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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 표준 삼는 스토리 제국주의 벗어나야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상상력, 동양 신화
화가 정지영

화가 정지영

어렸을 적에 할머니께 옛날이야기를 조르다가 흔히 듣는 말이 있다. “얘야, 옛날이야기 좋아하면 가난해진다.” 귀여운 손주에게 재미있는 이야기 해 주고 싶은 심정이야 굴뚝같지만 체력에 한계가 있고 초저녁 잠 많은 노령이다 보니 이런 말씀이 나오는 것이다. 하긴 요즈음에는 과외로 지친 손주 붙들고 굳이 한밤중에 옛날이야기 해 주는 할머니도 없을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산업화, 근대화 시대에 나왔음직한 이 말씀은 피곤한 할머니의 넋두리로 듣기에는 뜻밖에도 깊은 함의를 지닌다. 발터 베냐민이 애도한 ‘이야기하는 기술의 종언’을 상기시키는 이 말씀은 사실상 근대라는 시기 감성적 영역 즉 상상력-이미지-스토리 등에 대한 억압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성·합리성 추구 산업화 시대엔
인간 중심 그리스로마신화 적합

인간·사물 교감, 감성 복권 시대
동양신화의 귀환과 역할 기대 커

반인반수 농업·의약의 신 신농
괴물 벗어나 통섭의 아이콘 돼야

 
할머니의 이 말씀은 오늘날에 이르러 완전히 설득력을 상실했다. 지금은 옛날이야기 좋아하면 가난해지기는커녕 부자가 되기 쉽다. 가난한 이혼녀 조앤 롤링이 켈트신화의 마법 이야기를 ‘해리 포터’ 시리즈로 잘 풀어내서 거부(巨富)가 된 것만 보아도, ‘포켓몬 고’가 동양신화의 고전『산해경(山海經)』에 등장하는 괴물들을 캐릭터로 소환해서 대박을 친 것만 보아도 옛날이야기는 이제 부와 지근거리(至近距離)에 있다.
 
 
스토리가 부를 만들어 내는 시대
신농(神農). 고구려 오회분 5호묘 벽화.

신농(神農). 고구려 오회분 5호묘 벽화.

바야흐로 스토리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문화산업을 필두로 스토리는 이제 모든 영역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데 그것은 마치 우리가 걸쳐야 하는 의복처럼 모든 인간과 사물의 외양과 품격, 심지어 내용까지 좌우하는 관건이 되었다. 이러다 보니 과거의 이야기 전승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할머니의 존재가 새삼 부각되어 목하(目下) 정부는 상당한 예산을 들여 수천 명의 이야기할머니 양성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있을 정도이다. 손주에게 옛날이야기 좋아하면 가난해진다고 엄포 놓던 시절과 얼마나 큰 상위(相違)인가!
 
미셸 마페졸리는 개인주의에 기반한 현대사회가 퇴조하고 감성 혹은 정서를 공유하는 대중 즉 고대의 부족과 같은 성격을 지닌 사회가 등장하였음에 주목한다.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그 사회는 막스 베버의 이른바 탈주술(disenchantment)의 시대 이후에 등장한 재주술(re-enchantment)의 사회이다. 롤프 옌센은 이러한 입장을 계승하여 미래의 기업을 부족에 비유한다. 그리고 부족 정신의 중요한 것으로서 감성, 연대감 등을 들고 이러한 것들이 상품 매체를 통해 스토리로서 구현되어야 할 것을 강조한다.
 
미노타우로스(Minotaur). 크레타섬 벽화.

미노타우로스(Minotaur). 크레타섬 벽화.

여기서 유념해야 할 것은 재주술의 시대에 감성의 영역이 부활하면서 귀환한 것은 스토리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스토리는 홀로 존재, 작동해 온 것이 아니라 마치 삼위일체의 관계처럼 항시 상호 연동하는 중요한 작용기제가 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상상력과 이미지이다. 상상력-이미지-스토리 이 세 가지를 감성 활동의 성삼위(聖三位)로 불러도 좋으리라. 이 삼총사는 모두 근대 합리주의 및 이성주의에 의해 불온시 되어 억압과 배제의 고초를 겪었다는 점에서 공동의 운명을 지녔다. 가령 근대 시기에는 스토리만 할머니한테 타박을 받은 것이 아니라 상상력과 이미지도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기억하는가? 만화 많이 보면 공부 못한다고 혼나고, 극장 자꾸 가면 깡패 된다고 야단맞던 일을. 모두 상상력과 이미지에 대한 불신의 시대에 생겼던 일들이다.
 
저인(?人). 『산해경(山海經)』『해외남경(海外南經)』

저인(?人). 『산해경(山海經)』『해외남경(海外南經)』

상상력-이미지-스토리를 하나의 통합체로 인식할 때 우리의 생각은 자연스레 이들 삼총사의 모태인 신화로 향한다. 인류가 최초로 떠올린 생각이 담겨 있고, 그와 동시에 맨 처음 이미지와 스토리를 출현시킨 신화야말로 상상력-이미지-스토리의 원형이 아니겠는가? 무엇보다도 신화는 가장 오래된 스토리, 스토리 중의 스토리다. 따라서 상상력-이미지-스토리 복권의 이 시대에 신화의 귀환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질베르 뒤랑은 이미 ‘신화의 귀환’을 선언한 바 있고 이에 따라 과학과 산업화를 추구했던 근대를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의 시대’로, 교류와 소통이 일상화된 오늘 이 시대를 ‘헤르메스(Hermes)의 시대’로 명명한 바 있다. 합리주의, 실증주의의 예속으로부터 바야흐로 신화는 해방된 것이다. 앞서 예거했듯이 요즘 들어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쏟아져 나오는 스토리 옹호·예찬의 숱한 언설들은 바로 그 좌증(左證)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당연시된 이 현상에 대해 심문해 볼 하등의 필요도 없는 것일까? 다음 두 세트의 동서양 신화 이미지는 우리로 하여금 ‘신화의 귀환’ 현상을 재고해 볼 여지를 갖게 한다.
 
 
인어아저씨와 인어공주, 동서양의 차이
인어(A mermaid). 워터하우스(J.W.Waterhouse) 자료: 정재서 『동양고전으로 오늘을 읽다』 (신아사)

인어(A mermaid). 워터하우스(J.W.Waterhouse) 자료: 정재서 『동양고전으로 오늘을 읽다』 (신아사)

A세트(그림 1, 2)는 인간과 자연 간의 관계성에 의한 동서양 신화의 차이를 보여 준다. 인간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서사하였던 그리스로마신화에서 반인반수(半人半獸)의 미노타우로스는 사악한 식인 괴물로 간주됨에 비하여 인간과 자연의 합일을 추구하였던 중국신화에서 미노타우로스와 똑같은 인신우수(人身牛首)의 형체를 한 신농(神農)은 오히려 완전한 존재인 신으로 숭배 받았다. 신농은 농업과 의약을 가르쳐준 고마운 신이다. 두 신화에서 동물은 똑같이 자연을 표상하지만 반인반수에 대한 인식은 이처럼 극단적이다. 특히 혼종성을 거부하는 인간의 순혈주의적, 배타적 속성의 기원은 그리스로마신화에 있음을 알 수 있다.
 
B세트(그림 3, 4)는 인간의 환경, 설화적 토양의 차이로 인한 동서양 인어 스토리의 상이한 양상을 보여 준다. 서양에서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해양문화의 발달, 그리고 대양으로의 장구한 항해 등의 환경에서 인어는 고독한 항해자인 남성의 성적 욕망을 투사하기 적합한 예쁜 여인으로 묘사된다. 반면 상대적으로 이러한 문화적 성향이 현저하지 않은 중국대륙에서 인어는 전통사회의 일반적인 관례에 따라 남성으로 대표된다.
 
세계관, 문화적 환경 등의 차이에 따라 스토리의 원조인 신화도 이처럼 상반되기까지 한 모습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A세트의 신농을 접한 순간 “뭐 이런 괴물이 다 있어” 하고 신성(神性)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B세트의 인어아저씨 저인(氐人)을 보자마자 “별 이상한 인어 다 보겠네” 하고 황당해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이 반인반수는 괴물이고 인어는 예쁜 여자여야 한다는 우리의 상상력-이미지-스토리에 대한 통념을 배반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통념은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 심문하지 않을 수 없다.
 
브루스 링컨은 근대의 신화학이 인도유러피언 즉 서양 인종의 기원을 탐색하고 그것을 재구성하는 데 열중해 왔으며 이러한 경향이 민족주의, 제국주의 등의 욕망과 긴밀한 상관관계에 있음을 논증한 바 있다. 미르시아 엘리아데 역시 플라톤 이래 서양의 철학자들이 내린 신화에 대한 정의가 모두 그리스로마신화 분석을 토대로 삼고 있으며 그것이 보편타당하지 않음을 지적한 바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지녔던 통념의 이면에는 그리스로마신화라는 ‘표준’에 입각한 상상력-이미지-스토리의 제국주의가 엄존(儼存)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자연 조화로운 합일의 표상
그렇다면 뒤랑이 선언한 ‘신화의 귀환’은 유보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이 과연 누구의 귀환인지 물어야 한다. 스토리의 흥기에 고무되어 다량으로 생산된 옹호와 예찬의 설법(說法)들도 그들의 논리에 중대한 결락(缺落)이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진화생물학이든 감성주의든 협력이론이든 그 어떤 이론으로도 아직 귀환하지 못한 채 괴물 취급을 받고 있거나 황당한 웃음거리로 전락한 동양의 신화를 스토리의 시대에 걸맞게 합리화할 수 없다.
 
동양신화는 귀환하고 있는가? “봄은 왔으되 봄 같지 않다(春來不似春)”더니 스토리의 시대는 도래했건만 동양의 신화는 아직 귀환하지 않았다. 과거 이성과 합리성을 추구했던 근대 산업화 시대에는 인간 중심의 그리스로마신화가 적합했고 그 소임을 다했지만 인간과 사물이 교감, 공존하고 상상력-이미지-스토리 등 감성 능력이 복권된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오히려 동양신화의 역할이 기대된다. 과연 반인반수의 신농이 괴물의 지위에서 벗어나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합일, 융복합과 대통섭의 표상으로 이 시대의 신화적 아이콘이 될 날은 언제인가.
 
 
정재서 이화여대 명예교수
서울대 중문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하버드-옌칭 연구소와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에서 연구생활을 했다. 중국어문학회 회장, 비교문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산해경 역주』『이야기 동양신화』『사라진 신들과의 교신을 위하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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