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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우의 공감의 과학] 구닥다리 기술이 때론 더 강하다

최성우 과학평론가

최성우 과학평론가

독일의 경제학자 슈마허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개발도상국에는 고가의 첨단 기술보다 비용이 적게 드는 ‘적정기술’이 더 중요할 수 있다고 피력한 바 있다. 이와는 약간 다른 맥락이지만 단순하고 오래된 기술이 화려한 첨단 기술보다 더 강할 때가 있다.
 
최근 북한의 핵무기 실험과 아울러 전자기펄스(EMP) 폭탄의 위험성이 자주 거론된다. EMP탄은 최신형 반도체와 초정밀 집적회로 등으로 만들어진 첨단 전자기기와 이를 채용한 군사무기 체계를 순식간에 무력화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고가의 오디오 앰프 이외에는 찾아보기 힘든 구형의 진공관은 EMP 무기에 견디는 힘이 훨씬 강하다.
 
물론 이제 와서 수많은 전자기기의 부품을 진공관으로 대체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과거 미국과 냉전을 벌이던 시절, 소련이 제작한 최신예 미그(MiG) 전투기는 진공관을 채용하고 있었다. 생산기술이 낙후된 소련에서 트랜지스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지만, EMP 공격에 대한 저항력뿐 아니라 극저온 등의 거친 환경에서도 진공관이 도리어 우수한 측면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인공위성과 우주탐사선 등의 제작에 이제는 시중에서 구하기도 어려운 386급 이하의 구형 중앙처리장치(CPU)가 여전히 많이 쓰인다. 우주 공간은 고온과 저온이 극단적으로 오가고 우주선(宇宙線)이 쏟아지는 가혹한 환경이어서 첨단의 고성능 부품보다 비록 구식이더라도 내구성과 안정성이 검증된 부품을 채용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10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미국 SF영화 ‘인터스텔라’에서 필자가 가장 인상 깊게 본 대목은 화제를 모은 상대성이론이나 화려한 그래픽으로 묘사된 블랙홀 장면이 아니었다. 바로 거의 마지막 대목에서 중차대한 정보를 ‘모스(Morse) 부호’를 이용해 전송하는 장면이었다. 과거 전보를 칠 때나 자주 쓰던 모스 부호를 요즘 실제 통신에서 이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첨단 통신기술이 무용지물이 되는 극한 상황에서는 가장 단순하고 오래된 방식이 되레 큰 빛을 발할 수 있다. 한물간 기술, 오래된 구식 기술이라고 마냥 무시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교훈 아닐까? 
 
최성우 과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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