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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의 사람 풍경] 시어머니에게 김치 담그기만 5년 배웠어요

다산 정약용 7대 종부 이유정씨
이유정씨가 예부터 다산 정약용 집안에 내려오는 대표적 음식을 한상 가득 차렸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유정씨가 예부터 다산 정약용 집안에 내려오는 대표적 음식을 한상 가득 차렸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떡을 찌는 데 상추가 들어간다. 첫눈에 먹음직스럽지 않다. 하지만 한 입 넣으니 혀가 먼저 알아본다. 담백하고 달콤하다. 풋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른바 상추버무리떡이다. 밤·대추와 함께 버무린 쌀가루와 쌀가루 사이에 상추를 켜켜이 쌓고 대나무 찜기로 조리했다. 애오라지 나라와 백성을 걱정했던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 집안에 내려오는 음식이다. 명절 차례상의 단골 품목이다.
 
특이한 게 또 있다. 우려낸 녹차 잎도 말려서 버무리로 쓴다. 제사상에 올린 밤과 대추도 다시 쓴다. 말하자면 재활용이다. 하나도 허투루 버리지 않는다. “오래된 차도 버리는 일이 없어요. 잘 먹고 살진 못했지만 알뜰살뜰 모든 걸 귀하게 여겼습니다.” 한가위를 열흘여 앞두고 만난 다산 7대 종부(宗婦) 이유정(55)씨의 말이다.
 
이씨는 “종부의 사명은 잘해 먹이는 것”이라고 했다. 그와 만난 곳은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 생가 바로 옆의 친척집. 현재 안양의 아파트에 살고 있는 그가 바리바리 한 상을 차렸다. 배추·열무·파김치는 기본이요 도라지·씀바귀 무침, 연근 조림, 고추 버무림, 초석잠 장아찌에 불고기·장떡 등을 내놓았다. “종가는 인심이 넉넉해야 해요. 손님이 배를 주려서야 되겠어요”라며 웃었다. 다산의 ‘식위정수(食爲政首)’가 떠올랐다. 백성을 먹여 살리는 게 정치의 첫 번째 일이라는 뜻이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상추버무리떡·붕어탕·장김치·이양주·만두·연포탕·다식·오미자차.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상추버무리떡·붕어탕·장김치·이양주·만두·연포탕·다식·오미자차.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음식이 대체로 정갈합니다.
“전형적인 경기도 음식입니다. 얼큰한 맛이 덜하지요. 간도 싱겁게 하는 편이고요. 그런데 2%의 차별성이 있습니다. 육수입니다. 집안 내림이죠. 모든 김치를 육수로 담급니다. 물을 쓰지 않아요.”
 
각별한 비법이라도 있나요.
“황태·버섯·다시마·파뿌리 등 10여 가지를 넣고 다립니다. 찹쌀(배추김치)·밀가루(열무김치)로 묽게 풀을 써서 하루 정도 숙성시키죠. 시어머니께 김치 담그기만 5년을 배웠어요. 김치의 절반은 절이기입니다. 나머지가 양념과 손맛이고요. 소금이 가장 중요합니다. 집에서 간수를 직접 빼고 1~2년 묵혀서 씁니다.”
 
실학자 다산은 미식가와 거리가 멀었다. 아니 그럴 여유가 없었다. 전남 강진에서 18년 귀양 생활을 했고, 이후 팔당 호숫가 생가에서 학문을 정리하며 보냈다. 유배지에서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선 근(勤)·검(儉) 두 글자를 당부했다. “음식이란 목숨만 이어가면 되는 것” “기름진 음식을 먹으려고 애쓰면 결국 화장실에서 정력을 소비할 뿐”이라고 경계했다.
 
반면 그는 많은 시문(詩文)에 음식에 관한 기록을 남겼다. 유배 중에도 밭을 일구고, 채소를 키우고, 차를 재배했다. 두부와 붕어 요리도 좋아했다. 지금도 차례상에는 연포탕·붕어탕·상추버무리떡이 3대 음식으로 오른다. 종부 이씨는 집안 전승과 옛 문헌을 토대로 집안 음식을 되살리는 데 정성을 쏟아왔다.
 
다산의 혼이 깃든 경기도 남양주시 여유당. 1925 년 대홍수 직후 풍경.

다산의 혼이 깃든 경기도 남양주시 여유당. 1925 년 대홍수 직후 풍경.

제수 음식으론 다소 낯섭니다.
“다산 할아버지께선 두부를 즐기셨어요. 연포(軟泡)는 두부를 가리킵니다. 끓일 때 거품이 올라오는 모양을 가리키죠. 조선 선비들은 요즘처럼 낙지를 쓰지 않았습니다. 대신 닭을 넣었어요. 두부는 예전에 매우 귀했습니다. 양반댁에서 문상객을 대접하는 음식이었죠. 또 사대부 사이엔 연포회 모임이 인기 있었습니다. 두부를 꼬치에 꿰어 닭고기 삶은 물에 끓여서 친한 벗들과 나눠 드셨죠. 요즘에는 두부장떡·두부잡채도 해먹습니다.”
 
지금은 붕어가 많이 나지 않죠.
“그렇습니다. 값도 소고기를 뺨쳐요. 하지만 예전엔 흔한 생선이었어요. 한강에서 많이 낚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매운탕으로 먹지만 저희 집안에선 맑은 탕으로 끓여냅니다. 붕어를 소주·청주에 하루 정도 재운 다음에 살만 발라내서 완자로 만듭니다. 목에 생선가시가 걸리지 않도록 말이죠. 남편(정호영 EBS 사업본부위원)도 어린 시절 물리게 먹었다고 합니다.”
 
다산은 소박한 밥상을 추구했어요.
“한국고전번역원 종합DB에 올라온 다산 할아버지의 시문을 틈틈이 검색합니다. 주로 음식과 관련된 부분을 찾아요. 생각보다 자료가 많습니다. 두릅·취나물·더덕·미나리·도라지 등 나물류가 다수죠. 주로 싸고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죠. 저희 집에선 호박을 애용합니다. 찜·탕·죽 등 다양하게 만들죠. 만두소로도 쓰고요. 재료(구슬)는 평범하나 이를 맛나게 꿰는 게 전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재현한 게 얼마나 될까요.
“레시피(조리법)를 80개 정도 정리했습니다. ‘농가월령가’ 등을 참고해 집안에 내려오는 음식을 월별·계절별로 적어 놓았죠. 시어머니께서 종갓집은 2월 장 담그기부터 시작해 1년 살림을 늘 계획 있게 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다산의 혼이 깃든 경기도 남양주시 여유당. 현재 복원된 모습.

다산의 혼이 깃든 경기도 남양주시 여유당. 현재 복원된 모습.

이씨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1990년 다산 종가인 줄도 모르고 결혼을 했다. 집안에서 다산의 후예임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할머니·시어머니(두 분 모두 96년 타계)를 모셨다. 예나 지금이나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아침을 준비한다. 지금도 88세 시아버지의 삼시 세끼를 챙긴다. 신혼 초 “얘야, 네가 한 음식은 왜 맛이 없니”라는 시아버지의 핀잔에 충격을 받고 집안 음식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의무감에서 했다면 지금까지 올 수 없었을 겁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을 수는 없잖아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저희만의 콘텐트를 지킨다는 즐거운 마음으로 배웠습니다”고 했다.
 
다산 종부 타이틀이 무겁겠습니다.
“시집을 잘 왔다고 생각합니다. 부지런하지만 물욕이 없는 집안이거든요. 97년 외환위기 직후 빚을 내서 아파트를 사려 했는데 시아버지에게 노발대발하셨죠. 집안 말아먹을 일 있느냐고요. 이를테면 100원만 있어도 행복한 집입니다. 꽉 막힌 것처럼 보일 수 있어도 과욕을 안 부리니 마음이 편합니다. 가훈이 근동(勤動)입니다. 다산 할아버지의 검(儉)을 5대 할아버지께서 동(動)으로 바꾸셨대요. 시대가 달라졌으니 부지런히 움직이고, 많이 베풀며 살라는 뜻이 아닐까요.”
 
다산은 정치의 표상입니다. 올해 『경세유표』, 내년 『목민심서』 200주년이죠.
“1925년 대홍수로 다산 생가가 떠내려갔고, 이후 직계 후손들도 고향을 떠났습니다. 살림이 매우 어려울 때도 있었죠. 지금의 생가 여유당(與猶堂)은 86년에 복원한 겁니다. 고택(古宅)을 지키는 종부로 살라고 했다면 버틸 수 없었을지도 몰라요. 다산 유적지가 ‘세컨드 하우스(Second House)’쯤 될까요. (웃음) 2년 전부터 매달 한두 차례 남양주시 일대 초등학교를 돌며 다산 정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종종 종가음식 강연도 하고요. 지금까지 공부한 음식을 모아 꼭 책으로 엮고 싶습니다.”
 
[S BOX] “5일에 한 마리씩 … ” 흑산도 형에게 개장국 권한 다산
“아니요, 저는 애견인이라서요. 그것만은 아직 할 생각이 없어요.” 이유정씨가 손사래를 쳤다. “혹시 보신탕을 만든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서다. 다산이 개장국을 즐겼다는데, 집안에서도 끓여 먹는지 궁금했다. 작가 김정호씨는 『조선의 탐식가들』에서 다산을 ‘개고기 애호가’로 분류했다. 그렇다고 식도락은 아니다. 오랜 유배 생활을 버텨내기 위한 호구지책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다산은 그가 가장 따르던 둘째 형 손암(巽庵) 정약전에게도 개고기를 권했다. 역시 천주교도로 몰려 흑산도로 유배 간 손암이 “짐승의 고기를 전혀 먹지 못하고 있다”고 하자 다산은 이렇게 답장을 썼다. “섬 안에 산개(山犬)가 천 마리 백 마리뿐이 아닐 텐데, 제가 거기에 있다면 5일에 한 마리씩 삶는 것을 결코 빠뜨리지 않겠습니다.”(박석무 편역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220쪽)
 
격물치지(格物致知)랄까, 다산은 꼼꼼했다. 산개를 잡는 법, 고기를 삶는 법도 자세하게 적어 보냈다. 이씨가 말을 이었다. “할머니·아버님·남편 등 가족 모두 개를 좋아했습니다. 복날 때 빠뜨리지 않았죠. 물론 저는 빼고요. 지금은 전혀 내키지 않지만 기회가 되면 한번 시도해 볼까요.”
 
박정호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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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