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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중국 다루는 법···되레 중국이 쩔쩔 맸다?

 
중국 어선들은 10여 년 전부터 북한 영해를 불법 침범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 적발하는 즉시 발포하기 때문이다. 중국 랴오닝(遼寧 )성 소속 어선 6척이 2005년 9월 꽃게철에 북한 영해를 침범했다가 나포된 적이 있다. 그 과정에서 선원 2명이 사살됐고 4명이 다쳤다. 이에 중국은 2006년 ‘중·조 변경수역 어선 관리 강화에 관한 긴급통지’를 발효했다. 절대로 북한 영해로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였다.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중국 어선이 2008년 9월 꽃게철에 또다시 북한 영해를 침범했다가 큰일 날 뻔했다. 북한 경비정이 발포하는 바람에 선장 쿵모가 크게 다쳐 인천 인하대병원으로 긴급 후송됐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혼쭐이 났다.
 
 
 북한은 중국의 불법에 대해서는 관용이 없다. 비록 오랫동안 중국으로부터 정치·경제적으로 큰 도움을 받았지만 그들의 불법행위를 봐주지 않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중국에 대한 우회적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는 가운데 오랫동안 북한을 지원해 온 중국의 대응이 주목된다. 이 못지않게 북한의 중국 다루기 또한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이 10월 1일부터 대북 석유제품 수출과 북한 섬유제품 수입을 금지하겠다고 발표해 북한의 향후 대중 행보가 더욱 큰 관심사가 되고 있다.  
 
 북한이 지금까지 중국을 다뤄 온 첫 번째 방법은 앞의 사례에서 보듯이 원칙 준수다. 중국이 북한의 주권을 건드리면 법대로 집행한다. 이는 중국이 역사적으로 한반도에 최대의 위협이자 최대의 적이라는 생각이 북한 사람들에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지난달 30일 발표한 ‘북한 사회 변동과 주민의식 변화’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은 자신을 위협하는 국가로 미국(76%) 다음으로 여전히 중국(15%)을 꼽았다. 이는 탈북민 132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다.
 
 북한은 오래전부터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는 ‘방중정책(防中政策·중국을 방어하는 정책)’을 기본 방침으로 삼고 있다. 비록 1949년 10월 북·중 수교 이후 양국을 김일성의 말대로 ‘피로써 맺어진 친선 관계’ ‘형제적 협조 관계’ 등으로 표현하지만 북한은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따라서 대중정책에 있어 원칙 준수가 자신들을 지켜 준다고 생각한다. 또한 북한은 79년 미·중 수교, 92년 한·중 수교 등에서 드러났듯이 근본적으로 중국을 신용하지 않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전에 “중국을 믿지 않는다”고 언급한 데서도 알 수 있다. 
 
 두 번째 방법은 친중파 제거다. 북한은 6·25전쟁 이후 평양 인근 평안남도 회창군에 주둔했던 중국인민지원군 34개 사단과 지원부대 등을 58년까지 철수시켰다. 중국군은 북한의 안보를 지원하는 역할을 주로 했지만 공공건물 881채를 보수하고 민가 4만5412채를 개축하는 등 전후 복구사업도 도왔다. 당시 천이(陳毅) 외교부장은 지휘관들에게 “어느 때 어디서나 은인인 체해서는 안 된다”며 “은혜를 베풀었다고 생각하고 북한 사람들에게 머리 숙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할 정도였다.  
 
 하지만 김일성은 날로 강해지는 북한군의 친중국 성향을 견제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54년 9~10월 1차로 중국군 7개 사단을 철수시켰고 2차로 55년 3~4월 6개 사단을 북한에서 내보냈다. 3차로 그해 10월 또다시 6개 사단을 철수시켰다.  
 
 문제는 56년 8월 종파사건이었다. 중국 공산당의 후원을 받던 연안파가 반김일성세력을 끌어들여 김일성을 물러나게 하려다 실패했다. 이 사건 이후 철군이 더 가속화됐다. 김일성은 연안파인 최창익·윤공흠·서휘 등을 ‘반당종파분자’로 숙청했다. 하지만 마오쩌둥(毛澤東)은 김일성의 숙청작업에 반대하며 그해 9월 펑더화이(彭德懷)를 평양에 보내 김일성에게 압력을 가해 연안파를 복귀시켰다. 하지만 펑더화이가 중국으로 돌아간 뒤 김일성은 그들을 결국 숙청했다. 마오쩌둥은 “김일성이 귀에 거슬리는 말을 단 한마디도 듣기 싫어 한다. 상대가 누구건 반대만 하면 무조건 죽여 없애려 한다”며 김일성을 비난했다. 
 
 중국은 2만2000㎞에 달하는 육상 국경선을 사이에 두고 14개국과 이웃하고 있다. 그 가운데 49년 신중국을 건국한 이후 역대 중국 지도자들이 가장 다루기 어려워했던 나라가 북한이었다.
 
 김일성의 결정을 못마땅해한 마오쩌둥은 57년 11월 모스크바에서 김일성에게 “중국 공산당은 당내 갈등이 있더라도 반대자들을 대규모로 숙청하지 않는다”며 “혁명동지들을 종파분자로 숙청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이에 김일성은 중국군의 내정 간섭과 주권 침해의 우려를 경계하며 마오쩌둥에게 중국군의 전원 철수를 요구했다. 김일성이 이런 요구를 한 배경에는 연안파가 평양 인근에 주둔한 중국군을 원군으로 믿고 자신에게 도전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일성과 마오쩌둥은 “조선의 정세가 이미 안정됐고 중국군의 사명이 기본적으로 완료됐다”며 나머지 중국군을 58년까지 철수하기로 합의했다. 안문석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중국군이 북한 영토에서 완전히 물러남으로써 김일성은 좀 더 독자적인 지향점과 정책을 갖고 북한을 운영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도 권력을 잡은 지난 5년 동안 친중파를 제거하는 데 주력했다. 대표적인 친중파였던 이영호 전 총참모장을 비롯해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김원홍 전 국가보위상 등을 숙청하거나 현직에서 물러나게 했다. 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김정은은 이영호를 ‘중국의 심복’이라 간주했고 중국의 지시에 따라 자신을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세 번째 방법은 다른 강대국을 활용하는 것이다. 중국이 제일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김일성은 미·중 수교 이후 친소련화 경향을 보였다. 소련도 이 기회를 살려 대북 군사원조를 발표했고 김일성의 후계자로 김정일을 인정했다. 미하일 카피차 소련 외무차관은 84년 11월 12일 북한을 방문해 그 대가로 원산·청진항의 군사적 사용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중국 후야오방(胡耀邦)은 “소련의 (북한 내) 군사기지 설치는 필연적으로 중국의 안전에 위협이 될 것”이라며 강력히 반대했다. 결국 이 계획은 무산됐지만 중국은 북한이 반대한 미 7함대의 칭다오(靑島) 기항 문제를 양보해야 했다.  
 
 김정은은 지금 핵·미사일 도발로 미국을 한반도로 바짝 끌어들여 결과적으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괴롭히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 개인·기업·은행에 대해 미국과 금융 거래 등을 봉쇄하는 내용의 대북제재안을 발표했다. 그 타깃이 중국이 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 은행들이 북한 해외 거래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김정은과 시진핑의 악연은 2012년 시작됐다. 중국 공산당 제18차 당대회를 통해 총서기에 임명된 시진핑은 기분 좋게 중국과 이웃한 북한·라오스·베트남 등 사회주의 우호 3개국을 방문할 계획을 발표했다. 그런데 북한이 그해 12월 북·중 국경에서 가까운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서 장거리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를 준비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김정일 사망(2011년 12월 17일) 1주기에 즈음해 발사할 계획이었다. 시진핑은 자신의 심복인 리젠궈(李建國) 전인대 상무위원회 부위원장을 급히 평양으로 보냈다. 리젠궈는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을 자제하면 지금까지와 같이 우호국으로 원조를 아끼지 않겠다”는 시진핑의 친서를 김정은에게 전달했다. 원조는 원유 50만t, 식량 10만t, 비료 2000만 달러어치를 말한다. 하지만 김정은은 “핵·미사일 실험은 주권국가인 조선(북한)이 자주적으로 결정할 일이다. 중국과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리고 그해 12월 12일 미사일을 발사했다. 또한 2013년 2월, 시진핑의 국가주석 취임을 한 달 앞두고 제3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그 이후 북한은 미국에 전략자산의 한반도 출현과 고고도미사일방어(THADD·사드) 체계로 중국을 압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중국이 건국 초기부터 지금까지 경제 지원으로 약 9000억 위안(약 155조원)을 제공하고 얻은 결과다. 

 
 
고수석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ko.soos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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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