 죽을 때까지 계구를 채운 거요. 그러지 않고서야 ….”
 
진영은 이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접견을 마친 뒤에도 그는 자리에 앉아 수첩을 뚫어지게 보았다. 그는 ‘계구’라는 단어 위로 연달아 동그라미를 쳤다. 동그라미를 겹쳐 그릴수록 손에 힘이 들어갔다. 국가기관의 임의 처벌이 사망 원인이라면 상당한 스캔들이었다. 그의 머릿속에 큼직한 단어들이 지나갔다. 의혹이라든가 불의, 은폐나 정의 같은 것들. 하지만 머리 한구석에 똬리를 틀고 끝까지 남은 단어는 ‘기회’였다. 닿을 듯 닿지 않던 뿌리를 움켜질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고 그는 생각했다.
 
 
접견실을 나선 진영은 교도관과 함께 의무동으로 갔다. 의무과장의 오후 진료가 아직 끝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진영은 필라멘트 조명이 아늑하게 비추는 의무과장의 집무실에서 그를 기다렸다. 백양목 프레임이 드러난 소파와 일인용 암체어 사이에 비대칭 타원을 그리는 다탁이 놓여 있었다. 소품 하나하나가 교도소와는 거리가 먼 묘한 공간이었다. 무엇보다 그의 시선을 잡아챈 건 창가의 책장이었다. 창문틀에 맞춘 사각의 빈 공간을 제하면 책장은 의무과장의 책상 뒷벽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었다. 책장은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이라든가 『고요함의 폭력』 같은 골치 아픈 제목들로 가득했다. 그는 낯선 책들처럼 의무과장도 답답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자신의 예단이 빗나갔음을 깨달았다.
 
“우리가 미진한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생기면 의무과를 탓하는 것도 이 사람들에겐 관례죠.”
 
동석한 교도관들은 의무과장의 말에 주억거리며 맞장구쳤다. 코튼셔츠 위에 자주색 케이블 카디건을 덧입은 세련된 외양만큼이나 그의 말투는 부드러웠다. 진영은 그가 오십대 후반의 공무원이라는 걸 믿을 수 없었다.
 
“하필 그때 천식 발작이 일어날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습니까?”
 
의무과장의 말에 진영이 고충을 이해한다고 했다. 의무과장은 사람 좋게 웃었다. 진영은 쟁점 사항을 간략히 물었다. 의무과장은 그때마다 막힘없이 답했다. 천식 같은 만성질환에 반복 처방은 당연하다. 폐렴은 방사선 결과상으로도 경증이다. 이런 경우 충분히 외진을 반려할 수 있다. 사인은 천식 발작에 의한 기도폐색이다. 시기적으로 몇 개월 앞선 폐렴과는 맞지 않다.
 
“의무과에서는 최선을 다했다는 말씀이시죠?”
 
영상을 다시 틀었다, 화면 속 남자는 겹겹의 벽에 갇혀 있었다
[일러스트=화가 김태헌]

[일러스트=화가 김태헌]


진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의무과장은 자신이 할 말을 이 교수가 대신 해준다며 웃었고 교도관들은 박장대소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진영이 ‘계구’를 화두에 올렸을 때였다. 입에서 웃음기가 사라진 의무과장은 교도관 중 한 명에게 고갯짓을 했다. 그 교도관은 계구를 착용해도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스물네 시간 뒤에는 탈거한다고 말했다. 진영은 그렇다면 관련 자료를 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자료 요청은 이 교수님께서 인권위에 직접 하시면 되고요, 인권위에서 법무부로 협조 요청이 오면 법무부에서 검토해 제출 여부를 결정할 겁니다. 승인이 나면 공문이 교정본부로 올 테고, 그러면 저희도 사본을 드릴 수 있습니다.”
 
말을 마친 교도관이 의무과장을 슬쩍 보았다. 찻잔을 만지는 의무과장은 이미 온화한 낯으로 돌아와 있었다. 차를 한 모금 마신 그는 교도관들을 둘러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최대한 협조해 드리세요.”
 
남자는 퀭한 눈으로 앞을 응시한다. 그의 입가는 버짐으로 까끌까끌하다. 그가 입을 벌린다. 입술 뒤로 이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맹견에게 씌울 법한 가죽 입마개가 입을 가린다. 울대가 위아래로 요동친다. 굵은 가죽 끈이 입마개의 네 모서리에 달려 있다. 위의 두 개로 뒤통수를 단단히 죈다. 아래 두 개로 뒷목에 살이 삐져나올 만큼 팽팽히 고정시킨다. 일순 찡그렸다 뜬 눈에는 무력감이 새겨 있다. 이어지는 영상은 역순이다. 날짜만 바뀌었을 뿐 남자의 얼굴은 전과 다르지 않다.
 
진영은 연구실에 앉아 사망자의 계구 착탈 영상을 거듭 보았다. 최대한의 협조라기엔 썩 미덥지 않았다. 이차 방문 예정일을 이틀밖에 남기지 않고서야 자료가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영상을 정지한 그는 책상에 던져둔 계구착용일지를 바라봤다. ‘계구 착용 중 이상 징후 없음.’ 다음 칸에도, 그 다음 칸에도. 마지막 칸에 ‘계구 탈거’가 나오기 전까지 똑같이 적혀 있었다. 일지만큼 조악하지는 않았으나 그는 영상자료도 믿기 어려웠다. 단서라곤 화면에 기록된 시간뿐이었다. 그건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바꿀 수 있는 것이었다. 탈거하는 장면을 미리 찍어뒀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미심쩍은 면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뚜렷하게 잡히는 것도 없었다. 그는 의자 등받이를 젖혔다. 가느다란 한숨이 천장에 닿았다. 모니터를 보느라 벌게진 눈을 감았다.
 
어떻게 했을까.
 
내가 아닌 김 선배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자문하던 그는 각인된 장면을 떠올렸다. 어느 시골의 마을회관이었다. 그곳에서 김 선배와 그는 환호하는 주민들을 보았고, 주민들 곁에는 최 교수가 있었다.
 
마을에는 한때 큰 주물공장이 있었다. 일흔여 가구에 불과한 마을에서 몇 해 사이 암 환자가 열댓 명이나 발생했다. 의뢰를 받은 최 교수는 김 선배에게 실무를 맡겼다. 당시 레지던트였던 진영은 그와 함께 수시로 마을에 갔다. 주물공장은 사라졌지만 거대한 부지만으로도 몇 기의 용광로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용광로를 끓게 하려면 다량의 코크스가 필요하다. 용융된 코크스는 다환 방향족 탄화수소라는 발암성 부산물을 배출한다. 언뜻 보면 원인과 결과가 명백했다. 하지만 사라진 공장에서 발암물질이 얼마나 나왔으며, 실제로 인체에 얼마나 흡수되었는지 추정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추정 방식을 두고 최 교수와 예전 사업주가 날카롭게 대립했다. 조사를 시작한 지 만 이 년을 꽉 채우고서야 지자체에서 보상안을 수립했다. 구제책을 발표하던 날, 마을회관에 모인 노인들은 서로를 끌어안았다. 몇 명은 최 교수에게 안겨 펑펑 울기도 했다.
 
늘 지기만 하던 이들이 승리의 감격을 나누는 장면은 사뭇 감동적이었다. 회관을 휩싼 감정에 동요된 진영도 울컥하는 걸 느꼈다. 그럼에도 한편에 남은 의구심은 떨치지 못했다. 입증된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나. 혼자서 이 말을 삼킬 때, 그가 있는 쪽으로 최 교수가 다가왔다. 최 교수는 김 선배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고생 많았어요.”
 
그 손을 진영은 선명히 기억했다. 최 교수는 진영에게도 위무의 말을 건넸지만 그의 손은 진영의 어깨에 닿지 않았다. 오히려 무테안경 뒤로 비치는 그의 눈이 서늘해 보이기까지 했다. 진영은 자신이 숨기던 의문이 꿰뚫린 것만 같았다. 노기마저 느껴지는 그 눈 때문에 진영은 시선을 내리 깔았다.
 
이미 그때 모든 것이 결정되지 않았을까, 진영은 생각했다. 자신의 몸만 피해간 최 교수의 손이 그에 대한 불신을 증명한 게 아니었을까. 유쾌하지 않은 장면까지 기억한 진영은 머리를 흔들었다. 자세를 바로 하며 그는 마우스를 움직였다. 영상을 다시 틀었다. 화면 속의 남자는 겹겹의 벽에 갇혀 있었다. 물리적 폐쇄성은 은폐를 용이하게 했다. 반면 진영은 의학자문에 불과했고 수사권도 없었다. 숨기는 정황은 있었지만, 무엇도 확증할 수 없었다. 모니터에 비치는 남자는 슬픔도, 고통도 탈색된 눈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진영의 고민이 깊어갔다.
 
 
거미가 징벌방 안으로만 내린 듯 어스레했다. 왁스 냄새 틈으로 비린내가 났다. 청소의 흔적은 완연했지만 불결함을 감출 순 없었다. 징벌방을 치우기 전에는 먼지와 오물이 꽤 있었을 것이고, 천식 발작에 영향을 주었으리라 진영은 짐작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는 더 확실한 게 필요했다.
 
사실, 진영은 처음부터 이차 방문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이미 문헌조사로 알고 있던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평소 사망자가 생활했던 혼거실은 생각보다 깔끔했다. 식사도 여느 구내식당과 다를 바 없었다. 사망자가 노역했던 가죽 작업장도 사회의 영세사업장과 비교하면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징벌방 역시 예상했던 만큼 열악했을 뿐이었다.
 
징벌방을 마지막으로 사동 내부 조사를 마친 진영은 중앙복도로 향했다. 중앙복도로 나가는 목에도 이중철창이 있었다. 교도관이 지문인식기에 검지를 댔다. 안쪽 철창이 천천히 옆으로 열렸다. 그들은 철창과 철창 사이로 들어갔다. 철컹거리며 안쪽 철창이 완전히 닫혔다. 그걸 확인한 교도관은 바깥으로 나가는 철창 옆에 손가락을 댔다. 하지만 열리지 않았다.
 
“이게, 추울 때는 가끔씩 이럽니다.”
 
저무는 볕이 창살 사이를 비추었다, 그들의 등 위에 줄무늬 그림자가 졌다

[일러스트=심수휘]

[일러스트=심수휘]

교도관이 머쓱해하며 지문인식기를 손으로 감쌌다. 체온으로 얼마간 덥힌 후에야 철창이 작동했다. 그렇게 중앙복도로 나왔을 때였다. 진영은 정연한 발자국 소리들이 가까워지는 걸 들었다. 그가 소리 나는 쪽을 보자 무리의 선두에 선 자가 그에게 목례를 했다. 사동 순회 진료를 마치고 의무동으로 돌아가던 의료진들이었다.
 
“지내기에 녹록지 않은 곳이지요?”
 
가까이 온 의무과장이 살갑게 물었다. 예기치 않은 만남이 당혹스러웠던 진영은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의무과장은 방향이 같으니 함께 걷자고 했다. 진영은 대면할 준비가 되지 않은 채 만난 그가 꽤나 껄끄러웠다. 말을 아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어색한 침묵 역시 허점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이 교수는 천식 발작으로 죽어가는 환자를 본 적이 있나요?”
 
다행스럽게도 의무과장이 먼저 침묵을 깼다.
 
“없습니다. 임상 경험은 인턴 때가 전부였으니까요.”
 
“하긴, 저도 직접 본 건 한 번뿐입니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벽지에서 복무하던 때니까 삼십 년도 넘었네요.”
 
그는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그가 있던 보건소에 한 중년 남성이 쇳소리를 내며 업혀 왔다고 했다. 천식 발작이 명확해 보였지만 경험은 부족했고 시설은 열악했다. 가까운 병원도 차로 한 시간은 걸렸다. 급한 대로 그는 후두경을 밀어 넣었다. 입 안을 헤집었지만 기도관을 넣을 시야는 확보할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의 입에 힘이 꽉 들어갔다. 후두경을 깨문 앞니가 깨졌다. 잠시 그를 노려보던 남자의 검은 눈동자가 단말마의 호흡과 함께 돌아갔다.
 
“맨 정신으로 죽는다는 게 ….”
 
말끝을 흐린 의무과장의 얼굴엔 이상하게도 옅은 미소 같은 게 번졌다. 나란히 걷던 진영은 볼 수 없었지만 상냥한 듯 교만해 보이고, 자신만만하지만 비굴해 보이는 기묘한 표정이었다.
 
뒤따르던 의료진들은 아는 이야기인지 별 반응이 없었다. 진영을 안내하던 교도관만은 처음 듣는 모양이었다. 이후에 어찌되었는지 교도관이 물었고 의무과장은 무슨 말인가를 덧붙였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동안 진영은 다른 눈을 떠올렸다. 그가 끊임없이 보아 온 사망자의 무력한 눈이었다. 그 눈을 떠올리자 진영은 까맣게 잊고 있던 자가 생각났다. 지금쯤 출소했을 거라 여긴 그는 진정인이 언제쯤 나갔는지 물었다. 가벼운 질문이었지만 누구 하나 쉽사리 대답하지 않았다. 의무과장은 교도관과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게, 그분은 출소가 연기됐습니다.”
 
쭈뼛거리며 교도관이 말을 꺼냈다. 진영은 의아해하며 그를 보았다. 검방 중에 금지품목이 나와 근신 처분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검방이라니. 그것도 출소를 며칠 남기지 않은 자 아니었나. 자중해도 모자랄 판에 무슨 짓인가. 화가 치밀어 오른 진영은 이건 보복행위가 아니냐며 언성을 높였다. 교도관은 통상적인 절차였을 뿐이라고 그를 달랬다. 하지만 의무동 입구를 몇 발자국 앞둔 그는 걸음을 멈추었다.
 
“이 교수, 늦게 나가는 게 더 좋은 자도 있어요.”
 
비석처럼 선 그에게 의무과장이 말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그가 물었다. 의무과장은 교도관을 보며 그를 턱으로 가리켰다. 교도관은 의학자문에겐 제공될 수 없는 정보라며 곤란해 했다.
 
“아니요. 이분도 아셔야 하지 않을까요?”
 
의무과장의 말에 교도관은 할 수 없다는 듯 이야기했다.
 
진정인은 미성년자를, 정확히는 아동을 강간했다. 랜덤채팅 사이트에서 그는 남자아이인 척했다. 덫에 걸린 건 열두 살짜리 여자아이였다. 부모님이 여행을 갔다. 집으로 와라. 아이가 들어섰을 때 그는 문을 잠갔고, 그와 함께 있던 다른 남자는 아이를 붙들었다. 실제로 둘은 사회에서부터 막역했다. 문을 잠근 건 진정인이었고, 아이를 붙든 건 사망자였다. 두 명이 잡히기도 전에 아이는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아이는 죽었지만 살인은 아니었다. 아이의 모친은 그들과 합의했다. 아동강간은 십년 이상이었고 합동강간으로 가중처벌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둘 중 누구도 그 절반 이상을 살진 않았다.
 
고개를 숙인 진영이 눈을 감았다. 씰룩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사망자의 얼굴이 감은 눈앞에 나타났다. 같지만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잔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눈을 떴다. 의무과장이 그의 팔을 토닥였다.
 
“너무 심각해지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교수, 나는 스무 해 넘게 여기서 일했어요. 그 세월이 내게 알려준 게 뭔지 아십니까? 교정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자는 분명히 존재한다는 거예요.”
 
“지금, 임의적인 처벌이 있었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간신히 입을 뗀 진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미 그리 생각하시는 것 아니었나요?”
 
그에게 한 걸음 다가온 의무과장은 나지막이 말했다. 진영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의료진 중 한 명이 의무동으로 들어가는 출입구의 바깥 철창을 열었다. 이제 그만 들어가야 한다는 의료진의 말에 의무과장은 진영에게 보름 뒤를 기약했다. 그들이 이중철창 사이로 들어섰다. 저무는 볕이 창살 사이를 비추었다. 그들의 등 위에 줄무늬 그림자가 졌다. 그들이 의무동 안으로 완전히 사라지고도 진영은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중앙복도에서 업무동으로 나가던 출입구였다. 이중철창이 또 말썽을 일으켰다. 이번에는 체온으로 녹여도 꿈쩍하지 않았다. 교도관은 반대편 지문인식기도 손으로 감싸보았다. 마찬가지였다. 서너 번 시도한 그가 허리춤에서 무전기를 꺼냈다.
 
“에프 일번 출입구, 지문인식기 고장. 방문자와 참에 갇혔습니다. 빠른 조치 바랍니다.”
 
조치는 빨리 이루어지지 않았다. 철창 사이에 갇힌 진영은 시멘트벽에 기대어 쪼그려 앉았다. 벽에서 돋은 한기가 패딩점퍼를 뚫고 등에 닿았다. 둘만 갇힌 상황이 불편했는지 교도관은 손을 비비며 한숨을 쉬었다. 진영은 한쪽 철창을 보곤 천천히 시선을 돌려 반대쪽 철창을 보았다.
 
“이런 곳을 ‘참’이라고 하는군요.”
 
진영이 조용히 말하자 교도관이 화색을 띠었다.
 
“예.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사회에서 미장일 하던 재소자들이 그러더군요. ‘층계참’할 때 그 ‘참’ 말입니다. 어쩌다 보니 저희도 쓰고 있네요.”
 
교도관은 부러 허허거리며 말했다. 참, 참. 진영은 속으로 단어를 되새김질했다. 멍하니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잘게 깬 흑요석을 흩뿌려둔 것 같은 오래된 시멘트 바닥이었다. 단어와 단어 사이로 불편한 기억이 비집고 들어왔다. 제천휴게소인지 옥천휴게소인지 확실하진 않았지만 그 마을로 내려가던 숱한 날 중 하루였다. 그는 김 선배와 휴게소 식당에서 점심을 때우고 있었다.
 
“정말 맞을까요.”
 
자신이 무심결에 흘린 말에 진영은 당황했다. 김 선배는 김치볶음밥 한 숟갈을 입에 넣으려다 말고 그를 쳐다봤다.
 
“무슨 말이야?”
 
진영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지만, 김 선배는 턱 소리가 나도록 테이블 위에 숟가락을 놓았다.
 
“아무것도 아니긴. 아직도 이해 못하겠나? 증명이 중요한 게 아니야. 최 교수님께서도 늘 말씀하시지만, 이런 종류의 연구에선 과학이니 중립이니 따지는 게 아니라고. 그건 오히려 연구자가 져야 할 책임을 방기하는 거란 말이지.”
 
등받이에서 등을 떼며 그가 물었다, 인두겁을 쓴 짐승이지 않은가
[일러스트=화가 김태헌]

[일러스트=화가 김태헌]

 
증명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진영이 이해한 건 연구가 종료될 무렵이나 되어서였다. 처음부터 최 교수가 염두에 둔 건 여론 환기였다. 대중이 피해자의 입장에 공감하면 사업주를 처벌하지 못하더라도 공적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친다. 결과적으로 최 교수의 전략은 맞아떨어졌다. 지자체는 구제방안을 수립했고 주민들은 수긍할 만한 보상을 받았다. 최 교수의 연구는 예외 없이 선의에 입각했고, 선의는 그의 방법론을 정당화했다.
 
“이거 봐, 이 선생.”
 
김 선배는 테이블을 두어 번 두드리며 날선 목소리로 진영을 불렀다.
 
“명심해. 이건 ‘과학’ 이전에 피해자가 있는 ‘사건’이야.”
 
김 선배는 그에게 또박또박 말했다.
 
하지만 아니라면. 그는 입술을 깨물며 속으로 되물었다. 아니라면 어쩔 건가.
 
쪼그려 앉은 진영은 목에 건 교도소 출입증을 만지작거렸다. 그 무렵부터였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보지 못할 거라 여긴 주저함이,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거라 여긴 불온한 목소리가 최 교수의 눈과 귀에까지 흘러들어간 건 그때부터가 아니었을까. 문헌을 조사하는 시간보다는 장거리 운전을 하는 시간이, 자료를 분석하는 일보다 수거한 설문지를 엑셀에 입력하는 일이, 토론에 참여하기보다는 그걸 타이핑하는 날이 점점 늘어갔다. 은근히 배제되고 있음을 그도 모르지 않았다. 마을회관이 환호성과 눈물로 뒤범벅된 날, 최 교수의 눈에서 서늘함을 느낀 건 그의 망상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버텼다.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버텼고, 버티기 위해선 닮아가야 했다. 닮다 보니 버틸 수 있겠다는 허약한 믿음마저 생겼다. 그에게 임용은 단순히 정규직 전환을 뜻하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버텨온 시간에 대한 증명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가능한 일이었나.
 
설비팀 직원이 오는 걸 본 진영은 앓는 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두 발끝이 저렸다. 드라이버, 몽키스패너, 전자장치 등이 설비팀 직원의 공구함에서 들락날락했다. 마침내 직원이 철창을 옆으로 밀었다. 비명처럼 경쾌한 소리가 났다.
 
온종일 흐린 탓에 시간을 가늠하기 어려운 오후였다. 필라멘트 조명이 집무실을 비췄다. 아무도 배석하지 않은 집무실에는 진영과 의무과장만이 마주 앉아 있었다. 마지막 면담이었다. 진영은 소파 옆자리에 벗어둔 패딩점퍼에서 수첩을 꺼냈다. 그가 부실한 자료에 관해 신중히 묻는 걸로 면담이 시작됐다. 악의는 없다고 생각한다. 과실 여부만 알고자 한다. 진영이 설득했지만 의무과장은 확고했다. 불가항력적인 일이다. 당신이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이다. 논박은 한 시간 가까이 계속됐다. 예정된 면담시간이 다 되도록 입장은 좁혀지지 않았다.
 
평행선을 달리던 대화의 균형이 깨진 건 외려 의무과장이 진영을 압박하면서부터였다. 물증 없이 제기한 의문은 법적 책임을 질 수도 있다고 의무과장이 말했다. 진영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것뿐이라 했다. 그 말에 의무과장은 눈을 번득였다. 무엇을 위한 가능성인가. 암체어의 등받이에서 등을 떼며 그가 물었다. 인두겁을 쓴 짐승이지 않은가.
 
“대체 왜 그런 식으로 말씀하십니까? 정말 의도적으로 방치하신 겁니까?”
 
진영이 질린다는 듯 말했다.
 
“뭐, 그랬다고 쳐보죠.”
 
의무과장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런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고 가정해봅시다. 이 교수는 저희가 고의로 방치했다고 보고서를 쓰고 싶을 겁니다. 하지만 증거가 없으니 그럴 수 없겠죠. 반대로 단순 병사라고 쓴다면 아쉬움은 남을 겁니다. 그래도 사망자가 어떤 자인지 알았으니 부담은 덜하겠죠. 그런데 전제가 잘못됐다면요? 이 경우 전자를 택하면 무고가 됩니다. 후자를 택한다면 흠결 없는 보고서가 되겠지요. 어느 경우든 후자로 결론 내리는 게 합당하다고 봅니다만, 어떤 이유에선지 이 교수는 전자에 집착하고 있어요. 그게 단순히 진실에 대한 열망 때문일까? 저는 그리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많이 봤으니까요. 갈급한 마음이 쳐둔 함정에 빠지는 걸 말입니다.”
 
차를 한 모금 마신 그가 말을 이었다.
 
“당신의 갈급함은 무엇일까, 명예나 양심 같은 걸까요? 하지만 이건, 그런 고결한 가치들과는 어울리지 않아요. 파렴치한 소아강간범이 죽은 일이잖습니까?”
 
진영은 사망자의 죄질은 상관없는 문제라며 논점을 흐리지 말라 했다. 그러나 의무과장은 못 들은 척, 말없이 이마선을 긁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무언가 떠오른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마도 ‘인정’이라면, 그렇다면 이해가 됩니다.”
 
그가 말했다.
 
“꼬장꼬장한 그 양반 마음에 드는 일이 쉽지는 않겠죠.”
 
그 말에 진영의 눈이 한껏 커졌다. 조용해진 다탁 위로 라디에이터 소리가 울렸다.
 
“최 교수님을… 아십니까?”
 
진영이 물었다. 의무과장은 당연한 거 아니냐는 듯 입을 삐죽였다.
 
왜 미처 생각하지 못했나. 같은 공간을 두고 오랜 세월 대립한 그들이었다. 숱하게 부닥쳐왔을 그들이었다. 바로 이 소파에 최 교수가 앉았을지도 모른다. 그는 예의 서늘한 눈으로 의무과장을 바라보았을 것이며, 의무과장도 반대편에서 자신의 세계를 지켜왔을 것이다. 비로소 진영은 앞에 앉은 이가 어떤 자인지 실감했다.
 
“하지만 이 교수는 그런 부류와는 다른 것 같군요.”
 
“ …. ”
 
“맹목적인 믿음을 관철하려는 부류 말입니다. 이미 가진 게 많은 이들은 고민할 필요가 없지요.”
 
의무과장은 겸연쩍게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창가로 갔다. 책장 앞에 선 그의 몸이 창으로 스민 외광을 가렸다. 책등을 손끝으로 훑던 그가 진영에게 자녀가 있느냐고 물었다. 미혼이라는 대답에 의무과장은, 보기와 달리 유행에 민감한 모양이라며 헛헛하게 웃었다.
 
“저는 딸애가 하나 있어요. 결혼이 한참 늦어 아직 중학생이죠. 아이를 생각하면, 여기서 보낸 시간이 후회되기도 합니다. 죄인 따위 보려고 의사씩이나 됐냐며 빈정대는 이들도 있었죠. 그 정도는 참을 만합니다. 상대적으로 적은 수입? 그런 건 문제 축에도 들지 않죠. 아이에게 정말 미안한 건 두려움입니다. 앙심을 품은 자가 출소해 아이를 해코지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 교수는 시도 때도 없이 공포를 예감해야 하는 일상을 이해합니까?”
 
한편에는 우연한 죽음이 있었고, 그 반대편에는 은폐된 처단이 있었다

책 한 권을 그가 무심히 꺼냈다. 바스락거리며 종잇장 넘기는 소리가 났다.
 
“그럼에도 평생 이 일을 해온 건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재소자도 마찬가지라고. 선과 악의 비(比)가 담장 밖에 있는 이들과 다르지 않다고. 대부분은 선하며, 그들은 다만 조급했을 뿐이라고. 그렇지 않습니까? 쉬운 길에 대한 유혹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으니까요. 이 믿음마저 없었다면, 아마 견디기 힘들었을 겁니다.”
 
의무과장은 책을 덮었다. 그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그는 한 손으로 뺨을 매만지며 표정을 지웠다. 책을 도로 꽂은 그가 가만히 뒤를 돌아보았다. 진영의 수첩이 패딩점퍼 위에 아무렇게 놓여있었다. 침묵이 내린 집무실에는 필라멘트 조명만 이글거렸다. 의무과장은 책상 위에 놓인 내선전화기의 호출버튼을 눌렀다. 밖에서 대기하던 교도관이 들어왔다.
 
 
교도관이 앞장섰고, 의무과장은 의무동 출입구까지 진영을 배웅했다. 중앙복도로 나가는 출입구에 이르렀을 때 의무과장이 악수를 청했다. 그는 도움이 됐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잘 마무리하겠다고 답한 진영은 형식적으로 그 손을 쥐었다. 의무동쪽 철창이 천천히 열렸다. 진영은 교도관을 따라 참으로 들어갔다.
 
마무리 지을 수 있을까.
 
질문이 그의 머리를 스쳤다. 한쪽에는 감정이 탈색된 무력한 눈이 있었다. 손목에 선명히 남은 계구의 흔적도 있었다. 반대쪽에는 아이가 있었다. 높은 곳에서 몸을 던지려는 아이가 진영을 내려다보았다. 또 다른 한편에는 우연한 죽음이 있었고, 그 반대편에는 은폐된 처단이 있었다. 창백한 에이 포 용지로 눈을 가린 듯 그의 눈앞이 하얘졌다. 백지 뒤로 그림자가 얼핏 비쳤다. 그림자가 다가오며 점차 또렷해졌다. 그들이었다. 송년회가 있던 날, 택시를 타고 돌아가던 그들처럼 보였다. 아니, 마을회관에서 어깨 위에 손이 올라가던 모습 같기도 했다. 백지 위엔 아무것도 적히지 않았다. 결국 완성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백지 너머로 그림자가 다가왔다. 기회는 사라질지도 모른다. 하얀 시야가 잿빛으로 뒤덮였다.
 
철컹, 소리와 함께 철창이 완전히 닫혔다. 둔중한 소리에 정신을 차린 진영은 멀어지는 의무과장의 등에다 대고 다급히 물었다.
 
“나머지는요?”
 
의무과장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대부분은 그저 조급했을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게 이곳에서 평생을 보낸 이유라고 하셨죠? 나머지는, 그렇지 않은 나머지는 뭡니까? 그것도 여기 있는 이유입니까? 아니면 ….”
 
“이미, 잘 아시던 걸요.”
 
의무과장은 진영의 말을 자르며 이죽거렸다. 이미 잘 안다니. 진영은 엄지두덩으로 이마를 꾹 눌렀다. 그게 무슨. 의무과장의 말을 곱씹던 그는 갑자기 열이 차오르는 걸 느꼈다. 순간 그는 의무과장의 말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철창을 거세게 쳤다. 쾅, 하고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것은 숱한 짐승을 도륙해왔다는 당당한 고백이었다. 참을 향해 돌아선 의무과장의 만면에 진영 몰래 짓던 기괴한 미소가 번졌다. 그는 알고 있었다. 진영도 알아차렸다. 이제 와, 그 사실을 안다 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쇠창살은 여전히 바르르 떨렸다. 희미한 떨림이 뼈를 타고 진영의 가슴까지 닿았다.
 
참이었다.
 
참 아닌 곳은 없었다. 그는 어느 쪽으로 문이 열릴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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