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더,오래] 이상원의 포토버킷(4) 사장님 대신 주방장 두건 쓴 카레 대장

기자
이상원 사진 이상원
프랜차이즈 성공을 뒤로하고 주방으로 돌아간 카레대장 박진 대장. [사진 이상원]

프랜차이즈 성공을 뒤로하고 주방으로 돌아간 카레대장 박진 대장. [사진 이상원]

 

필자는 “꿈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이냐?” 혹은 “성공은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느냐?” 등의 질문을 많이 받는다. 사진으로 만드는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해 보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 앱을 개발해 운영하고, 목표 달성에 성공하는 내용의 책을 출판해 그런 듯하다. 두 시간짜리 강연으로 답하기에 쉽지 않은 질문이다. 지면의 한계로 더 어렵지만 간단하게나마 필자의 생각을 말한다면 다음과 같다.

 
꿈은 사소하건 거창하건 ‘평소에 되고 싶고, 하고 싶고, 갖고 싶고, 가고 싶어 하는’ 것들의 총합이다. 사람들은 꿈을 ‘거창한 하나의 어떤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당신은 꿈이 뭐냐?”라는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하거나, 평소에 생각해 보지도 않은 것을 억지로 꾸며낸다. 
 
평소에 종이에 적든, 사진을 스크랩하든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놓고 하나씩 지워나가는 것이 꿈을 이루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꿈이 이루어지는 경험도 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꿈이 이루어졌다’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그저 우연이다’라고 한다. 어느 쪽의 인생이 더 만족스러울지는 판단에 맡긴다.
 
 
카레대장 가게 앞에서 후계자 정용진 씨(왼쪽)와 박진 대장(오른쪽). [사진 이상원]

카레대장 가게 앞에서 후계자 정용진 씨(왼쪽)와 박진 대장(오른쪽). [사진 이상원]

 
성공은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단련해 나가는 과정에서 과거보다 발전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 느끼는 만족감이다. 꿈은 우연히 이루어질 수도 있다. 성공은 우연히 이루어질 수 없다. 예를 들어 간절히 갖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누가 선물로 줄 수도 있다. 이때 “운이 좋다”라고 할 수는 있어도 “성공했다”라고는 할 수 없다. 갖기 위한 노력과 단련의 시간이 필요하다.
 
최근 서울의 모 대학교 앞에 카레 전문점을 새로 오픈하고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박진 대장을 인터뷰하면서 이러한 ‘꿈과 성공’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는 이미 성공적인 창업 경험을 가진 ‘사장님’이었다. 그것도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프랜차이즈 오너’였다. 
 
그는 이제 사장이라는 호칭 대신에 대장으로 불러달라며 이뤄 놓은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다시 주방에서 땀흘리는 길을 선택했다. 그리 길지 않지만 굴곡 많은 그의 인생 스토리를 들어보니 쉽지 않은 새로운 도전을 택한 이유를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꿈이 있었고 진짜 성공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새로 문을 연 카레전문점 앞에 선 박진 대장. [사진 이상원]

새로 문을 연 카레전문점 앞에 선 박진 대장. [사진 이상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머니 식당을 돕다가 뒤늦게 지방의 한 전문대학교 관광경영학과를 졸업한 박대장은 10년 조금 넘는 기간을 직장생활을 하며 보냈다.  
 
삼십대 중반에 접어들 무렵, 더 늦기 전에 자기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무엇을 할지 고민하기 시작한 그가 오래지 않아 선택한 것은 음식점 창업. 어머니 식당을 도왔던 기억이 영향을 주었고, 무엇보다 직접 운영하면 더 잘할 자신이 있었다.
 
 
마수걸이 주먹밥 집 창업 대박   
 
마침 친한 후배가 일본식 주먹밥 전문점을 막 창업한 뒤여서 동업 형식으로 매장 운영과 홍보를 맡았다. 주먹밥은 보편적이면서도 특색이 있는 메뉴라 승산이 클 것이라 판단했다. 
 
무엇보다 맛이 있는데다 주먹밥을 손으로 쥐어서 만들어 주는 독특함과 다양한 종류, 저렴한 가격 등이 소문나 장사가 아주 잘 되었다. 방송에 출연하고 가맹 문의도 밀려 들어 가맹점 수 100개를 돌파하는 데까지 얼마 걸리지 않을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다.  
 
 
성공한 소상공인으로 방송에 출연한 박진 대장. [사진 이상원]

성공한 소상공인으로 방송에 출연한 박진 대장. [사진 이상원]

 

가맹점이 늘어날수록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새로 계약한 매장이 오픈하는 ‘출점’이 늘어날 때보다, 운영중인 매장이 문을 닫는 ‘폐점’이 생길 때 더 신경이 쓰였다. 
 
이런 경험이 늘어나면서 경영자 보다 주방장이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신규 가맹점 수를 늘려 본인이 부자가 되기 보다는, 가맹점주가 안정적으로 오래 운영해 전통있는 ‘노포(100년 넘게 오래 운영한 가게)’로 자리 잡을 수 있게 기술과 운영 노하우를 전수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더 커져갔다.
 
어느 날 과거에 회사를 다니며 창업을 준비할 때 재미있게 보고 책꽂이에 꽂아둔 만화가 눈에 들어왔다. 선배가 운영하는 식당을 방문했다가 망해가는 가게를 살려내기 위해 노력하는 주인공을 그린 만화 <화려한 식탁>이었다. 
 
 
카레. [사진 이상원]

카레. [사진 이상원]

 
만화의 주 무대인 식당의 메뉴가 카레인데, 예전에 만화를 보면서 ‘나중에 음식점을 하게 되면 카레를 해 보자!’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 기억났다.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주인공이 팬을 들고 있는 모습과 함께 카레가 그려져 있는 표지를 보니 기억이 새로왔고 잊고 있던 꿈이 다시 떠올라 가슴이 두근거렸다. 
 
주먹밥처럼 카레 또한 보편성과 차별성을 모두 가진 ‘경쟁력 있는’ 메뉴라는 판단에 성공의 경험까지 더해져 자신감이 샘솟았다. 그는 후배에게 지분을 모두 넘겨 정리를 하고, 일본을 오가며 소문난 카레전문점을 찾아가 맛의 비결을 배우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박 대장의 머리에는 예전보다 더욱 선명한 성공의 이미지가 그려져 즐겁게 견뎌낼 수 있었다.
 
 
꿈을 다시 기억나게 해 준 만화 ‘화려한 식탁. [사진 이상원]

꿈을 다시 기억나게 해 준 만화 ‘화려한 식탁. [사진 이상원]

 

차근차근 준비해 천호동에 카레전문점을 열었지만, 예상했던 대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자리를 잡을 때까지 시간이 꽤 걸릴 것이라고 마음의 준비를 충분히 한 덕분에 힘은 들었어도 무섭지는 않았다. 
 
재창업을 준비하면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기존의 프랜차이즈 방식이 아닌 도제식으로 후계자를 키워 독립시키는 방식으로 매장 수를 늘려가겠다고 마음 먹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사람에 집중하고 기술이전에 신경을 썼다.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본인의 꿈인 ‘생계형 창업 지원을 통한 전통 깊은 가게’를 만들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에 ‘사서 고생하는’ 길을 택했다. 이전의 실패와 성공의 경험을 통해 단련된 마음가짐이 큰 용기를 주었다.
 

 
고생하며 만난 후계자 1호 정용진씨와 일본 학습여행중에. [사진 이상원]

고생하며 만난 후계자 1호 정용진씨와 일본 학습여행중에. [사진 이상원]

 

고생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기대대로 후계자 후보를 만났다. 바로 20대 초반의 정용진씨가 그 주인공이다. 정 씨는 그의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현재는 정식직원으로 3년째 후계 수업에 여념이 없다. 사장과 직원이라기 보다 옛날 무술영화에 나오는 사부와 제자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정 씨는 최근 손님에게 내줄 카레를 혼자 요리할 수 있게 허락을 받았지만, 아직 멀었다며 몇 시간째 끓고 있는 카레통에 주걱을 넣고 저으며 땀흘리고 있다. 박대장은 그런 정씨가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다음 매장의 주인이 용진이로 정해져 있는 건 아니에요~”라고 큰소리로 말했다. 
 
 
후계자에게 일본 칼 선물
 
재창업을 준비하면서 일본으로 여행을 가 고가의 칼을 사서 정씨의 이름을 새겨 선물한 것을 보면, 물론 본심은 아니었다. 주방장은 후계자에게 이름을 새긴 칼을 선물해 주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주방 앞에 커다랗게 써 붙인 박대장의 음식철학. [사진 이상원]

주방 앞에 커다랗게 써 붙인 박대장의 음식철학. [사진 이상원]

 

인터뷰를 마무리 하면서 진짜 궁금했던 한 가지 질문을 했다.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창업을 할 때는 그렇다 치고, 성공한 주먹밥 전문점의 지분을 정리하고 밑바닥부터 새롭게 도전할 때 무섭지 않았나요?”

 
“무섭지 않았어요. 맛과 기술에 자신이 있었고 사람에게 잘 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확신이 있었어요. 처음에는 직원들 월급을 주기 위해 대리운전을 한 적도 있어요. 오늘 직원들에게 얼마 안 되지만 깜짝 보너스를 줬어요. 월급날 전 며칠이 제일 힘들잖아요. 이럴 때도 있어야 살죠.”
 
웃으며 대답하는 그를 보면서 또 한 번 꿈이 가진 힘에 대해 실감할 수 있었다. 그의 머리는 하늘을 향해 높은 꿈을 꾸면서도 발은 땅에 단단히 붙이고 느리지만 힘있는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그는 한국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처음으로 카레를 배웠던 일본 도톤보리에 역으로 진출하고 싶은 꿈도 있다고 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여느때와 같이 단련하는 마음가짐으로 주방을 향하는 박진 대장의 뒷모습이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대신 말해주는 듯 했다. 그의 성공을 응원한다.
 
이상원 밤비노컴퍼니 대표 jycyse@gmail.com
 

[제작 현예슬]

관련기사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