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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장벽 무너진 날 메르켈은 늘 하던대로 사우나에 갔다

 24일(현지시간) 독일 총선의 투표가 시작됐다. 투표가 마감되는 오후 6시(한국시간으로 25일 오전 1시)에 출구 조사가 발표되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4연임 여부가 결정된다. 선거전 여론조사에 따르면 2위인 사민당을 멀찌감치 따돌려 그는 서방 자유 세계의 최장수 총리로 이름을 올릴 전망이다.
 메르켈이 오늘의 위치에 오르기까지의 역정에는 결정적인 순간들이 있었다. 신중하면서도 결단력을 지닌 그는 “세계적인 리더가 되려면 메르켈이 어떻게 해왔는지를 보라"는 언론의 평가를 얻고 있다. 그의 흔적과 어록을 따라가 봤다.
 
앙겔라 메르켈의 어린 시절

앙겔라 메르켈의 어린 시절

 # 1952년 동독 이주 “전 기계 쓰지 않고 직접 감자를 으깹니다”

 메르켈은 최초의 동독 출신 여성 총리다. 하지만 서독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생후 몇주 만에 동독 탬플린으로 옮겨가 자랐다. 그가 동독으로 간 1952년 20만명이 동독에서 서독으로 이주했는데, 메르켈의 가족은 반대로 향했다. 동독의 억압적인 환경은 향후 통일 독일의 총리가 된 메르켈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는 나중에 “동독을 고향이라고 느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메르켈이 동독에서 자란 집

메르켈이 동독에서 자란 집

 메르켈이 자란 곳은 숲이 우거지고 호수가 있는 곳이었다. 메르켈은 민주화가 꽃핀 독일의 정치인이 됐지만, 여전히 유년을 보낸 곳의 습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나는 음식 조리기계 등을 쓰지 않고 여전히 감자를 스스로 으깬다"며 “둔해 보일 수 있지만 일관성을 느끼게 해준다"고 말했다. 무뚝뚝해 보이는 메르켈의 언행과 자유에 대한 갈망이 그를 ‘자유 세계의 총리'가 되게 만든 한 요인일 수 있다.
 
베를린 장벽의 완전 철거를 요구하는 시민들. [중앙포토]

베를린 장벽의 완전 철거를 요구하는 시민들. [중앙포토]

#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목요일은 사우나 가는 날이라 그날도 갔습니다”
 베를린 장벽 붕괴가 없었다면 총리 메르켈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메르켈은 그날 장벽이 무너지는 곳에 있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대신 매주 목요일마다 하던 사우나에 갔다. 당시 그는 베를린 과학아카데미 물리화학연구소 연구원이었다.  
철의 장막이 걷어진 그날 늦게서야 메르켈은 서독으로 향했다. 다음날 동독으로 조용히 돌아왔다. 그는 “난 일반 시민이었고 다음날 일찍 근무하러 가야 했었기 때문에 일찍 돌아왔다"고 말했다. 물리학을 전공한 메르켈은 그러면서도 “장벽이 한번 열리면 다시 닫히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고도 소개했다.  
 서두르지 않지만 분석적인 사고를 통해 일을 처리하는 태도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날에도 나타났다.
 
메르켈 총리의 1994년 모습

메르켈 총리의 1994년 모습

# 1995년 환경부 장관이 된 메르켈 “권력의 균형을 맞추는 것 정말 재밌더군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다음달 메르켈은 동독 민주화운동단체 민주개혁에 가입했다. 정치 관련 활동에 처음 발을 디딘 후 그는 헬무트 콜 총리에게 발탁돼 통일 내각의 여성청소년부 장관에 올랐다. 메르켈을 “나의 소녀"라고 부르던 콜은 “행사장에서 메르켈은 어디에 앉아서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도 몰라해 내가 챙겨줘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애송이' 메르켈을 동독 과학자 출신에 여성이어서 발탁했다는 뉘앙스였다.
 하지만 메르켈은 제대로 경력을 쌓아갔다. 95년 환경부 장관이 돼선 베를린에서 열린 유엔 기후 회의에 참석했는데, 행사 주최국 장관으로서 170개 국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역할에 참여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행사가 끝나고 그는 "정말 생산적인 경험이었다"며 "권력의 균형을 맞췄어야 했는데 정말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어떻게 한 국가도 반대하지 않으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을까요.” 국내외 무대에서 협상과 중재에 나서는 스킬을 배운 순간이었다.
 
메르켈을 여성청소년부 장관에 발탁한 헬무트 콜 전 총리(왼쪽)

메르켈을 여성청소년부 장관에 발탁한 헬무트 콜 전 총리(왼쪽)

# 2005년 정치적 양부를 내치고 얻은 선거 승리 “간단히 말해 당신이 진 겁니다"  
 메르켈을 등용한 콜이 선거에서 게르하르트 슈뢰더에게 패한 뒤 비자금 스캔들에 휩싸이자 당내 모두가 말을 못하고 있을 때였다. 메르켈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자이퉁과 인터뷰에서 그의 정계 은퇴를 요구했다. 콜은 “내가 암살자를 데려왔다"고 후회했지만 몇달 후 메르켈은 1999년 당 대표가 됐다.
메르켈과 헬무트 콜 전 총리. 메르켈은 자신을 정계에 입문시킨 콜의 비자금 스캔들이 터지자 정계은퇴를 공개 요구했다. [AFP]

메르켈과 헬무트 콜 전 총리. 메르켈은 자신을 정계에 입문시킨 콜의 비자금 스캔들이 터지자 정계은퇴를 공개 요구했다. [AFP]

 2005년 총선에서 메르켈의 기민당은 슈뢰더의 사민당과 근소한 격차로 승리했다. 메르켈은 사민당과의 대연정을 제안했다. 한 TV 프로그램에 정당 지도자들이 모였는데, 슈뢰더가 "내가 계속 총리를 하게 될 것"이라고 소리쳤다. 그러면서 “우리 당이 메르켈이 총리가 될 것처럼 말하면서 하는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느냐"고 말했다.
 메르켈은 웃으며 말했다. “쉽고 간단히 말하자면 당신은 선거에서 졌습니다. 시간이 좀 흐르면 사민당도 현실로 받아들이게 될 겁니다.” 2개월 후 메르켈은 총리가 됐다.
 
메르켈 총리와 남편인 오아힘 자우어 교수

메르켈 총리와 남편인 오아힘 자우어 교수

 # 2005년 보이지 않는 남편 “근무 중이에요”
메르켈의 총리 취임식장에 그의 남편인 베를린 출신 화학과 교수 요아힘 자우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메르켈은 77년 물리학자 울리히 메르켈과 결혼 후 82년 이혼했다가 98년 재혼했다. 재혼했지만 전 남편의 성을 그대로 쓴다. 
메르켈(오른쪽)과 첫번째 결혼했던 물리학자 울리히 메르켈(가운데) [BBC 캡처]

메르켈(오른쪽)과 첫번째 결혼했던 물리학자 울리히 메르켈(가운데) [BBC 캡처]

 취임식날 자우어 교수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TV로 부인의 취임식을 봤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그해 베를린을 방문했을 때 언론들이 메르켈의 배우자가 어디에 있는지를 캐물었다. “그는 근무중"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메르켈은 관저에서 살지 않고 남편과 작은 아파트에서 생활한다. 문에는 자우어 교수의 이름이 붙어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여성 지도자는 집에서 남편이 좋아하는 요리를 해주며 쉬는 걸 좋아한다.
 
메르켈과의 정상회담에 큰 개를 데려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메르켈은 개에 물린 적이 있어 트라우마가 있다.

메르켈과의 정상회담에 큰 개를 데려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메르켈은 개에 물린 적이 있어 트라우마가 있다.

 # 2007년 푸틴이 회담장에 데려온 개 "자신의 나약함이 두려웠던 것일 뿐"
메르켈의 대척점에 있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2007년 소치에서 한 정상회담 자리에 큰 검정 개가 등장했다. 메르켈은 개에 물린 적이 있어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데, 이를 알면서도 푸틴이 개를 회담장에 데려온 것이다.
회담장에서 다소 굳어있던 메르켈은 나중에 이렇게 응수했다. “푸틴은 자기가 남성이라는 것을 증명해보이려고 그렇게 한 것 같네요. 자신의 약함이 두려웠던 거죠. 러시아는 성공적인 정치인도 성공적인 경제도 갖고 있지 않아요. 단지 이런 것만 있을 뿐이죠.”
 
메르켈 총리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원자력 지지 입장을 재빨리 철회했다.

메르켈 총리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원자력 지지 입장을 재빨리 철회했다.

 # 2011년 원자력 발전 유턴 “에너진 전환"
물리학자인 메르켈은 원자력 발전의 효용성을 맹신하는 쪽이었다. 슈뢰더의 원전 축소 정책을 비판해왔다. 하지만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지자 놀라운 속도로 입장을 틀었다. 그는 2022년까지 독일에서 원전을 종식시키고 그린 에너지로 교체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energiewende’(에너지 전환)이라는 용어를 썼다. 유권자들이 좋아하는 지점이 어딘지를 파악한 뒤에 메르켈의 행동은 빨라진다.
 
 
메르켈 반대 시위 [AFP]

메르켈 반대 시위 [AFP]

# 2015년 난민 수용 정책 “우리는 할 수 있다"
메르켈의 10년 집권 중 가장 큰 위기를 불러온 난민 수용 정책을 도입하면서 독일은 국제적인 평판을 쌓게 됐다. 더이상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어두운 기억이나 경제적으로 덩치만 큰 국가로 남유럽 국가들을 쥐어짜는 이미지만 갖지 않는 효과가 생겼다. 
 난민 유입에 대해 독일 내부에서 안좋은 여론이 드러날 때마다 메르켈은 “우리 독일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도적 지원을 국가의 위신 쇄신과 연결지은 구호였다.
 메르켈은 같은해 3월 일본을 방문해 "나치시대에 다른 나라가 겪은 끔찍한 경험과 홀로코스트에도 독일이 다시 국제사회에 받아들여진 것은 행운이었다"며 “화해가 가능했던 것은 독일이 과거를 똑바로 마주 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앙겔라 메르켈

앙겔라 메르켈

# 2017년 트럼프라는 위기 “누군가에 완전히 의지하던 시대는 갔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은 서방사회의 질서를 흔들어 놓았다. 메르켈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다른 파트너들과 함께 국제사회의 안정성을 회복하려 노력 중이다. 4연임에 성공한 메르켈이 짊어진 과제 중 하나다. 
 이를 인지한 메르켈은 지난 5월 선거운동에서 “어떤 의미에서 다른 누군가에게 전적으로 의지할 수 있었던 시대는 끝났다"며 “유럽인들은 우리 손으로 운명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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