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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도, 가까워도 '힘들어'…출퇴근길에 사라진 직장맘 삶의 질

출근길 전동차 고장으로 지하철 2호선 운행이 지연되면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사람들. 콩나물 시루 같은 지하철 풍경은 하루 평균 1시간 가까이 되는 통근 과정서 겪는 일상이 됐다. [연합뉴스]

출근길 전동차 고장으로 지하철 2호선 운행이 지연되면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사람들. 콩나물 시루 같은 지하철 풍경은 하루 평균 1시간 가까이 되는 통근 과정서 겪는 일상이 됐다. [연합뉴스]

한 여성이 물기가 채 가시지 않은 머리에 졸린 눈을 비비며 아침 지하철을 탄다.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에선 인파 사이에 끼어 서류 가방 챙기기도 바쁘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운 좋게도 앞에 앉아있던 사람이 내리면서 자리가 비었다. '오늘은 그래도 앉아갈 수 있겠구나.' 좌석에서 잠깐 눈을 감았다가 뜬 거 같은데 어느덧 회사 근처 역이다. 하품하며 사무실에 들어섰더니 부서 동료들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다. '바빠 보이던데 출근 잘했지? 우리 손주, 어린이집에 잘 데려다줬어'. 휴대전화엔 친정어머니의 문자메시지가 와 있다.
 
  이처럼 대다수의 직장인은 하루 중 상당 시간을 힘겨운 출퇴근에 들이고 있다. 2014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통근 시간은 28분이지만, 한국은 그 배가 넘는 58분이었다. 하루 중 통근에 1시간 이상 소요되는 비율도 1995년 9.6%에서 2000년 14.5%, 2010년 15.5%로 꾸준히 올라가고 있다. 경기도와 서울을 넘나드는 '통근족'이 갈수록 늘면서 수도권 곳곳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출퇴근 전쟁을 벌이곤 한다.
과천, 안양, 수원 등 경기도 지자체와 서울을 잇는 교통 허브인 사당역 버스 정류소에서 늦은밤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퇴근길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중앙포토]

과천, 안양, 수원 등 경기도 지자체와 서울을 잇는 교통 허브인 사당역 버스 정류소에서 늦은밤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퇴근길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중앙포토]

  길거리에서 쓰는 통근 시간은 직장·가정의 시간 관리를 어렵게 하고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이 때문에 왕복 통근 시간이 하루 50분을 넘어서면 기혼 직장 여성의 삶의 질이 하락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반대로 직장과 집이 지나치게 가까워도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퇴근 거리가 너무 멀어도, 너무 가까워도 문제가 되는 '통근의 역설'인 셈이다. 김수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22일 열린 '여성가족패널조사 학술 심포지엄'에서 2007~2016년 기혼 직장 여성 8000여 명(1~6차 여성가족패널조사)을 분석한 보고서를 공개했다.
결혼과 고용 지위에 따른 여성 직장인의 통근 시간 추이. 정규직-비정규직, 비혼-기혼에 따라 통근 시간이 차이를 보인다. [자료 김수한 고려대 교수]

결혼과 고용 지위에 따른 여성 직장인의 통근 시간 추이. 정규직-비정규직, 비혼-기혼에 따라 통근 시간이 차이를 보인다. [자료 김수한 고려대 교수]

  연구에 따르면 대체로 결혼한 여성이 비혼 여성보다 통근 시간이 짧았다. 미취학 자녀가 있어도 그렇지 않은 경우와 비교해 통근 시간이 짧았다. 익히 알려진대로 너무 오래 출퇴근하면 일과 삶에서 느끼는 만족도가 낮았다. 대체로 왕복 통근 시간이 50~60분 이상이면 배우자와의 친밀성, 일에 대한 만족도, 직장에서의 대인관계 등이 전반적으로 악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또한 직장·집이 지근거리라서 오가는데 10분도 채 안 걸린다면 결혼 생활에서 느끼는 행복감이 높지 않은 상황이 나타났다. 반면 통근 시간이 10~50분이면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한 직장맘이 출근 전에 집 근처 어린이집으로 딸을 데려가는 모습. 엄마, 커리어우먼, 아내 등 서로 상반된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기혼 직장 여성은 통근 시간에 따른 부담감을 더 크게 느끼기 쉽다. [중앙포토]

한 직장맘이 출근 전에 집 근처 어린이집으로 딸을 데려가는 모습. 엄마, 커리어우먼, 아내 등 서로 상반된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기혼 직장 여성은 통근 시간에 따른 부담감을 더 크게 느끼기 쉽다. [중앙포토]

  짧든 길든 통근 시간이 유독 이들을 힘들게 하는 이유는 뭘까. 여기엔 일·가정이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한국 직장맘의 어려움이 깔려있다. 남성은 가족들과 상관없이 주말에 몰아서 자는 잠처럼 가정 대신 일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여성은 집과 회사에서 '엄마' '아내' '며느리' '커리어우먼' 등 서로 상반된 기대들을 충족시키려고 애쓰다가 진이 빠지곤 한다.
 
  김수한 교수는 "상대적으로 남성보다 여성에게 통근 시간의 의미가 더 크게 느껴지는 걸로 보인다. 기혼 여성은 출퇴근 거리가 너무 멀면 가정에서의 역할에 충실하기 어렵고, 너무 가까우면 사생활을 침해받거나 회사일에 더 얽매이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세종청사처럼 직주근접이 잘 이뤄진 곳이라도 직장맘들이 느끼는 삶의 질은 먼 거리를 출퇴근하는 것만큼 좋지 않을 수 있다. [중앙포토]

정부세종청사처럼 직주근접이 잘 이뤄진 곳이라도 직장맘들이 느끼는 삶의 질은 먼 거리를 출퇴근하는 것만큼 좋지 않을 수 있다. [중앙포토]

  반면 외국은 통근 시간과 삶의 질이 뚜렷한 '반비례' 관계를 이루는 게 일반적이다. 출퇴근에 들이는 노력이 적을수록 삶의 질은 높아지지만, 오랫동안 통근할 경우엔 전반적인 만족도나 행복이 떨어지는 식이다. 이는 사적 공간(집)과 공적 공간(회사)이 엄격히 분리돼 있어서다.
 
  김 교수는 "우리는 사적 공간에 대한 존중도가 떨어지고 늦은 시간에도 업무용 연락을 거리낌없이 하는 문화가 자리잡았기 때문에 회사 근처에 살아도 행복도가 떨어지는 편이다"면서 "아무래도 회사 가까이 살면 아는 사람을 자주 마주쳐야 한다는 점도 꺼려질 수 있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출퇴근 시간이 오래 걸려도 삶의 질에 큰 문제가 없는 기혼 직장 여성도 더러 있다. 연구 결과 통근 시간이 하루 2시간을 넘는 경우에도 일에 대한 만족감이 매우 높다는 사람이 존재했다. 이들은 아예 가정을 포기하고 일에 초점을 맞췄거나 원거리 통근을 해야하는 이유를 온전히 이해하거나 평소 신경 쓸 자녀가 없는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 시내 곳곳의 광역버스 승강장에는 퇴근시간마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직장인 등이 몰려서 혼잡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기도와 서울을 오가는 직장인은 하루 1시간 이상 통근하는 경우가 흔하다. [중앙포토]

서울 시내 곳곳의 광역버스 승강장에는 퇴근시간마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직장인 등이 몰려서 혼잡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기도와 서울을 오가는 직장인은 하루 1시간 이상 통근하는 경우가 흔하다. [중앙포토]

  연구팀은 직장맘의 부담을 줄이려면 일터와 가정이 일정한 물리적·시간적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지나치게 회사일에만 매몰되거나 집안일이 신경쓰여 업무가 손에 잡히지 않는 극단적 상황을 모두 피해야 한다는 의미다. 가사와 돌봄 노동의 부담이 큰 이들의 짐을 덜어주는 성평등적인 문화 정착도 필수다.
  김 교수는 "통근 시간이 너무 길거나 짧지 않은 선에서 일과 삶의 만족도를 함께 얻을 수 있는 곳이 좋다. 집과 회사에서 들어오는 부담감을 적절히 완충하는 거주지가 중요하다"면서 "이번 연구와 비교하는 차원에서 기혼 남성 직장인이 느끼는 통근 시간 부담 등에 대한 추가 연구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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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